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은 한 예능 프로와의 인터뷰에서 "팀이 승리하고 본인이 못한 날, 팀이 패하고 본인이 홈런을 친 날 중 어느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자신이 홈런을 친 날이 훨씬 기쁘다"고 답했다. 게다가 팀이 이기더라도 자신이 부진한 경우에는 기쁘지 않다는 말도 곁들였다.

프로선수 세계는 그런 법이다. 팀의 승리도 좋지만, 자신의 생존과 몸값을 위해서는 개인을 위한 플레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좀 더 좋은 조건의 팀으로 이적하는 것도 시장의 논리로 볼 때, 선택의 문제이지 도덕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비단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조직 전체의 성공이 곧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 중 꽤 신사로 알려진 이승엽은 그런 면에서 솔직한 답변을 해 준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논리가 적용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과 함께 '보이지 않는 예의'라는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예의의 경계를 정하는 것에는 항상 큰 어려움이 따른다. 단체생활과 사생활의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조직의 수장과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끊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기 마련이다.

팀 분위기 해쳐도 꼭 필요한 선수 '호날두'... 이천수는?

 20일 밤 서울 월드컵컵기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FC서울과의 친선경기를 공을 몰고 있다.

역대 최대 이적료로 팀을 옮긴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축구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감독이나 구단 입장에서 볼 때, 적극적으로 개인플레이를 하거나 자유로운 사생활을 즐기는 선수는 실력이 좋아서 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팀 분위기를 해치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의 대상이다. 그 한계를 정하는 것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인데, 가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최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호날두의 경우는 감독이 개인플레이의 한계치를 높여준 케이스다.

그가 패스를 잘 하지 않거나(개인플레이) 가끔 클럽에서 염문을 뿌리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아도(사생활 문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주로 그를 두둔하려 애썼다. 이유는 그의 개인적인 능력이 너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발롱드르(올해의 유럽 축구상) 수상자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 등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던 그의 능력은 팀플레이 및 단체생활에 미칠 좋지 않은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박지성의 경우는 약간 반대의 경우인데, 워낙 팀플레이를 주로 해서, 가끔은 감독이 좀 더 적극적인 공격을 주문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쨌든 핵심은 호날두 같은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고 수준급의 선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들은 생활태도도 알아서 더 조심해야 하고, 감독 또한 좀 더 강하게 다룰 수 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시장 논리다.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천수. 그는 호날두가 아니다. 뛰어난 축구 센스를 가졌고 국내 톱클래스의 선수지만,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다. 또 이천수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의 커리어는 후배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도록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의 상처 투성이인 경력은 해외에 진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성공만 바란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후배들에게 시사한다. 문제는 축구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다. 국가대표로서 숱한 경기에서 중요한 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사의 중요한 한 축이었던 선수에게 이러한 불명예를 지우는 것이 한국축구나 팬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축구팬들 인내심의 한계를 벗어난 듯 보인다.

계속되는 돌출 행동, 이제 팬들도 지쳤다

 이천수 선수

온갖 비난을 들으며 K리그 떠난 이천수 ⓒ 오마이뉴스 유성호

필자는 지난 2월 "이천수, 독기품겠다? 그럴 필요 없다"라는 기사에서, 전남으로 이적을 결심한 이천수에게 팬으로서 작은 첨언을 한 적이 있다. 기사에서 독기도 품을 필요 없고, 무연봉 입단도 결코 굴욕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축구만 하는 성숙한 프로페셔널의 태도를 주문했다. 그가 섭섭해 하는 언론이나 팬들의 비난도 "사랑이 없으면 비난도 없다"는 말로 위로했다.

그러나 이번 이천수의 '계약 시 옵션 삽입 (이천수를 원하는 팀이 9억 원 이상을 연봉으로 제시할 경우 선수의 거부권은 사라진다는 것)' 문제와 '무단이탈' 사건은 그를 끝까지 지지했던 팬들을 많이 지치게 했다.

이데일리 송지훈 기자의 "이천수 논란, 2라운드 진실게임" 기사에 따르면 이천수는 이미 당초에는 없었던 계약 옵션 조항을 나중에 삽입한 것으로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최초 계약 체결 시, 그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추가된 조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박항서 감독님을 위해서"라는 말을 했다. 이 부분 역시 그가 최초부터 전남을 빠른 시기에 떠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이천수 영입을 적극 추진한 박항서 감독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언뜻 보면 임의 탈퇴 신분이었던 옛 제자를 안아준 스승에 대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 밝혀졌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단견(短見)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무단이탈도 마찬가지다. 2008년 임대된 수원삼성에서도, 그를 아끼던 차범근 감독의 기대와는 달리 코치진과 마찰을 빚으면서 임의 탈퇴 됐고, 미아가 된 자신을 받아준 전남에서도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형식적인 멘트와 사과 등은 팬들에게 진실처럼 들리지 않는다. 언론에 대해 섭섭함을 표현하기 전에, 왜 그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정말 심각하게 되돌아 볼 시기인 것 같다.

온갖 오명 다 뒤집어쓴 이천수, 부활할 수 있을까?

직장을 옮길 때에도 전 직장과 큰 마찰을 빚고 나온 인력은 어딜 가도 환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환경을 조금 바꾼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천수, 점점 쇠퇴해가는 그의 이력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부터 든다.

레알 소시에다드, 누만시아, 페예노르트, 수원, 전남에 오명만 남기고 떠나는 그에게, 그 어떤 구단이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올 지 말이다. 물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리그의 알 나스르로 이적해 그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 한숨을 쉬는 차범근 감독, 박항서 감독과 같은 그의 스승들, 그리고 그의 프리킥을 사랑하는 팬들도 더 이상 그의 축구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이천수의 예레디비지(네덜란드 리그) 데뷔전. 엑셀시오르와 페예노르트의 후반전에 등번호 16번을 달고 출장한 이천수는 왼쪽 측면을 파고든 뒤 네덜란드의 간판 공격수 로이 마카이에게 날카로운 크로스를 전달했다. 마카이의 발을 스친 공은 아쉽게도 골대에서 빗나갔지만, 마카이는 이천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팬들은 "리(Lee)"를 연호했다. 당시 경기를 중계를 하던 박문성 해설위원도 이천수의 예레디비지 연착륙을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 톱클래스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만한 축구 센스를 가진 이천수. 그가 이제 정말 사생결단으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은 해외진출, 구단의 태도, 연봉, 코치진, 언론이 아닌 본인의 인생 그 자체인 듯싶다.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 쓴 비도덕적인 선수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부활의 날개를 펼칠 것인가. 이것이 악동 이천수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되길 바란다.

이천수 임의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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