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2 15:07최종 업데이트 24.03.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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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도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대파를 들어 보이며 한 말이다. 궁금했다. 시장에서도 3~4천 원 넘는 대파 한 단을 어떻게 대형마트에서 875원에 팔 수 있는지 말이다. 전화를 해봤다. 3일 동안 1일 한정 1000단. 하나로마트 회원가로 팔고 있는 가격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정 세일 상품이고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 상품이라는 소리다. 그럴 수 있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는 논산 설향 딸기 750g을 1000원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가격을 합리적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비정상적인 가격은 물가 안정이 아니라 물가 혼란을 부추긴다. 또 대파 한 단이 최종 소비자에게 875원에 건너간다면 재배 농가는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위기에 몰린다. 합리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물가고에 시달린다 해도 농민들의 팔을 비트는,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국민들이 바라는 건 아니다. 대파 가격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대통령, 택시비 기본요금을 묻자 1000원이라고 답했던 국무총리만큼이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물가 인상의 촉매제 공공요금 인상
 

지난 2월 26일 서울역버스종합환승센터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공공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2.2% 올랐다. 2021년 10월 6.1% 오른 뒤 2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물가 상승 기여도(전년동월비)를 보면 시내 버스료가 가장 컸고 택시요금, 외래진료비, 도시철도료, 치과 진료비, 입원진료비, 하수도료 등 순이었다. ⓒ 연합뉴스


사과 하나에 1만 원을 넘나드는 고물가 시대다. 채소와 과일값이 물가를 부추기고 있다는 통계도 있고 이상기온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당장의 가격 하락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고물가에 국민들의 신음이 깊어지는 것을 모두 날씨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부터 전기요금, 교통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수차례에 걸쳐 대폭 인상했다.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의 적자폭을 줄여야 하고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인상되어 어쩔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이 물가 인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한전의 적자만 보더라도 산업용과 주택용 요금 체계의 형평에 맞지 않고, 한전에 전기를 파는 민간 발전사의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구조를 손볼 생각도 없이 지난 2년 동안 40%가량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농사용 전기요금도 2023년 5월 기준 55%가 인상됐다. 가스요금과 교통요금도 인상을 거듭했다. 전기와 가스를 이용하는 생산에서 원가가 오르고 물류비가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계획 백지화를 공약했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 공약이 곧이곧대로 지켜지리라 믿지는 않았지만 적자의 원인과 해결의 책임 모두를 너무 쉽게 국민들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이 든다.

21일 한전은 올해 2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국제가스 가격 인하 등으로 내릴 수 있는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적자를 이유를 산업통상자원부가 현행 수준 유지를 결정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총선 이후인 3분기부터 요금 인상이 본격화되리란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거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국민 부담과 환율, 국제 에너지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계별로 요금을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는 안덕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의 과거 발언이 그 근거다.

서울시는 7월 1일부터 지하철 요금 150원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지자체마다 수도요금, 시내버스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대파 한 단 가격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하더라고, 사과와 배 담당 공무원을 둔다고 하더라도, 공공요금이 들썩이는 현실에서 물가 안정이 말처럼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역대 정부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주저했던 이유를 윤석열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고심했는지 의문이다.

사과 하나 1만 원이 고물가를 상징하는 표현처럼 됐다. 9860원. 법에서 정한 2024년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놀라야 할 건 사과 하나에 1만 원이나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한 시간을 일해도 사과 하나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현실이다.

스무 번 넘는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국가 존망이 달린 저출산 위기에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는 약속은 쏟아내면서도 청년들이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임금 인상을 하자는 호소도 없다. 그래서 과일은 부자들이나 사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 됐고,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물가는 발가벗고 내쫓기는 엄동설한의 추위와 같다.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부 성적표

고물가, 저임금, 내수 침체, 수출 부진, 가계도 내수도 기업도 어렵다. 대체 윤석열 정부는 경제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와닿지 않는다. 날이 새면 물가는 오르고, 총선이 끝나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먹구름처럼 떠돈다.

대파 한 단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사과 하나 1만 원이라고 해도 일시적이라면, 작황 부진 때문이라는 정부 말에 신뢰가 간다면, 참고 견디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대파 한 단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세상 물정 모르는 대통령의 민생 살리기만 쳐다보고 있기에는 불안하다. 저임금, 고물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책도 수출을 견인할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총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승리를 장담하던 국민의힘에 빨간불이 켜졌다. 직접적인 요인은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도피 의혹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기자 회칼 테러' 언급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물가와 체감 경기도 그에 못잖은 여당의 위험 요인이다. 대통령이 뒤늦게 물가를 점검한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지만, 묵은 숙제하듯 할 수 없는 게 민생 살리기다.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박수도 받기 힘들다. 대파 발언은 보여주기식 민생 행보에 드러난 대통령의 민망한 민낯이다.
 

2020년 3월 29일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경제대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3년간 잘한 것이 하나도 없고 나라를 경영할 능력도 없다는 걸 스스로 드러낸 정권은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그거 못하면 이 나라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나라를 살리는 길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출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50년대 야당의 선거 구호가 딱 맞습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게 민심입니다."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국회에서 비상경제대책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으나 큰 지지를 받지 못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제 전세가 역전되어 똑같은 주장이 야당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못 살겠다! 심판하자!'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4월 10일 있을 총선 결과는 여야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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