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6 10:35최종 업데이트 24.01.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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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4일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이날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해 천만 한국 영화 반열에 올랐다. ⓒ 연합뉴스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전두환과 12·12 군사반란을 모르는 이는 잘 없을 것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사람들이 생각보다 12·12 쿠데타의 구체적 진행 양상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영화는 누가, 언제, 어떻게 권력을 찬탈했는지 소상히 묘사함으로써 12·12 쿠데타를 역사책 속의 사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로 소환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여세를 몰아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하고 권좌에 올랐다. 사람들의 눈물과 피를 밟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신군부는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두환은 생전 10개의 훈장을 받았다. 보국훈장삼일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천수장, 보국훈장국선장, 태극무공훈장, 수교훈장광화대장, 건국훈장대한민국장, 무궁화대훈장이다. 이 중 태극무공훈장은 제3땅굴 발견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공적삼아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 최규하 대통령에게 타낸 훈장이고,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은 12·12 쿠데타로 5공화국을 출범시킨 공적으로, 수교훈장광화대장은 국가 선진화를 공적으로 둘 다 1983년 3월 11일에 셀프 수여한 훈장이다.

노태우는 생전 12개의 훈장을 받았다. 보국훈장삼일장 2회, 화랑무공훈장 2회, 충무무공훈장, 인헌무공훈장, 보국훈장천수장, 보국훈장국선장,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통일장, 청조근정훈장, 무궁화대훈장이다. 이 중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통일장, 청조근정훈장을 12·12 쿠데타 이후 전두환으로부터 받았다.

국가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을 군사반란의 전리품으로 나눠 가진 이들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 둘은 민주화 이후 1995년에 이르러 나란히 내란과 군사반란죄로 구속되어 전두환은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 노태우는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훈장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상훈법' 제8조에 따르면 국가안전에 관한 죄, 또는 사형,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서훈을 취소하고 훈장을 환수해야 한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훈장은 모조리 서훈 취소 대상이었지만, 형이 확정된 뒤에도 취소 절차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정부 시절 사면·복권되었지만 특별사면으로 잔여 형기의 집행만 면제받은 것이라서 선고받은 형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들의 서훈은 2006년 참여정부에 이르러서야 취소된다. 전두환은 9개, 노태우는 11개의 서훈이 취소되었다. 취소된 훈장이 환수된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두 사람은 취소된 훈장 반납을 거부하다가 전두환은 2013년에 이르러서야 반납했고, 노태우는 끝까지 반납하지 않고 사망했다.

이들뿐 아니라 12·12 군사반란에 참여한 것을 공적 삼아 훈장을 받은 반란 주역들 중 서훈이 취소되었으나 훈장을 반납하지 않은 인원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고, 잃어버렸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는 사람도 있다. 물론 반납하든, 하지 않든 서훈이 취소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훈장 껍데기를 품에 쥐고 산다고 이들이 꾸며 만들었던 '집권의 정당성'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무궁화대훈장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 ⓒ 국가기록원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아직 훈장이 1개씩 남아있다. 바로 무궁화대훈장이다. 무궁화대훈장은 '상훈법' 상 최고등급의 훈장이다.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배우자, 우방국의 국가원수와 배우자, 또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보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 우방국 국가원수나 배우자에게 수여한다.

제작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금 600g, 은 370g, 루비, 자수정, 비단 등이 들어가 2022년 기준 제작비용만 거의 7000만 원에 이른다. 참여정부가 전두환과 노태우의 모든 서훈을 취소하면서도 무궁화대훈장을 남겨둔 까닭은 '두 사람의 대통령 재임을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럴까. 당시 정부는 '상훈법'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예로 전직 대통령 예우 문제가 있다. 전두환, 노태우뿐 아니라 유죄판결을 받은 이명박, 박근혜까지 모두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연금 지급, 기념사업 지원, 비서 인력 지원 등 전직 대통령에게 행해지는 법률상 예우를 받지 못한다. 필요에 따라 경호, 경비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우 취소가 이들이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취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국가와 국민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예로써 대우'할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다. 재임 시절의 공과나 집권 과정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궁화대훈장 역시 마찬가지다.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의 '경력 증명서'가 아니다. 당연히 수훈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윤보선 대통령 때까지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이 패용하는 훈장'으로 존재했다. 수여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1964년 '상훈법'이 제정되면서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바뀐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대통령이라 매번 '셀프 수여' 논란이 있지만, 무궁화대훈장을 받아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대통령마다 임기 시작할 때, 임기 중간, 임기 말 등 훈장을 받는 시기도 제각각이다. 대통령으로 재임했어도 무궁화대훈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법에 따라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 추탈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무궁화대훈장을 남겨두는 정부가 위법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훈법'은 훈장 취소 요건이 발생하면 정부가 절차에 따라 '취소하고 환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무궁화대훈장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둔다거나, 취소 요건 발생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조항은 두고 있지 않다.

역사에 기록되게 해서는 안 된다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의 선고공판에 출석한 전두환(오른쪽)과 노태우. ⓒ 연합뉴스


전두환과 노태우를 위시한 신군부는 외적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본분을 잊은 채 아군과 시민을 살해하고 권력을 찬탈했다. 이들도 정부를 운영했던 사람들이니 집권 기간 내내 국민에게 해악만 끼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탈취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었지만 대통령이었으니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제2, 제3의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에서는 과정의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결과가 용인될 수 없다.

두 사람이 권좌에 오르기 위해 나라를 뒤엎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소중한 꿈을 잃고 세상을 떠났고, 유족들은 억울하다는 말 한번 못해보고 십수 년을 숨죽여 살았다. 뒤늦게 명예 회복이 되었다지만, 무고한 죽음을 야기한 이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자신들의 과거를 '구국의 혁명'으로 미화한다. <서울의 봄>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었던 건, 반란과 내란으로 일그러진 우리 헌정사의 제자리 찾기가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사실과 국민으로부터 예우와 존경을 받는 일은 엄연히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 위법 소지를 남겨가면서까지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에게 무궁화대훈장을 남겨놓고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전두환과 노태우의 무궁화대훈장을 추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 전두환을 미화하고 당선된 뒤에는 그 부인을 예방했던 윤 대통령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늘 '헌법 가치'를 강조해 온 만큼 진영 논리를 넘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무궁화대훈장이 그대로 서훈되어있는 위법 상태를 해소하길 바랄 뿐이다.

전두환, 노태우 무궁화대훈장 추탈 촉구 온라인 서명 : bit.ly/removem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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