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5 07:12최종 업데이트 24.02.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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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3일, 일본 도쿄의 한 도쿄 주식 시장 표시판을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도쿄 주식 시장은 1000포인트 이상 상승하며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닛케이 평균 주가는 2.89% 상승한 37,963.97로 마감하여 199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 연합뉴스/EPA

 
지난 13일 일본 최대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 톱페이지는 하루 종일 닛케이지수(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로 떠들썩했다. 닛케이지수가 1991년 버블 붕괴 이래 사상 최고점을 또다시 갱신했기 때문이다. 이날 닛케이지수는 하루 만에 1066.55포인트가 올라 37963.97을 기록했다. 또한 장중에는 마의 벽이라 일컬어지던 38000을 일시적으로 돌파하기도 했으며, 이는 34년 1개월 만의 대기록이다.

중요한 건 닛케이지수가 앞으로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4만은 통과점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근거는 충분하다. 그들은 역사적 엔저현상과 이로 인한 수출 대기업의 실적개선, 그리고 일본주식시장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은 미국주식시장의 활황세 덕분에 닛케이지수는 올해 4만에서 4만 2천까지 충분히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주가는 경제와 연동된다. 주가가 오르면 실물경제도 나아지고, 시민들의 삶도 상대적으로 윤택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경제는 체감 경기가 매우 좋지 않다. 공식적인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후생노동성이 2월 6일 발표한 정기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임금은 전년동월대비 2.5%p 감소했다. 같은 날 총무성은 물가상승율이 전년동월대비 1.2%p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거시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역시 마찬가지다. 2023년 GDP 수치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 예상치는 2022년 대비 +1.3%p이며, 민간기관의 예상치도 +1.5%p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일본이 줄곧 3위 자리를 유지해 왔던 명목 GDP는 독일에 밀려 4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1인당 명목GDP는 3만 4064달러로 OECD 가맹국 38개국 중 21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G7 국가 중에선 최하위이다. 이는 곧 물가는 상승하는데 소득이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닛케이지수는 과거 기록을 차례차례 경신하고 있다. 이 기묘한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본 주식시장 급등, 전통적인 관점으론 해석 불가
 

지난 2월 8일 도쿄의 한 거리에 도쿄 증권거래소의 일일 주가 움직임 차트가 전광판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날 도쿄 주식은 기술주 상승에 힘입어 급등했다. ⓒ 연합뉴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주가는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개별·업종별 기업실적이 개선되면 주가에 반영되고 경제도 성장한다. 미국이 좋은 예다. 기업의 실적이 발표되면 그 기업의 주가가 하루만에 몇십 퍼센트씩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연방정부 및 연준이 매달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실업률, 소비자물가지수, 금리 발표에 따라 지수가 요동친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전통적인 로직이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정부도 매달 경제성장률, 물가지수, 실업률, 경기동향지수 등 각종 경제관련 발표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발표가 닛케이지수와 사실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각 개별기업들의 분기별 실적 발표도 주가와 별 상관이 없을 정도다. 발표 당일엔 조금 반응하지만 다음 날엔 빠진 만큼 올라가거나 오른 만큼 내려간다. 지난 3년 동안 전업에 가까운 부업으로 주식을 실제로 거래하면서 이런 경험을 너무나 많이 했다. 즉 전통적인 방법으론 도저히 닛케이지수의 역대급 상승을 해석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매수자(사는 사람)가 매도자(파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내용 따윈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치'만 바라보고 새로운 매수자들이 매일매일 시장에 참여하고 있거나 한번 산 사람들이 팔지 않고 '존버'하고 있단 뜻이다. 이걸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바로 '버블'이다.

버블이니 언젠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즉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많은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이 상황을 뒷받침해주는 엔저, 금리동결, 양적완화가 지속된다면 닛케이지수는 앞으로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버블은 과거 80년대 후반의 버블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의 개입, 주가가 떨어질 수가 없다
 

지난 1월 4일 목요일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올해 거래 시작 기념식에서 일본 재무장관 스즈키 슌이치가 연설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먼저 닛케이지수의 상승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 지수의 정확한 명칭은 '닛케이225지수'이다. 각 업종별로 225개 종목(대표기업)을 선정해 지수를 산출하는 방식이며 매년 종목이 조금씩 바뀐다. 그런데 지금 닛케이지수의 상승을 이끌고 있는 종목은 225개 기업의 약 10%에 해당하는 상위 22개 기업, 그중에서도 유니클로(퍼스트리테일링), 소프트뱅크, 화낙, 도쿄일렉트론 등 네 개 기업이 상승분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의 버블 때는 상승 폭은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도 225개 기업 전체가 동반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수의 몇몇 기업이 돌출해 닛케이지수 전체를 이끄는 매우 기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두 번째로 일본 정부의 적나라한 개입이다. 지금 일본기업 주식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기관은 일본은행과 일본연금기구(GPIF)로, 이들은 도쿄프리미엄(도쿄1부) 상장회사의 25%에 해당하는 474개 기업의 주요 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숫자가 증명한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3년 12월 일본은행 등이 시장에 참여한 액수는 193.5조엔이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23년 12월 665.5조엔으로 10년만에 3.4배나 증가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 주식을 매도하지 않는다. 과거의 버블과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그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대놓고 개입하면서, 심지어 팔지도 않으니 주가가 떨어질 수가 없다. 당연히 신규 참여자들의 기대심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 떨어지지 않겠구나, 올라가겠구나 라는 '기대치'의 선반영이 지수 상승에 영향을 주는 구조가 정착돼 버렸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교훈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의 경험은 버블 붕괴 후의 지옥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이후에 있었던 리먼쇼크,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코로나 사태 때 일본정부가 보여줬던 행동 때문이다. 사건 발생 후엔 일시적으론 폭락하지만 그 폭락장에서 팔지 않고 버틴다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풀어(양적완화) 주식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눈치채 버렸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1991년 정부가 버블을 경착륙시켰다가 '잃어버린 20년'으로 된통 한 방 맞았다. 그렇기에 거시경제에 영향을 줄만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면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이 자리 잡아 버렸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길게는 1년, 짧게는 2~3개월만에 주가를 회복시켰다.

결국, 버블은 버블이다
 

일본 도쿄의 한 거리에서 한 시민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각 회사의 주가가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3월 닛케이지수는 16358을 기록했지만(3월 19일) 그 이후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4년여가 지난 지금 조정국면을 거쳐 4만 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부가 돈을 뿌렸고, 그 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정부가 아예 나서서 주식 거래를 하거나 국민들에게 장려하는 NISA(일본 소액투자 비과세제도)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NISA 제도는 1년에 100만엔 한도 내로 5년간 최대 500만 엔까지 주식 및 펀드 거래를 해서 생기는 수익에 한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개인주식 투자자 우대 정책이다. 서비스로 역대급 엔저 현상까지 겹치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물밀듯이 참여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이상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장참여자들도 '앞으로 주가대폭락과 버블붕괴가 오더라도 팔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잡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블은 버블이다. 실체 없는 돈놀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다. 당장 미국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은행구제조치(BTFP)가 3월로 끝이 난다. 몇몇 전문가들은 3월을 터닝포인트로 보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들은 대통령선거라는 이벤트 덕분에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 한다. 아무튼 미국은 버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거다.

문제는 일본이다. 지금도 일본에선 기록적인 닛케이지수 상승이 버블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전통적 관점에선 버블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이 버블을 정부가 조심하거나 견제할 생각을 안 하고 오히려 독려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일본 주식시장의 결말이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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