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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진상 건축주'가 되어버렸다

[고향집 다시 짓기]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이 죽 끓듯... 8년 별렀던 집 짓기의 끝이 보인다

등록 2024.04.22 15:05수정 2024.04.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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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편집자말]
봄이 왔다. 3월이다. 기다림은 끝이 났고, 벽체와 천장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도 전부 치워졌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진상 건축주가 되어버렸다.

"(현장)소장님, 천장을 어떻게 할 건지 언제까지 결정해요? 제게 욕심내지 말라고 해 주십쇼."
"욕심내지 마세요!"



집을 지으면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원칙이라면, 도면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바꾼다는 것은, 미리 잡아놓은 계획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건 그만큼 비용이 증가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예상했던 예산을 꽉 채운 상황이라, 설계 변경은 나에게도 시공팀에게도 힘든 상황이다. 결심은 굳건했다. 그래서 설계에만 8개월 가까운 시간을 썼던 것이고, 화장실 수전과 벽지 색까지 정한 후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수많은 질문이 반복되던 3월, 숨어있던 '진상'이 나타났다.

골조가 끝나고 양생을 위한 기다림이 끝난 후, 현장은 분주해졌다. 때마침 따스해진 햇살과 함께 여러 개의 작업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었다. 창호를 끼우는 동안, 외벽엔 한 겹의 단열재가 더 덮였다. 물이 조금이라도 쌓일 수 있는 곳엔 몇 번이나 방수가 진행되었고, 내부에선 보일러의 배관을 설치한 후 바닥 미장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곧바로 내부 벽체를 정리하는 석고보드 작업이 이어졌고, 외벽에 대한 마무리도 진행 중이었다.

단열재로 한참 뚱뚱해진 벽체엔 메쉬(Mesh)를 붙인 후 내외장 마감재인 스타코를 덮어 외벽을 완성했고, 방수가 몇 겹이나 씌워진 지붕은 심혈을 기울여서 선정한 민트색 아연도금 강판이 씌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공정의 담당자로 꽉 채워진 현장은 봄답게 생기 있고 화려했다.

딱 한 사람, 변덕을 부리느라 정신이 없는 건축주, 나를 빼면.


예상 못했던 '천장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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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외관이 바뀌는 과정들 콘크리트 주택의 외단열과 스타코 마무리를 선택한 우리집이다. 그림으로 그려놓았던 공간이 그대로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놀랍다. ⓒ 하규하

 
실은 처음부터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철근 콘크리트를 선택했으면서 경사지붕을 고집한 것부터가 말이다. 하지만, 집을 집으로 보이게 하려면 지붕을 포기할 수 없었고, 이것은 기본인 평지붕에서 꽤나 큰 비용을 추가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포기하지 못한 나의 고집은 한겨울에 목수분들을 고생시켰지만, 한 달의 기다림이 끝나자 깜짝 놀랄 만큼 멋진 공간을 눈앞에 데려다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굳건했던 결심은 흔들렸고,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끓어 넘치고 있었다.

당초 설계는 아파트 천장처럼 2.4미터 높이의 평면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비용이 더 들지도 않았고, 살기에도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고향 집도 평천장이었고, 익숙한 아파트의 공간도 다르지 않으니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 옛말은 틀리지 않는다.

견물생심, 눈에 보이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멋지고 시원하게 한껏 높아진 경사 천장은 매력적이었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거야말로, 천장 대란이다.

"(현장) 소장님, 1층은 그냥 살리고, 2층은 원래대로 평천장으로 막을 게요!"
"소장님, 안 되겠어요. 조금만 더 고민해 볼게요."
"소장님, 아니에요. 원래대로 할게요. 돈이 없어요."
"소장님, 다시 바꿀게요. 1층은 경사면을 살리고, 2층은 조금만 더 고민할게요!"
"소장님.... 저 조금 더 고민해도 돼요? 시간이 있어요?"
"소장님, 결심했어요! 2층 거실은 층고를 살리고, 방은 그냥 평천장으로 할게요. 이젠 안 바꿔요."
"소장님? 저, …"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건축주를 상대해야만 하는 현장 소장은 꽤나 극한 직업임에 분명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그랬다면 당장 차단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소장님은 연락처를 차단하기는커녕 계속 설명해 주시니 감사했다. 집을 지으면서 진상 건축주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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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대란의 기록 지붕을 선택했더니, 집의 내부에도 이렇게나 멋진 경사 천장이 가능해졌다. 눈으로 보지 않았을때는 그냥 평천장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아니었다. ⓒ 하규하

 
천장 대란은 현명한 현장소장님의 적절한 중재로 가까스로 마무리되었다. 1층의 경사면은 에어컨이 설치되는 면적을 제외하고 경사면을 남기기로 했고, 2층은 모든 공간의 층고를 살려서 경사 천장으로 시공하되, 계단실만 관리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평천장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일단 결심을 하고 났더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나와 현장을 괴롭혔던 고민과 변덕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와! 소장님, 정말 이쁘지 않아요? 역시, 이렇게 하길 잘했어요! 하하하!"

기가 막히다. 진상 건축주의 죽 끓듯 한 변덕이 얼마나 지났다고, 고민이 없었던 것처럼 당당할 수 있다니! 마음 좋은 현장소장님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셨지만, 그 변덕의 기록을 복기하는 지금의 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귀까지 빨개진다. 죄송합니다, 현장소장님!

결정하면 바꾸기 쉽지 않은 건축, 운이 좋았다

앞서 소개한 천장 대란은 수많은 변덕 중 하나일 뿐이다. 도면이 확정된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현장의 상황이나 구조물에서 확인되는 동선을 고려하여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 발생했다. 현장소장님은 공사가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변화가 필요한 내용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고 선택을 위한 건축주의 변덕을 끈기 있게 견뎌내 주셨다.

건축이라는 것이 한 번 결정한 것을 바꾸는 게 쉽지 않으니, 고민의 시간을 이해해 주는 시공팀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운이 좋은 건축주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건축주(=나)의 변덕과 고민만 빼면, 골조작업 이후의 공정들은 순조로웠다. 전체 공사비의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처리해야 하는 일로 보기엔 작업들이 끝도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노동을 통해 쌓아 가는 시간만이 답이었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한 땀 한 땀 이뤄내야 하는 집 짓기에는, 언제나 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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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치워진 후, 2층 베란다에도 난간이 생겼음 이젠 마무리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2층의 베란다에도 난간이 생겼고, 내부에도 대부분의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다. 준공심사를 위한 몇 개의 작업만 진행하면, 집이 지어진다. ⓒ 하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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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층 서재에도 책장이! 가구들이 설치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왔다. 2층의 내 공간은 거의 대부분이 책장으로 채워진다. 지금 포항집의 책들이 저기에 다 꽂혀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천정까지 이어지는 책장은 꼭 갖고 싶었다. ⓒ 이창희

 
3월을 지나며 건물의 내부와 외부는 마무리되었다. 완공까지 3개월이 걸릴 줄 알았더니 더 빨랐다. 4월 10일엔 도배가 끝났고 4월 16일에는 바닥에 마루가 깔리더니, 4월 19일에 공사장을 찾았을 때는 붙박이 가구가 한참 설치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공용공간 외부로 연결되는 공간의 마무리를 할 업체를 정했고 정화조를 포함한 오수처리 설비 업체와도 계약을 했다.

8년을 별렀던 고향 집 다시 짓기는 끝을 향해가고 있다. 지루한 겨울과는 달리 찬란한 봄은 순식간이듯, 집이 되기 위한 마무리 작업은 짧은 봄처럼 바삐 지나갔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인생의 커다란 목표를 끝내버린 허탈함과 공사를 통해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쓸쓸함으로, 한껏 우중충해진 초여름을 맞이하는 중이다. 나,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고향집다시짓기 #집짓기의즐거움 #마무리공사 #진상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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