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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말이 말 같지 않아?" 나도 이러기 싫은데

[50대 아빠 두 꼬맹이 양육기②] 웃는 얼굴로만 양육할 수 있다면

등록 2024.03.30 13:41수정 2024.03.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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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양육하기', 미션 임파서블이다. 웃으며 시작하다가도 매번 화내며 끝내기, 양육은 항상 그렇게 흘러간다. ⓒ 김대홍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웃으면 좋다. 찡그리는 건 보기 좋지 않다. 웃으면서, 여유있는 모습으로 상대를 대하고 싶다. 막상 현실이 되면, 내 일이 되면 달라진다. 참 민망하게도 아이들 앞에서 그렇다.


저녁 식사 자리다. "자 밥 먹자"고 한 마디 한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아랑곳없이 놀고 있다. 좋은 분위기로 이끌고 싶다. "아, 우리 어린이들 식사를 하실까요?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요? 너무 궁금하네." 아이들은 아빠가 재미난 놀이를 한다고 생각해 식탁으로 다가온다. '흘깃' 보고 다시 거실로 가서 자기들끼리 '까르르' 한다. '슬슬' 표정이 굳어진다. 목소리를 '쫙' 깔고서 말한다. "너희들, 빨리 식탁에 앉지 않을래? 혼나고 싶어?"

식탁에 앉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밥을 먹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보자, 오늘은 맛있는 게 너무 많네. 아빠가 먼저 맛있게 먹어야지. 냠냠냠."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다시 놀기 시작한다. "아빠, 나 좀 봐"라면서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자기들끼리 간지럽힌다. 한 아이가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 가고 한 아이가 뒤를 잇는다. 또 '슬슬' 표정이 굳어진다. 화기애애하게 밥 먹는 건 글렀구나 싶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자는 시간이 됐다. 항상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그날 마지막 기억이 그 다음 날 기분과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잠옷을 다 입고 나면 놀이를 한다. 닭싸움, 집에서 달리기, 앉아서 달리기, 굴러서 달리기, 실내 야구, 실내 농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숨은 사람 찾기 등. 많고 많은 놀이를 했다.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있으며 아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동영상을 찍는다. 아이들은 사진과 동영상에 민감하다. '나 좀 찍어줘'라며 적극 요구한다. 그렇게 놀고 나면 역시나 아이들은 계속 놀고 싶어 한다. 잠자리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응가 마려워요." "배고파요." "물 마시고 싶어요." "우유 마시고 싶어요." "책 읽어 주세요." "숙제 아직 못했어요." "엄마 아빠한테 할 말 있어요." "정리할 게 남았어요." "방이 무서워요." "TV 소리 시끄러워요."


결국 다시 표정이 굳어진다. 목소리도 딱딱해진다. 여전히 흥에 취한 아이들은 아빠 목소리가, 얼굴 표정이 달라진 것을 금세 눈치채진 못한다. 대략 3-4번 정도 언성을 높이면 그제야 슬금슬금 달라진 공기를 눈치챈다. '휴' 오늘도 웃으면서 마무리 못했구나 싶다.

딱딱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후회가 찾아온다. '왜 부드럽게 못했을까.' '정녕 부드럽게 할 순 없었을까.' '아직 요령이나 지혜가 부족한 건 아닐까.' '조금 늦게 재워도 되지 않나.' '시간 됐다고 들어가라고 하는 건 너무 어른 기준 아닌가.' 살짝 마음이 찜찜해 자는 아이들 모습을 본다. 평화롭다. 아내는 "잘 때 애들이 제일 예쁜 것 같아"라며 웃었다.

참 다행이고 감사한 건 다음 날이면 아이들은 '리셋'된 상태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하하'거리며 일어나서 다시 장난을 친다. 감사한 일이다 싶다. 전날 저녁엔 혼나는 분위기로 끝났지만 오늘은 서로 '하하' 웃으며 하루를 마감해야겠다 마음 먹게 된다.

일어나서 아이들 가방을 싸고, 씻고, 옷 입고 쉼 없이 다닌다. 아이들 둘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아내를 출근시키는 건 내 몫이다. 아내 직장은 집에서 35분 거리다. 어쨌든 9시까진 아내를 출근시켜야 하고, 그 전까지 아이들은 유치원에 입장해야 한다. 아침 일정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오전 일정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내 일이 끝난 다음 아이들을 보니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노닥거리고 있다. 딸은 그림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 전날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이다(얼마 전까지 종이접기에 빠져 있었다. 그 전엔 블록 조립이었다).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자야 한다고 울면서 잤던 딸이다. 아들은 빨리 준비할 수 있다면서 노닥거린다. 시간은 8시를 가리킨다. 서서히 평정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딱딱해진다. 애써 자제하며 "시간 됐다. 옷 입고, 양치질 하고, 세수 하자"라고 말한다. 아들은 내 얼굴을 보고 시계를 보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한다. 딸은 "잠깐만, 그림 지금 그리는 중이야"라고 말한다. 속이 부글거린다. 2차 경고를 날릴 때다. 이번엔 좀 더 어조가 강하다.

눈치 빠른 아들은 황급히 옷을 입고 화장실로 사라진다. 딸은 여전히 그림에 푹 빠져 있다. 순간 '쟤가 집중력이 있네. 대단한 화가가 되려고 저러나' 하는 마음이 3초 정도 지나간다. 시계를 보고선 '깜짝' 놀란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3차 경고를 날린다. 딸이 울기 시작한다. "그림 아직 못그렸단 말이야."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서 결국 현관 문 앞에 세운다. 지금 현관문을 열면 간신히 지각은 면한다.

매번 계획은 어그러지고 매번 온화한 표정은 사라진다.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요즘 들어 찌푸린 표정을 짓는 횟수나 시간이 좀 더 길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습관이 되면 고치기 힘든 법인데,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웃으면서 대화하는 게 무엇보다 좋은 게 아닐까. 결국은 노력이다. 표정을 풀고 온화한 표정을 짓기 위한 노력을 해본다. 이제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이때 아들이 결정타를 날린다. "아빠, 응가 마려워." 온화한 표정으로 시작하기, 오늘도 틀렸다.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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