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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 오남 엄마, 역대급 캐릭터 또 만든 염혜란

<더 글로리> 이어 <마스크걸>에서도 강렬한 연기... 염혜란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23.08.24 14:22최종업데이트23.08.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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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이 공개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전 세계 비영어 2위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 국가에서 톱 10에 진입했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제작부터 화제를 모았고, 이한별, 나나, 고현정까지 주인공 김모미 역을 3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한별, 나나, 고현정 모두 각자의 몫을 다했다. 각각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인터넷 방송에서는 마스크걸로 사랑받는 김모미, 성형수술 후 페이스오프에 성공해 쇼걸로 제2의 인생을 이어가는 김모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죄수 번호 1047'로 살아가는 김모미를 자신만의 색깔로 잘 표현했다. 또, 불쾌감마저 연기로 풀어낸 안재홍의 주오남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마스크걸>을 시청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오남 엄마'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만큼 염혜란의 연기는 강렬했다. 아들 주오남의 복수에 나선 비뚤어진 모성을 저리 표현해내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최근에 또 있지 않았던가. 맞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더 글로리>에서 염혜란이 연기한 현남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은의 손을 잡고 뜨겁게 연대하는 조력자"였다. 현남은 "동은에게 '글로리' 같은 존재"였지만,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시청자들도 영광스럽게 만들었다. "같은 편먹고 싶"다며 동은 앞에 나타나 "내 남편을 죽여"달라고 요구하는 장면,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라고 말하던 장면 속 염혜란의 연기를 잊을 수 없다. 

염혜란은 현남을 단순한 가정폭력 피해자로 그려내지 않았다. 절박함, 강인함, 소박함, 다정함, 단호함, 잔혹함 등을 표현하며 다층적인 인간으로 그려냈고, 복잡한 인간의 속내를 연기로 승화시켰다. 다만, 문동은 역의 송혜교와 박연진 역의 임지연에게 워낙 포커스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염혜란은 <더 글로리>로 어떤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마스크걸>이라 쓰고 '오남 엄마'라 읽는다
 

▲ '마스크걸' 염혜란 염혜란 배우가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 제작발표회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8일 공개. ⓒ 이정민

 
1999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염혜란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단역 '소현 엄마' 역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연극 '이 爾'에서 광대 연기를 펼친 염혜란을 알아 본 봉준호의 눈썰미가 적중했던 셈이다. 이후 염혜란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어떤 작품이든, 어떤 역할이든 염혜란의 색은 도드라졌다. 

영화에서는 <아이 캔 스피크>(2017)에서 차진 부산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쓰는 '진주댁'으로 분해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고, tvN <도깨비>(2016~2017)에서는 지은탁(김고은)을 괴롭히는 악독한 이모 '연숙'을 연기해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KBS2 <동백꽃 필 무렵>(2019)에서는 철부지 남편 규태(오정세)와 이혼하는 변호사 자영 역을 맡아 절제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2018), <라이브>(2018), <경이로운 소문>(2020-2021)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연극 무대에서 내공을 다진 덕분일까. 염혜란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생활 연기부터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 깊이 있는 감정 연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게다가 악귀를 잡는다는 판타지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더 글로리>로 연기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마스크걸>에서 또 한번 역대급 캐릭터로 돌아오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연기한 경자는 억척스러운 인물이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살림을 차린 남편과 이혼한 그에게 남은 건 자식 하나 번듯이 키우겠다는 일념뿐이다. 건물 청소, 식당 설거지, 가사 도우미, 택시 기사 등 온갖 일을 전전했다. 

오남은 경자가 바랐던 것처럼 의대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다. 경자는 점점 아들과 멀어져 서운하던 차에 오남의 실종 소식을 접하게 된다. 경자의 눈빛이 광기로 뒤덮이는 순간이다. 필사적으로 아들을 찾아 헤매던 중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염혜란의 연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걸>의 경자도 <더 글로리>의 현남과 마찬가지로 '복수' 캐릭터이지만,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쫓는 과정 속에 높은 주파수의 광기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거기에 드센 사투리로 억척스러움을, 분노 속에 슬픔까지 담아내며 역대급 인물을 완성했다. 경자는 모성애를 기반으로 했음에도, 기존 작품들의 캐릭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듣도 보도 못한 색다른 캐릭터이다. 

단언컨대, 염혜란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다. 소름돋는 압도적인 연기력에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무엇보다 그의 연기는 대중을 설레게 한다. 이제 염혜란을 위한 작품이 나올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염혜란은 진즉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대중 역시 진작부터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마스크걸 염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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