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1 13:35최종 업데이트 24.02.2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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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 SBS 모닝와이드 보도 화면 "'빨리 가' 택시기사 막무가내 폭행…이명·뇌진탕 증세까지" ⓒ SBS


뒷자리 오른쪽에 앉았던 승객이 운전석 뒤로 가더니 벗은 등산화로 택시 기사를 무차별 폭행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했고 '겁나게 빨리 가'라는 겁박과 함께였다. 택시 기사는 귀를 심하게 다쳐 이명을 호소하고 뇌진탕 증세로 한 달째 치료 받는 중인데 폭행범은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2023년 12월 10일 강원도 춘천 동내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2021년 서울 영등포에서 술에 취한 40대 남자가 택시 기사를 폭행한 이유는 (원래 뒤로 젖혀지지 않는) 조수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아서였다. 2022년 서울 중랑구에서 만취한 승객이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 미터기를 부숴버린 이유는 담배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택시 기사는 일상적으로 두들겨 맞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었다.


운전자 폭행 건수가 2021년 경찰청 통계로 4259건이었다. 그 해, 매일 10명 이상의 운전자가 이유도 아닌 이유로 승객에게 두들겨 맞았고 그 중 태반은 술에 취해 있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2022년 7월 22일 <헤럴드경제> 기사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며 좌절감이나 박탈감이 누적된 이들이 폭력을 방어하기 어려운 운전자를 만나면 폭력을 저지르기 굉장히 쉽다"며 "술에 취한 상태라면 '방아쇠'가 당겨지기 더 쉽다"고 해석했고, 같은 기사에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간은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풀려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하우스 안 닭들의 폭력
 

닭의 사회에도 폭력은 있다. 하지만 닭은 무방비한 상대에게는 폭력을 멈춘다. ⓒ 픽사베이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자를 향한 폭력행위는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17년 전 40대 초반 귀농했을 때 닭을 길렀다. 큰 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수백 마리 닭을 풀었다. 그 안에서 닭들은 자유롭게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었다. 

어느날 달걀을 주우러 들어간 하우스 안에서 시끄럽게 쫓고 쫓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반쯤 털이 벗겨지고 드러난 분홍빛 살에 벌건 피가 밴 닭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있었고 그 뒤를 여러 마리가 뒤쫓았다. 가만히 있던 닭들도 자기 옆을 지나는 쫓기는 닭을 쪼아댔다. 

하우스 안이라 도주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련한 그 닭은 가장 어둡고 좁은 곳에 기어들어 머리부터 박았다. 그러자 맹렬하게 쫓던 닭들이 몇 번 몸통을 쪼아대더니 흐지부지 흩어졌다. (닭이 머리부터 박는 걸 멍청하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그 세계만의 룰이다.)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마음이 서늘해졌다. 닭의 세계도 폭력은 약하고 만만한 자를 향하는구나 싶었다. 종을 가리지 않고 약하게 태어난 생명은 어디에서나 외면받고 다수의 폭행을 견뎌야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그 닭을 향한 연민이 마구 솟구쳤다. 

다음 날 큰 하우스 옆에 작은 하우스를 짓고 인간의 마음으로 가련한 그 닭을 비정한 세계에서 떼어놓았다. 폭력이 만연했던 사회에서 보호조치 된 그 닭은 하루가 다르게 피부색이 돌아오고 살이 차올랐다. 하지만 며칠 뒤 큰 하우스 안에서는 다시 새로운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죽음 직전에 이른 그 닭을 이번에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 닭도 작은 하우스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끄집어 내면 또 가장 약한 닭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작은 하우스 안에 열 마리 가까운 닭을 집어넣으면서 나는 비정한 사회에서 폭행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들의 연대가 작은 하우스 안을 따뜻하게 데워줄 거라 생각하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며칠 뒤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 작은 하우스 안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닭 한 마리가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었다. 큰 하우스와 달리 작은 하우스는 적치물 사이 비좁은 골목도 큰 사료통 밑 좁게 숨을 공간도 없었다. 마땅히 도망칠 데도 머리를 박을 곳도 찾지 못한 그 닭을 서둘러 꺼냈는데 곧 죽고 말았다. 

죽은 닭을 먹지 않고 비장한 마음으로 묻어 준 다음 날 나는 제 동료를 부리로 쪼아 죽인 닭들을 다시 큰 하우스 안에 던져 넣고 작은 하우스를 허물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폭력에 개입하지 않았다. 

약자 향한 인간의 폭행

택시 운전사에게 가장 두려운 건 (교통) 사고가 아니라 (폭행) 사건이다. 처음 택시 운전을 만류하던 지인들이 가장 많이 했던 걱정도 주취자들의 언어폭력과 물리적인 폭행이었다. 8년 전 제주에서 택시를 몰았던 5개월 동안 직접 겪은 사건도 있었다. 

친구들이 차를 세워 목적지만 말해주고 젊고 건장한 만취자를 던져 놓고 가버렸다. 지금은 동승자 없는 만취자의 탑승을 거부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별수 없이 목적지로 가면서 괜한 언어폭력에도 애를 먹었지만 차비 때문에 자기 아내를 불러냈다고 차를 막아서고 한 판 붙자는 걸 피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저런 취객과의 볼썽사나운 사건을 여러 번 겪은 후 만취자를 피하기 위해 내가 쏟은 노력은 차마 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눈물겹다. 사건은 끝나면 종결처리 되고 물리적 상처는 치료받으면 낫지만 가슴 깊이 찔려진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은 홀로 많은 시간을 지나야 치유된다. 

주취자의 비이성적 행위를 이성적으로 이겨낼 방법은 없다.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인데 택시는 그런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작은 하우스 안 궁지에 몰린 닭과 같은 존재다. 닭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알고리즘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술 먹고 분출된 스트레스를 택시 기사에게 폭력으로 퍼붓는 인간 세계의 현상은 전문가들에 의해 단박에 해석된다. 

힘없는 약자이고 운전대를 잡고 있어 방어 능력이 전무한 상황 때문이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약자를 골라 패는 가해자들의 이성적 판단은 교활하다. 폭행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물리적으로 제가 당하지 않을 순간을 정확하게 판단한다. 말하자면 술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게다가 제가 저지른 악행의 순간만을 기억에서 지워주는 놀라운 효능까지 있다. 

운전자 폭행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특별하게 가중해도 2022년 기준 5년 동안 검거가 1만 5631명인데 구속은 129명으로 1%도 안 되는 처참한 구속률을 기록한다. 

가중처벌법을 왜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법은 피해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인터넷에서 운전자 폭행을 검색하면 가해자의 형량을 최대한 낮춰주겠다는 전문 변호사들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온다. 그만큼 법률시장에서 운전자 폭행은 돈은 벌게 해주는 전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읽혀 씁쓸해졌다. 

우리나라 택시 산업 구조는 야간 운전을 해야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다. 법인 택시를 주간만 몰면 하루 평균 20만 원 선으로 법에서 금지한 변종 사납금 채우기도 벅차다. 개인택시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용돈벌이가 아닌 이상 아이들 키우고 생활비 대려면 손님이 많은 야간 운행은 필수다. 

매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전국에서 술을 마신다. 그들을 실어 나르는 택시 기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하룻밤 사이에도 기상천외한 사연들이 오르내린다. 손님이 내린 좌석에 소변이 흥건하고, 만취한 커플은 농도 짙은 애정 행각을 벌이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돈 없다고 배 째라 한다. 그리고 매일 열 명 안팎의 주취자들은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 서로 다른 입으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똑같은 말을 한다. 

이런 택시 기사 폭행이 최근 몇 년 동안의 현상은 아니다. 택시가 생기고 사람이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인류가 가장 경멸하는 전쟁이 인류의 존망과 함께 할 운명인 것처럼 약자를 향한 인간의 폭행 역시 사회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교활한 인간은 뒷통수를 내보인 채 운전대를 잡은 택시 기사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칠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고는 경찰 앞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과 단기 기억상실을 호소하고 운전자 폭행 전문 변호사를 구해 불구속 재판을 받고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사건을 종결한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공탁금으로 대신한다.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택시 기사는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무방비한 머리와 몸통을 내보인 채 운전대를 다시 한번 꽉 잡는다. ⓒ 픽사베이

 
해가 지고 술 취한 사람들이 귀가하는 시간이 되면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술을 먹었어도 대부분의 손님은 끝까지 비틀거림 없는 말과 자세로 도착지까지 가서 조용하게 내린다. 문제는 항상 일부의 거친 사람들이다. 약간의 신경전까지는 감정노동으로 감수하지만 임계점을 넘는 경우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다. 

택시는 나이가 많고 벌이가 형편없는 직업군으로 인식되었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려 하지 않는 직업이고 '이런 거'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는 조언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직업이 택시 운전이다.

거리에서 방뇨하고, 손님 없는 차 안에서 버젓이 담배 피우고, 택시 특유의 퀴퀴한 냄새에 함부로 무리하게 차 앞에 끼어들고, 대화를 강요하는 택시 기사들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있다. 

어떤 분야의 사회에서 인식되는 문화라는 게 일방의 생각으로 조성되는 게 아니라 모든 관계된 것들의 총화이기 때문에 지금 택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억울해하지는 않는다. 

택시 기사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 이면에 깔린 택시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수용하고 받아들인 후에 개선해나가야 한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쉽게 용인되는 택시 기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그것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위법하고 불법적인 행위다. 

택시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택시 폭행이라면 법적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 무방비 상태의 택시 기사를 향한 폭행은 다른 폭행에 비해 훨씬 비겁하고 교활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일관되게 기억에 없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경찰이 오면 금방 양처럼 순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행태도 그렇다. 

닭이 퍼붓던 공격을 멈춘 건 경찰 때문이 아니라 상대 닭이 구석에 머리를 박고 피가 밴 몸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연민이란 게 발동하는게다. 닭에게도 그게 연민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닭은 그런 것 정도는 할 줄 안다. 

요금할증과 함께 취객 탑승이 본격적인 시간이다. 택시 기사는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무방비한 머리와 몸통을 내보인 채 운전대를 다시 한번 꽉 잡는다. 택시 운전사에게 매일 밤 10시는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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