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의 경기와 관련 편파판정 시비가 국내외에 들끓고 있다. 스페인은 두골을 도둑 맞았다며 난리이고,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TV 방송국이 FIFA를 제소할 움직임이고 한국 승리를 위한 음모가 있었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흘러 나오고 있다.

나는 오심 여부는 여기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왜 유독 우리나라와 관련해 편파판정 시비가 강력히 거론되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가깝게는 오노의 사태가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언제 국제시합에서 편파판정의 혜택을 받는 나라였던가? 그동안 우리는 언제나 편파판정의 희생자로서 맨날 당하기만 하던 약자의 입장이 아니었던가?

BBC나 CNN등 외국 뉴스도 살펴보고 우리나라 웹사이트에 외국에 있는 유학생들이나 통신원들이 올린 글들을 보면 해당국인 스페인, 이탈리아을 비롯한 일부 유럽 그리고 엉뚱하게도 중국 등에선 심판판정과 한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그러나 일단 당사국들은 그럴 수 있다 치고, 그래도 조금은 3자적인 BBC의 경우를 보면 심판판정에 대해 비난하는 기사와 독자의견들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에 우호적이고 스페인과 이태리의 생트집을 지적하는 의견들도 많다.

또 CNN이나 뉴욕타임즈 등 미국의 언론도 대체적으로 한국의 선전을 인정하고 심판판정에 대해서는 어느경기나 있을 수 있는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일단 조금씩은 다른 이런 각국의 반응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역사적, 정치적 히스토리에 기인한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이탈리아가 언제 한국에 진다는 걸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이들이 심판매수니, 편파판정이니 하며 떠드는 것은 노풍이 몰아칠 때 마치 한나라당이나 이인제씨가 이해 못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도대체 이렇게 잘 할 리가 없는데, 우리가 질 일이 없는데…' 졌으니 이해가 안되고 핑계거리를 찾아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영국이나 미국의 입장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들은 사실 우리에게 우호적이기 보다는 유럽대륙에 대해 라이벌 의식이 있어 그들에 대해 비우호적인 면이 강하다. 영국도 유럽이지만 축구뿐만아니라 역사적으로 프랑스, 독일 등 대륙과 끊임없는 갈등으로 경쟁관계이니 은연중에 그들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유럽에 비해 잘 살지만 문화적인 열등감이 강하기 때문에 유럽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이런 배경때문에 이들은 이번 판정시비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럽에 비판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보이고 있는 편이다.

중국의 한국 비하는 바로 축구 자체의 공한증도 있지만, 그보다는 과거 역사적으로 우리를 늘 앞섰다는 우월감에다 현실적으로 우리보다 못하다는 열등감,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의 경제력이 성장하자 경쟁의식까지 합세한 복잡한 견제심리, 질투심등이 어우러지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서두에 드린 얘기와 연결하자면, 이태리나 스페인 중국등에 사는 교포나 유학생들의 아픔은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한국을 에워싼 편파판정의 시비는 우리의 국력과 위상이 그 만큼 높아진 때문이 아닐까한다. 정말로 우리의 위상이 강대국과 같다면 또 이런식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맨날 '누구한테 억울하게 당했니, 심판때문이니…' 하던 우리가 바로 다른 나라, 그것도 축구의 최정상국들이자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세계의 주류인 유럽 강대국을로부터 음모설 편파판정의 수혜자로 지목받는다는 것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치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한 점 의혹없이 깨끗한 승리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 자체가 나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와 국제적 위상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히딩크의 공헌이 큰 부분이었지만 나는 히딩크의 역할은 16강 진출과 8강의 중간 턱 정도까지 였다고 본다. 히딩크가 그의 방식을 똑같이 다른 나라에 적용했다면 과연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 그가 중국과 일본을 맡았다면 과연?

선수들의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투지와 열정, 온국민이 붉음으로 하나되는 이러한 뜨거움이 있었기에 월드컵 4강 신화가 있었다고 나는 본다. 물론 우리는 좀더 겸허해지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축구의 4강이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적 4강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하지만 축구의 4강은 정치의 4강, 경제의 4강으로의 길을 한층 더 빨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얄팍한 냄비근성은 지양해야 마땅하지만 냄비 수준을 넘어서는 이런 폭발적인 응집력은 우리민족 특유의 힘이라고 본다.

어린 아이들도 자기 동네에서 싸우면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게 바로 홈어드벤테이지 아닌가. 그런 것 때문에 프로구단에서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굳이 이번 월드컵에서 심판판정에 대해 시비를 걸자면 나는 그런 정도라고 본다. 과연 심판의 우호적인 판정만으로 세계 40위의 팀이 4위, 5위 8위의 팀을 차례로 격파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말 음모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히딩크라는 명장과 엄청난 훈련,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고 상상을 초월한 정신력과 투지로 싸운 선수들이 있기에 그런 승리들을 이룬 것이다. 물론 온 경기장과 거리거리를 붉은색으로 메운 엄청난 국민들의 성원도 그들을 더욱 힘내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 크게보면 여러곳에서 모순이 많지만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저력이 우리에게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한다. 어설픈 낙관주의나 합리주의는 싫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승리에 대해 좀더 당당할 필요가 있겠다.
2002-06-24 14:43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