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댄스 동호회 '딴다라 땐스홀'의 공연이 펼쳐지는 전주 국제 영화제의 문화마당. 20대 초반의 남녀가 쌍을 이루어 미끄러지듯 추는 스윙댄스에 관객들은 너도나도 신이나서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과 오랜만에 '마실'을 나왔다는 김명자(52)씨는 연신 "아유, 정말 예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친구 세 명과 함께 서울에서 온 정희양(23)씨는 "아유, 정말 신나겠다. 나도 추고 싶어"라며 울상아닌 울상을 짓기도 했다. 술이 기분좋게 거나하게 취한 한 아저씨가 흥을 가누기 힘든 듯, 스윙댄스 맨 앞 대열에 서서 손을 휘휘 저으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들 까르르 웃을뿐 제지하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축제는 어두워야 제 맛이다. 더구나 시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오월의 주말 저녁(3일). 날이 서서히 저물고 영화의 거리를 장식한 루미나리에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환한 축제의 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얼굴이 덩달아 환해지기 시작한것은 비단 루미나리에의 찬란한 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분수에 젖은 한 여고생.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친구들이 까르르 웃어대자 이번엔 작심을 한듯 다른 친구들을 이끌고 차례차례 분수대에 빠뜨린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부하듯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던 친구들도 한번 분수의 시원한 맛을 보더니 이제 될대로 되라는 심사일까.

 

이제는 아예 자진해서 분수에 들어가 물 세례를 흠뻑 받는다. 이를 보던 다른 관광객들도 차례차례 분수맛을 보러 뛰어들어간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다. 등을 떠밀려서도 아니다. 약간의 객기라고 해도 좋은 그들의 분수 퍼포먼스. 저 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볼까. 그들의 객기가 마냥 부러운 듯 점잖은 아저씨 아줌머니들은 그저 부러움 깃든 웃음만을 보낼 뿐.  

 

축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거리공연'

 

 

영화의 거리가 시작되는 초입에 있는 문화마당. 작년에는 조금 썰렁했던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올해는 예쁜 루미나리에로 우선 시선을 끌고 그곳에 시원한 분수대를 설치했다. 때아닌 더위에 한낮동안 시들했던 관광객들은 분수세례를 받고서야, 가뭄에 물만난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는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는 행인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바라본다. 지나는 풍경이 못내 아쉬운듯 고개를 꺽고 오랫동안 바라보는 승객도 있다.

 

축제는 거리공연이 있어야 제맛이다. 축제답게 만드는 것은 이같은 축하공연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길거리공연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푸짐하고 다양한 거리공연을 많이 준비했다. 그래피티 시연와 힙합그룹의 랩, 디제이 믹싱은 낮부터 계속 되었고 스윙댄스, 브라질 쌈바, 비보이 공연 등 화려한 볼거리가 끊이지않고 이어졌다.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기면 우르르 달려가는 짱가처럼 관객들은 거리에서 환호성이 울리거나 음악소리가 들리면 이내 둥근원을 만들고 기꺼이 그안에 자신을 내던진다.

 

낮에 영화의 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 주로 타지에서 온 관객들과 영화 관계자, 게스트 등이라면 밤에는 인근에 사는 전주시민들이 주를 이룬다. 같은 영화의 거리라고 해도 낮과 밤의 색깔은 사뭇 다르다. 낮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이 많은 젊은이의 톡톡 튀는 표정이라 한다면 밤에는 편안하고 넉넉하고 느슨하고 여유가 있는 표정이라고 하면 좀더 어울릴까.

 

떡볶이 먹는 외국인, "맵지만 맛있어요!"

 

ⓒ 안소민

 

쫄면, 비빔밥, 떡볶이…, 내어오는 음식을 보니 하나같이 빨갛고 매운 음식들이다. 과연 이 음식들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의아하게 쳐다보는 기자에게 "맵지만 정말 맛있어요"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외국인 일행들. 아마도 배속에서는 불이나는 듯 새빨개진 얼굴이지만 전주에 와서 이 음식들을 먹지않고서는 서운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역시 축제는 먹어야 제맛이다. 먹거리가 빠진 축제는 생각만해도 싱겁다. 단팥빠진 진빵처럼 푸석하기만 하다. 더구나 먹거리하면 또 빠질 수 없는 전주 아닌가. 영화의 거리에 즐비한 음식점마다 손님들과 왁자지껄한 이야기소리가 그득하다. 밤 11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도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영화제의 밤을 함께 하기위해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영화의 거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서로의 허리를 감싸고 지나는 연인들, 어린 자녀를 목마에 태운 아빠, 행여 추울까 덧옷을 단단히 입힌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엄마, 선글라스로 간만에 멋을 부려본 할아버지, 넥타이를 느슨히 풀어맨 직장인들, 교복을 입고 무리를 지어다니는 중고등학생…,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은 하나 더 추가된다.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어 축제는 즐겁다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어 축제는 즐겁다 ⓒ 안소민

 

축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제 맛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끼어있는 이번 영화제기간동안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제공한 영화제측의 노력이 엿보인다. 영화의 거리 곳곳에 있는 수공예품이나 한지부채, 액세서리, 지점토 액자, 붓글씨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가판대가 설치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야심한 시각, 다른때 같으면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야할 시각이지만 '밤을 잊은' 어린아이들의 두 눈망울은 마냥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축제는 모자이크다. 여러 개의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을 한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한 개의 온전한 모자이크가 완성되듯이 축제도 그런 것 아닐까. 영화를 만든 사람과 그 영화를 보는 사람,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과 그것을 먹는 사람, 공연을 하는 사람과 그 공연을 즐기는 사람, 전주국제영화제의 세 번째 밤은 이 모든 것이 잘 맞아 어우러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 완전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모자이크처럼…. 

2008.05.05 11:14 ⓒ 2008 OhmyNews
전주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