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3편의 한국독립영화 장편 신작을 만났다. 3편 모두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단편들을 선보였던 신진 여성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이었고 그해 한국경쟁 부문에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수상과 주목을 획득하기도 했다. 해당 작품들은 각각 단편 <야간근무>로 공장에서 만난 동년배 취업준비생과 이주 여성 노동자의 관계를 다뤘던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 단편 <차대리>에서 선임자로서 인턴을 바라보며 갈등하는 시선을 묘사한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 그리고 단편 <면도>를 통해 여전히 직장과 사생활에서 차별의 그림자에 대처해야 하는 주인공의 결단을 인상적으로 다뤘던 정지혜 감독의 <정순>이었다.
 
3편의 영화는 촉망받는 여성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함께 다뤄볼 구석이 여러모로 존재했다. 20-30대 여성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동 세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은 21세기 한국독립영화에서 주요한 경향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지만, 이들의 작품들은 그에 국한되지 않고 일종의 '버디 무비'처럼 모녀를 공동 주인공으로 세우는 도전을 선보인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기세에 힘입어 다른 2편은 곧바로 극장 개봉에 돌입할 수 있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와 <경아의 딸>은 5월 전주에서 소개된 후 여세를 몰아 같은 해 6월 중에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이주영과 하윤경이라는, 영화 애호가들에겐 일정한 지명도를 얻은 배우들이 '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해당 영화들에서 열연한 '엄마' 역할의 오민애, 김정영 배우 역시 세계적 인기를 얻은 모 OTT 드라마에서 주목할 만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이후 맹활약 중이다. 하지만 유독 3편 중에도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상복이 많았던 <정순>의 소식은 뜸했다. 간간이 해외 영화제 수상 소식도 들려왔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너무 시간이 벌어지면 개봉이 여의치 않을 텐데 하고 괜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제 최초 공개 후 거의 만 2년이 지나 너무 늦지 않게 <정순>이 막차로 극장 개봉을 맞이한 것이다.
 
중년에 찾아온 오랜만의 연애, 그리고 위기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차 안에서 모녀가 일상에서 흔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장성한 딸은 결혼을 앞둔 상태이고 둘은 각각 출퇴근길이다. 엄마는 공장 야간근무로 향하는 길, 딸은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처럼 보인다. 차는 흔한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다. '도농복합지역'이라 불릴 만한 특징을 가진 교외 동네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 '정순'은 견과류를 제조 및 포장하는 동네 식품공장에서 일한다. 남편 없이 딸을 키우고 중년에 들어선 지 한참 되었다. 댓거리도 잘하고 새파란 관리자에게 쉽사리 주눅이 들지도 않는 억척스러운 '아줌마'이지만 은근히 곱고 섬세한 면모가 엿보인다. 딸은 직장 동료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동네에 작은 아파트도 장만한 상태라 힘닿는 한 공장에서 일하면서 손 안 벌리고 살 형편은 되는, 평온한 일상이라 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이제 곧 '할머니' 소리 들을 일만 남은 정순의 표정 한 구석엔 쓸쓸함과 외로움이 엿보인다.
 
정순이 일하는 공장에는 끊이지 않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떠나가게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정순과 또래로 보이는 과묵한 중년 남자 '영수'가 첫 출근을 맞는다. 늘 반복되던 공장 근무에서 만난 새 얼굴에 정순은 괜히 신경이 쓰인다. 생소한 공장 업무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 영수에게 소소한 직무를 알려주면서 정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그룹에 영수를 받아들인다. 마음 맞는 동년배 직원들끼리 휴일에 간 산행에서 두 사람은 이끌리기 시작해 둘만의 관계를 맺어간다. 오랫동안 엄마로서 역할에만 충실하다가 인생의 황혼으로 접어들던 정순은 실로 오랜만에 두근두근 설레는 감정을 체험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무릎이 성치 않아 이 시골 동네까지 흘러들어온 가진 것 하나 없는 영수이지만 정순에게 그런 조건은 별로 중요치 않다.
 
혼자 작은 아파트에서 외롭게 지내던 정순은 영수가 생활하는 여관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주연 남녀의 사랑은 사춘기 소년-소녀들과는 다르게 마련이다. 이들은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즐기며 은밀한 교감에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 관계에만 충실하면 족한 정순과 달리 영수는 굳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을 해가며 즐긴다. 촬영에 질색하는 정순이지만 설마 별일 생길까 싶어 점점 무뎌져 간다. 독립적인 성향의 딸 '유진'은 결혼 준비도 신세대답게 알아서 척척 해버린다. 이제 자신은 별로 간섭할 게 없다며 살짝 서운해진 정순은 더욱 영수와의 관계에 빠져든다. 둘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얼마 안 가 화해해가며 뒤늦게 찾아온 중년의 사랑을 이어간다.
 
그런 가운데 공장에서의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공장 사람들이 정순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도 제대로 찍힌 정순의 일상은 붕괴상태에 처하고 만다. 딸 유진은 결혼식도 연기해가며 엄마를 책임지려 하지만,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째 무너진 정순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모녀간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엄연히 정순이 피해자인데도 세상은 피해자가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도록 취급한다. 하지만 정순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맞서 거듭 도전해야만 한다.
 
여성서사에 현미경 같은 21세기 '노동'의 풍경이 더해지다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를 만든 정지혜 감독은 영화 창작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에 생활을 위해 식품 가공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2년간 해봤다고 한다. '단기 알바'라기엔 제법 긴 시간이다. 영화의 배경인 경남 양산의 견과류 제조공장에서 일하며 감독은 영화 속 정순처럼 '이모'라 불리는 중년 여성 노동자들과 부대끼는 체험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경험치는 곧 <정순>에서 주인공과 동료들의 '디테일'한 작업장 묘사로 이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독립영화가 어느새 청년세대-영화전공 위주로 돌아가면서 20세기 독립영화 작업에 비교해 결정적으로 취약해진 부분 중 '노동' 영역이 속해 있다는 건 단편적인 의견이 될 수 없다. 주요 창작 계층이 신자유주의 불안정노동이 지배적 현상이 되기 시작한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사회에 진입한 세대인 데다, 정규 영화교육 과정을 거쳐 영화 '산업예비군'으로 배출되다 보니 전문직화되면서 기존의 '노동시장'과 유리된 결과의 축적인 셈이다.

이런 조건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이 겪고 있는 불안정노동의 파괴적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중장년층은 물론 동 세대가 접하는 취업절벽과 (정작 자신들의 조건이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극악한데도 불구하고) 분리되고만 '특수업종' 종사자로서의 단절과정으로 고착화되어간다. 전업 영화인으로서의 가능성 척도로 기능하는 영화학과 졸업작품들이 지나치게 전공 내부적인 내용으로만 치우친다는 관객의 평가는 그리 틀리지 않는 편인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독립영화 다수, 특히 극영화 장르에서 '노동'은 자신들이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 '단기 알바', 과외나 교내 혹은 편의점과 요식업 아르바이트들로 채워지거나 취업절벽을 피상적으로 묘사한 취준생이나 인턴 혹은 사무 계약직으로 표상되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 경우 외엔 태반이 그렇다.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묘사는 정묘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경험이나 온라인 곳곳에서 수집한 파편적 정보로 채워진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 외엔 '세상 물정' 모르거나 '사회경험 부족'하다고 치부되기 딱 좋은 취약점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를 벗어난 일군의 작품들은 기성세대가 온전히 감지하지 못하는 21세기 노동의 단면을 포착하고 소개하곤 한다. <정순> 역시 노동영화 정체성을 내세우진 않지만, 영화 내내 주요 배경으로 기능하는 공장 내의 풍경과 역학관계는 결코 허투루 다뤄지지 않는다.
 
주인공 정순은 '이모'라 불리는 일단의 중년 여성노동자들 가운데에서도 주목받는 존재다. 이 공장에는 정순과 같은 '이모'들과 동년배의 남성노동자, 그리고 청년세대에 속하는 남녀 노동자들이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나이나 친소관계에 따른 수많은 합종연횡이 이뤄진다. 무던하게 자기 할 일 하면서 어울리는 중장년층 노동자들은 함께 회식하거나 산행을 진행하는 등 무던한 면모를 보인다. 반대편에는 젊은 나이에도 관리자 자리를 꿰찬 '도윤'이 위치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권한을 적당히 남용해 젊은 여성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군림하며 작은 권력자로 존재한다. 이 작은 시골 공장에선 노동조합이나 조직적으로 노동자 권익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딱히 엿보이지 않는다. '노조망국론'을 선거 때마다 설파하는 보수정당과 우파 유튜버가 즐비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형편없는 현실의 반영이다.
 
도윤의 일상적인 횡포와 잘난 체를 사석에선 누구나 욕하지만, 사용자의 말단에서 생사여탈 권한을 쥔 그에게 공공연히 입바른 소리를 할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정순이 굳이 맞설 의도는 아니지만 도윤의 억지 '가오 잡기'에 종종 초를 친 덕분에 영 자신의 명령이 서지 않는다고 판단한 도윤의 앙심은 후반부 정순의 수난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격렬하게 노사쟁의가 일어날 여지보다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선택으로 기울게 마련인 중소기업 공장에서 도윤의 권력자 행세가 정작 영화 속 소란의 원흉임에도 그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자들에겐 위에는 설설 기고 아래에는 하대하며 부리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윤이 벌이는 사사로운 횡포는 사용자들에겐 (자신들의 이익에 심대한 타격이 오기 전까지는) 딱히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노사관계와 권력구도는 영화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
 
'엄마'와 '이모'에서 벗어나 고통 속에서 이름을 되찾은 주인공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주인공 정순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나쁘지 않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고생 꽤 겪었겠지만, 자식은 장성해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알아서 자기 앞가림도 하고 사위도 번듯해 보인다. 이제 고즈넉한 은퇴 생활 전까지 적당히 지금 직장에서 심심할 틈 없이 능력껏 지내면 될 법한 나날이다. 손주를 보면 맞벌이하는 사위와 딸을 위해 돌봄 노동으로 자연스레 이전하게 될 테다. 자식이 웬수다! 하는 세상에서 정순의 미래는 '엄마'로서 나름대로 탄탄대로 격이다. 공장에서도 가끔 관리자와 충돌하는 것만 눈치 좀 본다면 정순 '이모'는 무던하고 괄시받을 일 없는 존재다. 작은 소그룹 내에서 리더 역할이기도 하고 가끔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도윤도 이 '이모'를 마구 대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적당히 살면 만사형통이던 정순의 삶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딸 유진을 챙기기 위해 (남편의 부재 속에서) 정순이 짊어져야 했던 부담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노력 끝에 유진은 잘 컸지만 그만큼 정순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쳤을 테다. 딱히 다른 물려받은 재산이나 고수익 전문직 경력이 있을 리 만무한 정순의 과거를 유추해 보면 쉽게 파악될 일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낸 주인공이 이제 흐뭇하게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남는 게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은 손주 돌봄이나 혹은 복지관/주민센터에서 또래들과 함께 나이가 들며 보내는 소일거리 말고 다른 기회는 없는 걸까?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필 정순은 영수를 만나고 만 것이다. 영수는 나쁘지 않은 상대였지만, 주위 사정 봐가며 민폐를 끼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중년의 로맨스를 이어가려는 정순에 비해 '한(국)남(자)'의 마초적 허세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영수의 한계는 사랑하던 상대방에게 회복 불가능의 상처를 던진다.
 
정순은 몇 번의 고비를 차례로 견뎌야만 한다. 장편영화의 호흡 가운데 주인공은 도식적인 위기와 극복이 아닌, 실로 정신 줄 몇 번이고 놓쳐도 이해해줄 법한 단계별 수난에 처한다. 그 수난의 단계와 수위는 선정적인 묘사와는 한참 거리가 멀면서도 당사자의 심정을 최대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정교하게 작용한 결과일 테다. 극악한 다크웹 유포그룹이 아니라서 더 오싹해질 법한 평범한 이들의 '단톡방' 동영상 유포가 1차로 정순의 삶을 파괴한다. 좋아서 단둘만의 것으로 상정했던 동영상은 남자들만의 단톡방에서 도윤의 부추김을 받은 영수의 허세로 인해 처음 공유된다. 곧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전송망을 타고 삽시간에 영상이 퍼져나간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유포자는 금방 특정이 되고, 좁은 동네다 보니 유포 범위는 도회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았다. 일단 뒷수습을 하는 게 우선이라 여긴 딸 유진은 엄마의 케어와 경찰 수사에 헌신한다.
 
그러나 결혼식도 연기해가며 엄마를 지키려는 딸의 수고도 정순에게 닥친 배신감과 상처를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정순 역할을 맡은 배우 김금순의 상징 표현적인 압도적 연기력으로 구현된 동영상 유출 피해 여성의 그야말로 '영혼이 찢어지는' 심정은 주변의 위로와 도움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본인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일탈' 때문에 딸의 혼사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엄마'로서의 걱정은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또 다른 압박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도 정작 가해자는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유지하는데 피해자는 세간의 눈치를 살피며 무형의 창살 아래 갇힌 것처럼 살아야 하는 시간 또한 부당함으로 다가온다. 그런 복합적인 고초와 압박은 정순에게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독립적인 개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물 흐르듯 순탄할 리 없다. 굳이 그렇게 독립된 자아를 확인하기 위해 정순이 타인으로선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까닭도 없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정순이 치러야 했던 억겁의 고초는 그를 새롭게 부활시키고 만다.
 
21세기 한국사회의 복합성과 여성 서사의 전망을 구현하다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정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정순은 끝끝내 살아남고자 후반부 내내 처절하게 싸운다. 싸움의 적수는 한둘이 아니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당사자인 과거의 연인 '영수', 그리고 배후에서 영수의 허영심을 부추겨 정순을 해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알량한 권력을 강화하려 획책한 관리자 '도윤'이 대척점에 선 공개적인 '적'일 테지만, 영화 속에서 정순이 맞서야 할 상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표현에서 영화 <정순>의 탁월함이 발휘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순은 아마 일평생 자신이 영화 속에서 겪었던 피해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을 테다. 그가 결말에서 보이는 결연한 태도와 의지는 (자신이 그저 피해자에 불과한) 추문을 피해 멀리 이사하거나 은둔해 사는 미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정순은 자기 나름대로 매듭을 짓고 결착을 내기 위해 단호한 행동에 나선다. 물론 그 사적 해결의 과정은 여전히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서 '판타지'에 가까울 후련한 복수와는 다른 형태로 선보여진다. 그저 평범한 공장 '이모'에 불과한 정순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라고는 그가 온갖 손실을 감내하며 저지른 생채기 같은 행위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순은 생채기를 몇 명의 뇌리에 새기는 데 성공했을 법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별 영향력 없어 보이는 사법절차 조치보다는 모골 송연하게 가해자들에게 투척한 상징적 복수가 더 유효하고 후련하리라 결단한 정순이다.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정순은 영화 내내 애쓴다. 남들에게, 특히 딸에게 차마 보일 수 없는 감정을 그는 홀로 표출하며 울부짖는다. 그렇게 온전히 '자기만의 방'에서 감정의 응어리를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시간 속에서 정순은 자신의 오랫동안 묻어둔 이름(과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막대 구부리기' 투쟁을 결사한다. 딸 유진에게 쏟아내는 격한 반응은 딸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그런 자주성 회복의 격한 움직임으로 이해되면 족할 몫이다. 그렇게 바깥으로 배출해야 할 피고름을 쏟아내야만 정순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과정에 대한 이해가 영화 속 주인공을 향한 공감으로 나아가길 제작진은 열렬히 희망했을 법하다.
 
정순의 단계별 판단과 대응은 단호하게 가해자에 대해 인과응보가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픈 여성 관객들에겐 아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변변찮은 사내들의 허세와 패거리 의식, 그런 일상의 악덕이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가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지독하게 현실에 기반하기에 더 강렬하게 한구석에 새겨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필자를 비롯한 '한국남자'들은 각자의 안일함과 비겁함을 돌아보고 반성해야만 할 테다. 이 영화 속의 죄악이 너무나 일상화된 풍경으로 조명되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정순>은 지독한 현실 모사와 함께 '살아남자!'는 여전히 유효한 숙제를 제출한다. 딸의 트럭에, 애인의 렌트카에 늘 몸을 싣던 정순은 재기와 부활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 운전면허 획득에 나선다. 물론 그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다. 터를 잡고 지낸 동네인데도 당당하게 차를 운전해 지나가기란 피해자가 눈치를 보고 떠나기 일쑤인 한국 사회의 부정적 속성처럼 이불 속에서 탈출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정순이 공장에서의 씻김 굿 같은 통과의례로서의 복수극을 마치고 난 뒤에야 그는 비로소 운전에 성공한다. 털어야 할 것을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출발은 영영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런 혈루의 흔적이 주인공 정순 역의 김금순 배우 열연은 물론, 엄마의 헌신으로 다음 세대의 독립적 여성으로 성장한 딸 유진 역 윤금선아 배우로 여성연대를 구현하기에 이른다. 얼핏 뜬금이 없어 보이지만 영수가 묵고 있는 여관 인근에서 정순이 거듭 마주치는 여성 노숙자와의 관계 변화는 제작진이 정교하게 직조한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연동되는 척도일 테다. 그 대척점에 선 비루한 '한국남자'들의 군상, 영수 역 조현우 배우와 도윤 역 김최용준 배우의 부담 가득했을 캐릭터 소화 역시 눈에 들어온다. 으스대며 마초적 면모를 과시하던 그들이 막상 정순의 복수 앞에서 비루함 그 자체로 쪼그라드는 행태는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수렁에서 헤어나오는 서사와 대비되며 변명 불가능한 찌질함을 완성한다. 그렇게 탄탄한 연기로 구현된 감독의 비전은 앞으로 한국독립영화에서 여성 서사가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할 방향을 온전히 가리키고 있다.
 
<작품정보>
 
정순 Jeong-sun
2024│한국│드라마
2024.04.17. 개봉│104분│15세 관람가
감독 정지혜
출연 김금순(정순 역), 윤금선아(유진 역), 조현우(영수 역), 김최용준(도윤 역)
제작 시네마루
배급 (주)더쿱디스트리뷰션
 
2022 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2022 17회 로마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여우주연상(김금순)
2022 59회 금마장 Observation Missions for Asian Cinema Award
2022 24회 부산독립영화제 최우수 연기상(김금순, 윤금선아)
2022 7회 아스완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22 5회 고창농촌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대상
 
2022 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 섹션 개막작
2022 66회 BFI 런던영화제 데뷔작 경쟁 섹션 공식 초청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 섹션 공식 초청
2023 19회 취리히영화제 New World View 섹션 공식 초청
2022 11회 광주독립영화제 폐막작
2022 2회 무학산영화제 개막작
2022 4회 하이난국제영화제 Fest Best 섹션 공식 초청
10회 바르셀로나아시안영화제 공식 초청
2023 10회 캐나다한국영화제 K-Contemporary 섹션 공식 초청
2023 10회 부산여성영화제 공식 초청
2회 레드로터스아시안영화제 공식 초청
2023 14회 익산여성영화제 공식 초청
2022 22회 충북여성영화제 공식 초청
정순 정지혜감독 김금순 윤금선아 김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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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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