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 달려야 한다

[4·16 챌린지] 성실하게 달리는 것, 성실하게 기억하는 것

등록 2024.04.11 17:00수정 2024.04.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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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인 김동수 씨(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도 불리는)와 함께 세월호 참사 10년을 기억하며, 416챌린지를 펼칩니다. 4.16km이상을 걷거나 뛰고난 뒤 sns 등에 #416챌린지 등의 태그와 함께 인증사진을 올려주셔서 함께 힘을 실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편집자말]
달리기는 꽤나 성실한 운동이다. 들인 노력만큼 성과나 보상이 정직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달리기 횟수가 줄거나 규칙적이지 않으면 몸이 즉각 반응한다. 일주일 이상 쉬고 나면 다리 근육이 느슨해지고, 규칙적이고 편안했던 호흡은 어느새 불규칙하고 힘든 호흡으로 바뀐다. 원래의 호흡과 근육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쉬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 공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직한 운동도 어느 순간 노력에 대한 결실이 예상보다 적게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꽤나 성실하게 노력했는데도 달리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달리는 시간도 점점 느려지는 경우인데 이런 날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달리기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것을 '러너스 블루'(마라톤 우울증)라고 표현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마라톤만이 아닐 것이다. 학교 성적에서부터 직장 성과, 인간 관계, 가족 관계 등 세상을 살며 마주하는 모든 일에는 노력한 만큼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기울인 노력만큼 적절한 보상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상에 대한 실망감은 노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들였던 노력을 중단하게 된다.

비 내리는 여의도 한강변을 달렸던 5월 6일, 나는 노력보다 늘 적은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김동수씨를 만났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나서 김동수씨와 나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잠실로 향했다. 잠실에서 열리는 스포츠용품 팝업스토어를 방문해 운동화 등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잠실에 도착해 팝업스토어를 둘러보고 나서 슬쩍 김동수씨에게 '혹시 롯데타워 올라가보셨어요?'라고 물었다. 김동수씨는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 롯데타워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높은 곳에서 탁 트인 곳을 멀리 내다 보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롯데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티켓을 끊고, 고속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롯데타워에 올랐다. 고층부에 도착해 서울의 전망을 둘러보며 아이들마냥 신기해했다. 이미 5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그곳에서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려보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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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며 내려다 본 서울 시내. 아름다운 풍경과 다르게 김동수씨는 무너져가는 자신을 두려워했다. ⓒ 변상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후유증 이야기가 나왔다. 김동수씨는 가족과 이웃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웃으며 대화하지만 사실은 매우 불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했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그 때문에 여전히 잠들기 전 알약을 한 움큼씩 복용해야 하며, 그 후유증으로 오전 내내 몽롱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인 약 복용의 후유증 때문인지 기억력이 점차 감퇴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음식이 나올 무렵 그는 울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워."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감퇴하는 게 두렵지만 차마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가족에게 많은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9년동안 아내와 딸들은 언제 공황 상태, 흥분 상태가 될지 모르는 자신을 불안하게 바라봐야 했고, 잦은 입원 기간에 어디도 가지 못한 채 입원실에서 함께 먹고 지내며 곁을 지켜야 했다. 아내의 헌신적인 돌봄과 취업과 결혼을 앞둔 20대를 고스란히 아빠와 함께하며 보낸 딸들을 생각하면 그것 자체로 이미 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좀 더 빨리 세월호 진상이 밝혀진다면, 그래서 세월호 피해 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그 피해 보상과 배상이 적절이 이뤄지고, 피해자에 대한 예우가 적절하게 이뤄졌다면, 지금처럼 긴 시간에 걸친 가족의 희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동수씨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겪어야 하는 희생과 고통을 국가가 바라봐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김동수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세월호 의인, 파란바지의 의인이라는 것뿐이었다. 김동수씨를 지지하는 커다란 단체가 있는 것도, 유수 정치인이나 언론과 연결된 것도 아닌 개인 김동수뿐이었다.

고민 끝에 사회로부터 주목받는 방법으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자해였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을 때,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세월호 피해에 대해 막말을 해댈 때, 세월호 생존 피해자들의 구제와 지원을 요구할 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해였다. 그때마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하나 더 붙은 별명이 '꼴통 동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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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받는 김동수씨. ⓒ 변상철

 
그렇게 지난 9년 동안 세월호 생존 피해자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었다. 세월호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인정도, 국가의 사죄와 배상 어느 것도 이뤄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김동수씨는 더욱 무섭고 두려웠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생존 피해자 인정·지원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김동수씨의 몸은 조금씩 더 망가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세월호 참사를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진다고 했다. 마치 '기억 투쟁 블루스'가 온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조용히 살면 되는 걸까?'

피해자가 침묵하고 입 다물면 있던 일이 사라지는 것일까? 피해의 고통이 멈추게 될까?

그럴 리가 없다. 침묵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우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은 몸속에서 자라는 암처럼 방치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더 커질 뿐이며, 결국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고통의 기억 역시 그렇다. 

김동수씨가 기울인 노력만큼 김동수씨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해도 김동수씨의 외침이 멈춰서는 안 된다. 결국 그 목소리가 어느 누군가에게 닿아 같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또 다른 사람들과 모여 외침이 되고 울림이 되어야 한다.

울림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외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달리기를 멈추면 더 이상 달리기가 아니다. 달리기는 걷는 운동이 아니라 달리는 운동이다. 기억하기를 멈추면 기억은 사라진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일지 모를 달리기의 끝을 향해 무던히 달려간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때로는 평소보다 빨리 달려나갈 때도 있고, 평소보다 못한 느린 속도로 달려 나갈 때도 있을 것이다. 평소 목표했던 것보다 더 멀리 달려갈 때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것이다. 몸이 가벼운 날도,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힘들게 달려나갈 날도 있을 것이다. 매끈한 도로를 달려나갈 때도 있고, 자갈길과 비포장길을 달려나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상쾌한 햇살과 함께 달려나갈 날도, 폭설과 비바람을 맞으며 달려나갈 그런 날도 있을 것이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에 서는 날도, 영햐 15도의 강추위 속에 서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은 멈출 수 없다. 잠깐의 허탈감이나 우울감이 들 수는 있지만, 물 한 모금, 응원 한마디에 다시 달려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응원과 지지가 그 길 가운데 함께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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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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