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07:02최종 업데이트 24.05.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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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서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주제는 '피크 코리아' 담론의 실체인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 문제에 대한 이해와 정책제안으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유명한 경남대학교 양승훈 교수가 맡았다. 양승훈 교수는 최근 출간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한국의 생산과 재생산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세 번째 글이 길어져 독자 편의를 위해 2개의 글로 나누어 게재한다.

 

4월 26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4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개회식에서 드론 쇼가 펼쳐지고 있다. ⓒ 울산시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울산 문제'③-1에서 이어집니다.

구조적이고 역사적으로 첨예하게 중첩된 '울산 문제'를 울산 혼자서 타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울산 문제'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수도권 집중, 비수도권의 소멸, '노동자 중산층', 저출생 고령화의 문제라는 '피크 코리아'의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세 편에 걸쳐 진단한 것처럼 울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고려할 것은, 공간분업 속에서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울산의 제조업 내 위상을 바꾸는 일과, 청년들과 여성들이 희망하는 업종의 양질의 일자리에서 이들의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 맞물려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산업 가부장제가 그어놓은 제한 역시 풀어질 것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치사슬과 공간 분업 관점에서 고부가가치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견실하게 구축하면서 연구개발 경쟁력과 정보기술(IT) 산업과의 연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업 인프라에 투자하는 만큼이나 우수한 인력 풀을 확보하고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인력 풀 확보 문제는 사회적 측면의 문제 해결과 병행해야 한다. 도시 내부 제조업 부문 중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 노동력의 활용을 사무직·기술직·생산직 할 것 없이 높여야 하고, 제조업을 선호하지 않는 여성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서비스 산업 같은 산업군도 유치하거나 창출해야 한다.

정치권 유령 되어 버린 동남권 메가시티 프로젝트

더불어 이 모든 것이 작동하게 될 제조업 클러스터로서의 울산이 마주할 고도화의 문제는 자력으로만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그런데 시선을 돌리면 울산은 각각 350만 인구의 경상남도와 부산에 인접해 있다. 이들을 함께 엮으면 문제에 대한 대응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가령 대학의 기능은 울산에서 강화하기보다 부산에서 강화하고, 산학 연계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부산·울산·경남의 접점인 경남 양산이나 김해 등지에 짓고 교통망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더불어 부산·울산·경남의 동남권이 무너졌을 때 수도권과 견줄 수 있는 지역균형 발전의 거점이 사라진다는 문제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소한 2극의 도시축이라도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구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의 두 번째 전략으로 진행되었던 국가적 프로젝트가 바로 동남권 메가시티 프로젝트다.

전국적으로는 '가덕도 신공항'과 '부산 신항만'이라는 '메가 토건 프로젝트'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이 두 가지 프로젝트는 산업 물류망의 구축을 위한 것이었다. 외려 청년을 비롯한 주민들 관점에서 동남권에서 핵심적으로 제기되었던 숙제는 바로 교통망 구축, 특히 철도망의 구축이었다. 이 역시 '서부 경남 KTX(남부내륙선)'만 알려졌지만, 실제로 동남권에 긴요했던 것은 바로 권역 내 전철이었다.

서울역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면, 부산역 기준으로 포항과 진주를 연결할 수 있지만 이 사이를 오가는 전철망은 비수도권 최초로 2021년 부산부터 울산까지 연결한 동해선 광역전철뿐이다.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매번 미끄러져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제에서 부산을 가려면 왕복 2만 원의 거가대교를 건너야 하고, 그나마 차가 없다면 30분 간격의 버스를 타야 한다. 10시가 넘어가면 버스 역시 없다. 그래서 통근의 불편함으로 인해 고작 30km 내외에 위치한 위성도시에서 부산으로 이주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전철망을 연결함으로써 청년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저렴한 가격과 정시성(定時性)을 통해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제가 해결될 거란 전제하에 부울경의 접점인 김해나 양산에 연구개발(R&D)센터나 공유 캠퍼스를 짓는 구상도 제출되었다.
 

2021년 4월 16일 박형준 부산시장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부산시청 9층 브리핑룸에서 동남권 메가시티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부산시

  
지역균형발전의 '업그레이드' 관점에서 초광역 연합으로서의 '동남권광역연합'도 2021년 입법을 통해 통과되었다. 그러나 주지하는 것처럼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지자체 단체장이 바뀌면서 동남권 메가시티는 울산과 경남의 반대로 좌초한다. 울산은 부산에 인구가 빨려 들어가는 '빨대효과'를, 경남은 서부 경남 지역이 제조업 클러스터나 메가시티 광역교통 연결망에서 소외된다는 이유로 메가시티의 울타리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동남권 메가시티의 좌초는 전국 정치의 관점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단체장이 바뀐 것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각 지역이 갖고 있는 우려에 대해서 지역 내 논의와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의 기조가 확고하게 잡혀있지 않고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초광역 구상은 개별 광역의 우려를 달래지 못한다.

동남권 메가시티 좌초 이후 울산은 포항과 경주를 아울러 '해오름 동맹'을 만들겠다는, 그리고 경남은 차라리 부산과 통합을 하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그러나 해오름 동맹은 공간 분업으로 만들어지는 하청기지화와 산업 가부장제의 문제를 전혀 돌파할 수 없고, 부산과 경남의 통합은 특별한 목적함수가 없는 상황에서 구심점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부울경의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의 트렌드는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동남권 메가시티의 좌초의 원인에 대한 분석도 동남권 내에서조차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메가시티는 광역끼리 연합하거나, 서울에 편입하고 싶은 경기도 기초단체들의 욕망을 정당화 해주기 위한 유령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내생 발전 전략과 국가의 '빅 푸시'

처음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쓰며 구상한 제목은 '산업도시 울산은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그런데 쓰다 보니 울산이 걱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걱정이 됐다.

비싼 제품 많이 팔아 돈 잘 벌어오는 제조 대기업의 경쟁력은 처음 울산에 산업기지를 짓던 시절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제조 대기업들은 '적대적 노사관계'를 빌미 삼아 구상 기능을 담당하는 연구개발 기능과 엔지니어링을 발 빠르게 수도권으로 옮겼고, 여전히 남은 기능들도 북상시키려 한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울산(그리고 모든 산업도시)의 청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도권으로 향한다. 제조 대기업의 노동조합은 보편적 구호로서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지만, 적대적 노사관계가 빚어낸 구상 기능의 이동, 그리고 이어지는 고부가가치 공장의 수도권 입주 앞에서 무력하다.

입주한 기업의 요구에 대응하기에 바빠, '도시 계획'을 전략적으로 수행해 본 적이 드문 산업도시의 행정은 속수무책으로 일자리의 전환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규모의 산업도시 제조업체들의 성차별적 채용 관행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중소 제조업체들은 다양성을 포용하고 안전하고 스마트하게 일터를 개선하는 대신 더 싸게 고용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만 구해 물량만 쳐내려고 한다.

여성과 청년들이 떠난 도시를 요약하자면 '재생산'이 불가능한 도시라 말할 수 있다. 비수도권 산업도시가 재생산이 불가능해지면, 수도권 밀집은 강화되고 경쟁과 높은 집값에 짓눌린 청년들은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재생산(결혼, 출산, 양육)을 포기한다.
 

2023년 11월 13일 현대차는 울산공장에서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을 개최하고 조감도를 공개했다. ⓒ 현대차그룹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행위가 합이 맞아야 할 것이다. 하나는 내생 발전 전략을 울산이, 그리고 산업도시가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의 문제다. 적대적 노사관계의 비용을 이미 충분히 지불해도 견딜 만하고, 그 보완재로 자동화와 로봇, 스마트 팩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기업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공산이 크다.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방침이 있을 때만 소극적으로 뽑을 것이다.

이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오히려 '핵심 인력'(예컨대 현대자동차의 신규 채용 분 8만 명)을 지역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로 채용해달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지역의 이해당사자들은 이에 맞춰서 '배움'과 '학습', 그리고 '네트워킹'을 어떻게 엔지니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이 표준교육이 된 한국에서 생산직의 도시로서 울산이, 산업도시가 계속 갈 수는 없다. 대학이 부족한 울산은 부산과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북상한 대기업의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를 갑자기 '하방' 시키기도 어렵다. 이 지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제조 대기업이 아니라 제조 대기업에 '전속계약'으로 소재·부품·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2차 이하 자동차 협력업체들과 조선 기자재 업체들일 수 있다. 울산이, 동남권 산업벨트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조역량'에 기대어 일을 벌일 수 있게 제조 스타트업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내연기관 부품을 공급하던 자동차 협력업체들과 조선 기자재 업체들은 업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승계 문제와 인력난 모두가 이들의 문제다. 따라서 산업도시들은 단순히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계에 처한 기업들과 연결성을 높이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는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까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새로 창업하는 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인 여성 고용과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지원하게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마켓을 겨냥하며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새로운 기업들이 자라나고, 이들이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청년들이 기피하지 않는 '스마트 팩토리'로 작업장을 새로이 단장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역시 '기술 인력풀'을 보고 다시금 산업도시에 투자를 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차원에서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도권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달리 말하면 수도권에 비대칭적으로 막대한 자원을 투여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정부의 투자는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에 집중투하됐다. 제조업의 상류부문을 수도권에 밀집시키는 데도 적어도 정부의 인허가가 있었던 것 아닌가. 달리 말하면, '울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의 비수도권 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전향적인 투자다.

애초의 불균등은 균등하게 자원을 분배한다고 해결되기 어렵다. 자가발전으로 '부스터'를 달고 있는 날아가는 수도권을 잡으려면, 메가시티 기획은 동남권에 대한 전향적인 투자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대규모 인프라 투자, 규모의 경제 형성이라는 '빅 푸시'(big push)가 필요하다.

울산은, 동남권은 비단 경상도 인근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2편 "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https://omn.kr/28htk)에서 언급했듯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공유자산'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메가시티이자, 세계 최대의 제조 클러스터로 동남권이 작동할 때, 우리는 현재의 '피크 코리아' 국면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길고 긴 이야기가 끝났다. 책의 이야기는 이 글의 내용보다 훨씬 더 풍성하니 혹시나 논리의 비약이 느껴지신다면, 책을 참조하시길 권한다. 한국이 '피크 코리아'의 질곡을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유지하며 다음 단계의 전환에 성공하길 바란다.

[관련기사]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울산 문제' 
① 정규직 뽑지 않는 엔지니어 공장,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omn.kr/28ee8)
② 남쪽으로 가서 '고소득자' 된 청년들, 그러나 (https://omn.kr/28htk)
③-1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필자 소개 : 제조업과 산업도시, 기술 혁신과 엔지니어를 연구합니다.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며 사회조사방법론, 통계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 과학기술학을 강의합니다. 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정책(혁신 연구)을 공부했습니다. 조선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담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산업에 대한 이야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썼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산업도시 울산을 살펴보며 50년 전 중화학 공업화로 형성된 한국의 주력 제조업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수도권 쏠림을 딛고 생존 가능할지 고민합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은이), 부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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