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4·16 챌린지] 끝내지 못한 수학여행 대신 마치려는 김동수씨

등록 2024.04.12 10:24수정 2024.04.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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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 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기자말]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마라톤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 중 하나이다. 대체로 야구나 축구와 같은 단체경기뿐만 아니라 탁구, 테니스 같은 경기도 상대방이 있어야 제대로 운동을 즐길 수 있지만, 달리기는 홀로 할 수 있다. 물론 수영이나 피트니스 같은 운동도 혼자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영도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운동화 하나면 어디서든 충분한 달리기는 정말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처음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갔을 때의 어색함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 달리기를 시작할 때의 어색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달리고 있는 자세가 너무 어색해 보이지 않을까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더욱 바른 자세로 전문 선수처럼 달리고 싶은 마음에 자세를 신경 쓰며 달려보지만 오히려 그런 긴장이 어깨와 허리에 무리를 줘 달리기가 더 힘들어질 때가 많았다.

그렇게 달리기가 어색했던 시간이 지나고, 일정 시간 꾸준히 같은 길을 달리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긴다. 때로는 마주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도 한다. 보통은 한눈에 보아도 나보다 먼저 달린 사람들이었다. 허리와 고개가 반듯하고, 앞뒤로 교차하는 팔 동작은 갈비뼈 부근을 스치듯 부드럽게 스윙한다. 마치 놀이공원의 바이킹이 앞뒤로 움직이듯... 느린 듯 보이지만 넓은 보폭의 주법은, 짧은 보폭으로 달리는 내가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빨랐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능한 오랫동안 뒤를 따라 뛰려고 노력했다(물론 대부분 금방 놓쳐버린다). 뒤따라 뛰면서 앞서 뛰는 모습을 보며 가능한 내 주법을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쉽게 몸에 베일 리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올바른 자세로 달리려면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의식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공들여 나름 나에게 맞는 자세를 만들어 달리다 보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보다 더욱 여유가 있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달릴 수 있다.

2023년도에 김동수씨와 꽤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공식 대회에 참가했다. 한 여름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달리는 야간 대회나, 6·10 항쟁을 기념하는 달리기 대회, 김대중 평화마라톤 대회, 임진각평화공원에서 자유의 다리를 돌아오는 대회 그리고 춘천마라톤 대회에서는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 그 많은 대회에서 늘 함께 달렸다.

앞서 설명했듯이 김동수 씨와 나는 신장 차이도 있고, 주법 자체도 매우 다르다. 그래서 발을 맞춰 달리는 것이 쉽지 않다. 서로 상대방의 보폭과 속도에 맞추다 보면  자기 호흡과 리듬이 달라져 긴 장거리 달리기에는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거리 마라톤에서 함께 달릴 때는 원래 속도보다 조금 늦추거나 조금 빠른 속도로 자연스러운 합의점이 생겼다.

김동수씨는 1km를 4분대에서 5분대 초반으로 달리고, 나는 5분대 중반에서 6분대 초반으로 달리니 늘 달릴 때 5분 30초 페이스로 달리기로 합의를 하는 것이다. 김동수씨 입장에서는 조금 느리게, 내 입장에서는 조금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는 것은 함께 달릴 때 꽤나 유용한 방법이었다. 서로 격려하거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달리는 내내 여유도 있었다.


대회마다 달랐지만 대부분은 내가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달렸다. 그럴 때마다 김동수씨가 옆에서 걸음걸이에 따라 박자를 맞춰주며 응원하기도 하고, 조금 더 힘을 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출발해 안산, 인왕산, 북악산을 넘는 트레일마라톤에 참가해 함께 뛴 적이 있다. 산길을 뛰어오르는 것은 평지를 달리는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중간 중간 지쳐서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숨이라도 고르려고 하면 김동수씨의 불같은 호통이 들려왔다.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려고 해. 나약해지지 말고 계속 달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섭섭했다.

'나약한 정신이라니... 나름 인생을 살아가며 한번 일을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고작 달리기를 하다가 숨이 차서 잠시 쉰다고 저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대회가 끝나고 사우나에서 함께 몸을 씻으며 좀 전에 나약한 정신이라고 했던 말이 너무 섭섭했다고 하자, 김동수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달리다가 숨이 차다고 멈춰버리면 결국 습관이 되더라고. 달리는 운동에서 걷기 시작하면 안되니까. 차라리 힘이 들고 숨이 차면 아주 느리게 천천히 달리면 달리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까. 모질게 말해서 미안해."

그런 격려와 응원이 나에게 조금씩 쌓여갔다. 그리고 조금씩 나와 김동수씨는 나아지고 있었다,

김동수씨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한 것이 정말 잘 한 것일까? 내가 유령을 구한 것은 아닐까?" 수십 명의 사람을 구했음에도 나중에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월호 유족과는 다르게 세월호 생존자들은 살아있다는 죄책감에 국가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낼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김동수씨에게 너무도 큰 빚을 지고 있어 선뜻 다가오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를 대신해 세월호 참사를 겪고, 그 참사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또 그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었다. 적어도 십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기억되고 치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0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김동수씨와 같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이지만 스스로 극복하며 세월호 진상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왔다. '아직도 세월호야?'라는 말이 아니라 '여전히 그대로야?'라는 질문과 함께 이제 김동수씨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김동수씨와 같은 장거리 마라톤을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달리는 곁에 서서 그를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중간중간 힘들어 할 때마다 말로 격려하고, 손뼉을 마주치고, 목마른 그에게 물 한잔 건네주는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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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에서 다니려 했던 수학여행 안내문 ⓒ 변상철

 
김동수씨는 올해 세월호 10주기에 맞춰 4월 13일부터 15일 3일간 제주도 전역을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10년 전 세월호를 타고 오던 아이들이 제주도에 도착해 2박 3일간 다녔을 수학 여행지를 대신 돌아보면서 미처 끝내지 못한 수학여행을 대신 마치려 하는 것이다.

그 길에 우리의 걸음이 함께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 김동수씨가 참으로 기쁠 것이다. 김동수씨는 SNS를 통해 매일 4.16km 이상을 걷거나 달리고 있다. 416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의 세월이 지났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세월호 10주년이 되는 날까지 매일 그렇게 걷거나 뛰기로 했다며 SNS에 매일 걷거나 달린 기록과 함께 '#416챌린지'를 태그해 올리고 있다.

또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를 달릴 때 함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매일 출발지에서부터 4.16KM를 걷는다고 한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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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달리는 구간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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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달리기 코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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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달리기 코스 ⓒ 변상철

 
적어도 10년의 세월동안 함께 달린 시민이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떨까. '김동수씨가 달리는 동안 우리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당신은 우리의 HERO(영웅)이에요'라는 격려와 함께 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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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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