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5 18:22최종 업데이트 24.01.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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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갑진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대통령실


1일 발표된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를 두고 지난해 신년사에는 없던 '민생'을 9차례나 언급했다며 민생과 안정에 무게를 실었다는 언론 사설이 줄을 이었다. 이런 걸 두고 '꿈보다 해몽이 낫다'고 한다.

나쁜 실물 경기와 통계는 언급하지 않고 좋은 통계만 인용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다고 주장하는 건 부끄러운 공치사에 지나지 않는다. 민생을 강조했다고 하지만 정부가 2024년에 어떤 경제 정책을 펴겠다는 건지 와 닿지도 않는다.


오히려 신년사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건 '카르텔' 척결 의지다. 윤 대통령은 카르텔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이라고 했다. 사전적 의미의 카르텔은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시장 독점의 연합 형태"를 뜻한다. 

대통령은 기업 카르텔을 말한 것 같지 않다. 또한 있는 죄도 덮고 없는 죄도 만들어 낸다는 검찰 권력의 부패한 패거리 문화를 겨냥한 것도 아닌 듯하다. 대통령 부인의 여러 의혹을 감추려는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보이지 않는 짬짜미를 척결해야 할 카르텔이라고 했을 리도 없다.

대통령의 카르텔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386 청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 년간 386이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

대통령의 카르텔은 기업이나 정치권력, 검찰권력이 아니라 386 운동권 세력을 지목했다는 것이 언론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무리도 아니다. 대통령이 온갖 종류의 카르텔을 언급할 때마다 귀결은 한결같이 386 운동권 부정과 부패로 귀결되었다.

윤석열 정부 법무부 장관 출신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락 연설에서 386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주장한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386 운동권이 정권의 폭정이나 검찰의 횡포를 넘어서는 부패한 패거리 집단이라는 생각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카르텔 척결을 주장하고 여당 비대위원장이 취임사에서 386 특권정치 청산을 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386세대'는 전두환의 1980년 광주 학살을 보면서 분노하며 조직적으로 군사정권에 대항했던 학생 운동권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민주와 외세를 배격한 자주, 대결보다는 통일을 주장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노동해방을 위해 싸웠다. 1987년 6월 항쟁, 노동자 대투쟁, 군부독재의 종식도 386세대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세대가 50~60대가 되어 586, 686으로 불린다. 군부독재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섰던 청년들이 30여 년 후 부패한 카르텔로 지목되었다.

386 학생 운동권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생각을 바꿔 보수정당에 들어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떻게 전두환 후신인 보수정당에 몸담을 수 있냐며 전향이라 비판했지만 그건 후대 역사가 평가할 영역이다.

이전 세대를 비판하고 극복하겠다는 포부로 정치에 입문한 386세대. 일부는 비리와 성추문 등으로 국민의 따가운 질타와 법의 심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86세대 전체를 카르텔로 지목하고 척결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리 정치인은 심판받아야 하고 퇴출되어야 된다. 386 정치인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지만 개인의 비리와 함량 미달을 386 카르텔로 보는 건 동의하기 힘들다. 386세대 전체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협정을 맺은 것도 아니고 비리를 공모한 것도 아니다.

산업화 세대 어떤 정치인의 비리가 드러났다고 국민의힘 비대위원 낙마자처럼 노인 전체를 두고 빨리빨리 돌아가시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386세대, 50~60대가 되었지만 그때 가졌던 애국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시민도 여전히 많다. 박근혜 국정농단 탄핵 투쟁에서 자녀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왔던 386세대, 이들은 윤석열 정부에게 동료 시민인가, 척결 대상 카르텔인가.

386은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시대정신이다. 군부독재에 대항해 싸웠던 이들에게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해방은 신념이고 이념이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이라며 척결하겠다고 했다.

반민주 폭거를 일삼고 한반도 평화보다 긴장 조성에 열을 올리는 윤석열 정부, 노동자의 인권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대통령. 386을 이념 카르텔로 지목하고 척결하겠다는 주장이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해방의 과거 이념이 여전히 눈엣가시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광주 방문에서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을 왜 다시 반복하는지 의아하다. 또한 386 청산을 주장하면서 5·18 정신의 헌법 수록 약속이 지켜질지 궁금하다.

정치는 선거를 통해 젊어지고 개혁적으로 변해야 한다. 386, 이제 50~60대가 된 그들에게 아랫세대들에게도 정치의 장을 열어주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 막말하고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386을 비대위원으로 중용하는 건 더 나은 방향이라 할 수 없다. 비록 여론의 따가운 뭇매에 사퇴하기는 했지만 이런 386을 정치에 불러들이는 일부터 하지 말아야 했다.

척결되어야 할 진짜 '범죄은폐' 카르텔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법'의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넘어 온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의혹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사건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크게 한방 얻어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패의 카르텔은 이런 것이다. 수많은 의혹에도 수사조차 하지 않았던 검찰, 의혹은 보도하지 않고 일방적 변명만 대서특필했던 언론, 김건희 특검법이 모욕주기라며 도이치모터스 특검으로 불러야 한다면서 본질을 감추려 한 국민의힘, 특검이 총선을 겨냥한 악법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정부. 이 모두가 거대한 범죄 은폐의 카르텔인 것이다.

카르텔 척결 좋다. 386 정치인에게 비리가 있다면 모든 사정당국이 나선다고 해도 박수칠 일이지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386 시대정신까지 이념 카르텔로 규정하고 척결을 주장하는 건 윤석열 정부가 반민주 외세의존, 노동탄압 정권임을 자인하는 우스운 모양새일 뿐이다.

검찰 카르텔, 언론 카르텔, 정치권력 카르텔. 대한민국의 공정과 상식을 가로막는 이 거대한 카르텔을 대통령은 왜 매번 못 본 척하는가? 김건희 특검법이 악법이라고? 그것이 악법이라면 그동안 검찰이 제 역할을 못해 만들어 진 것 아닌가. 대통령의 신년사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취임사가 맞닿은 부분에서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무서운 증오정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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