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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위에... 우리 회사는 절대로 난방을 하면 안 됩니다

영하 20도 내려간 날 택배 작업장에서 생기는 일... 택배기사에 더 가혹한 겨울

등록 2024.01.12 07:05수정 2024.01.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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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회사를 다니다 육아를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택배회사에 OP(오퍼레이터)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간 날, 터미널 내 전력이 부족해 PC전원이 5분에 한번 꼴로 꺼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멀찍이 세워진 터미널은 전력사용량이 정해져 있는데 강추위로 전력량이 급증하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겹, 세 겹을 겹쳐 입고 내의 안에 핫팩까지 붙였지만 강추위의 맹공을 이겨낼 재간이 없던 기사들은 몇 개의 난로 곁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50여 명이 넘는 택배기사와 분류 인력들은 3~4개밖에 안 되는 난로로 추위를 피했지만 이마저도 전력공급이 부족한 탓에 계속 켜 둘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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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컨테이너 컨테이너로 되어 있는 택배터미널 ⓒ 222kim

 
컨테이너로 세워진 택배 터미널 안은 그야말로 냉골이다. 바람만 피할 수 있을 뿐 냉난방은 전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택배 박스는 가연성이라 터미널 내 불을 낼 수 있을 만한 물건을 둬서는 안 된다. 안전교육 시 매번 강조하는 말이다.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자 지점에서는 가급적 난로 사용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이곳에서는 기사들의 추위보다 불에 붙을 수 있는 택배의 안전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아침부터 배송완료 문자를 받았는데 정작 택배는 오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기사에게 확인해 보니 장갑을 낀 채로 휴대폰을 조작하다 생긴 실수였다.

추위로 인해 기사들이 하는 실수도 있지만 기계의 오작동으로 발생하는 실수들도 있다. 가령 택배의 바코드가 읽히지 않아 택배가 어디에 도착해 있는지 고객이나 기사도 알 수 없을 때다. 이럴 때는 전산상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터미널에 도착해 기사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기사에게 돌아오는 애꿎은 불만의 화살

또 겨울에는 추워진 날씨 때문에 접착력이 떨어져 송장이 떨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택배는 '무적화물'로 등록된다. 배송지에서 당일배송을 관리하는데 배송이 안된 택배는, 당사자 고객에게 분실 또는 무적화물에 대한 안내 후 사고 접수를 한다. 무적화물로 등록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등록도 안된 택배라면 어떻게 찾을 길이 없다. 

겨울이라고 먹을거리가 상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니 '과실이 얼었다'는 클레임(불만 접수)이 발생한다. 고기류나 과자류는 괜찮을 수 있겠지만 과일이나 채소, 꽃 같이 추위에 약한 내용물은 가급적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이 낫다.


구매자는 모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다시피 박스에는 난방 기능이 없다. 그게 얼었는지 확인할 길 없는 기사에게 애꿎은 불만의 화살이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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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배송하러 가는 길 눈오는 날 언덕 택배배송 ⓒ 222kim


올 겨울에는 눈이 오는 날은 많지 않으나 내리는 눈의 양이 많다. 모든 배송지가 잘 닦인 도로라면 좋겠지만, 산 중턱, 비포장 도로 등의 경우에는 날씨의 제약을 받는다. 

한 번은 산 중턱의 비닐하우스로 배송을 요청한 고객이 배송지연에 대해 클레임을 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눈이 많이 온 날이라 배송이 지연됐다고 설명했지만 다른 택배는 다 오는데 왜 거기만 제 때에 오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부득이하게 담당 기사를 재촉해야 했다.

본사에서는 배송기사의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당일에 배송해야 할 배송량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폭설이 발생해도 당일배송은 당일에 꼭 배송해야만 한다. 

당신의 편리한 삶... 하지만 당연한 것은 없다

고객과 같은 마음으로 기사 역시 날씨가 빨리 풀리기만을 기다리지만 이 또한 기사의 재량이 아니다. 많은 고객이 급감한 기온, 예상치 못한 폭설, 변덕스러운 날씨 등 천재지변 때문에 발생한 택배지연의 탓을 기사에게 돌린다.

새벽 6시 반부터 밤 9시까지, 기사가 쉴 새 없이 일하는 시간이다. 평범한 이들은 가족과 함께할 따듯한 저녁 시간이겠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도로 위에서 이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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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물류단지에서 택배사 관계자가 분류 작업을 하는 모습(자료사진) . ⓒ 연합뉴스

 
지난 연말에 한 기사가 단톡방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고객 한 분이 연말 선물을 주었다는 톡이었다. 다른 기사들이 부러움을 담아 답글을 달았다. 영하권의 날씨로 꽁꽁 언 몸과 마음까지 녹여주는 내용이었다. 

기사들의 고생이 당연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신이 당연한 듯 누리는 편리한 삶이 누군가의 고생 위에 세워진다는 것만 알아주길 바란다.
#택배 #겨울철택배 #택배배송 #배송빨리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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