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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되는 아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입시 때문에 내년도 과목 선택을 고민하는 아이를 보며

등록 2020.11.28 20:37수정 2020.11.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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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도대체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학교 친구들도 다 나처럼 갈팡질팡해. 어떻게 해야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 진짜 모르겠어. 아무도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으면서 왜 우리한테 선택을 하라는 거야?"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온 고등학교 2학년 아이는 내년 3학년에 배울 과목을 미리 선택해야 한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과목을 선택하는데 학교에서 설명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입시설명회에 참석해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뭘 어떻게 선택하라는 건지 어렵기만 했다.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

배우고 싶은 과목이랑 입시용 과목이 따로따로 
 

친구들과의 여행 방학때면 친구들과 계획을 세워 당일로 여행을 즐기는 딸 ⓒ 김미영

 
딸 : "나는 OO과 **를 선택하고 싶거든? 근데 OO을 선택하려면 ##을 같이 선택해야 한대. OO과 **는 같이 선택할 수가 없대. 근데 또 OO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나 : "그럼 배우고 싶은 과목을 각각 선택할 수가 없다는 거네?"
딸 : "그렇지.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과목, 즉 연관성이 있는 두 과목을 함께 택해야만 하는 거지.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짝을 지어놓지."

나 : "그러니까 결국 한 과목은 포기해야 하는 거네?"
딸 : "응. 근데 어떤 과목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거지."



고등학교 과정이 문이과 통합이라고는 하지만, 과목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결국 문과 이과가 나누어지는 구조이다. 각 대학 입시요강도 꼭 이수해야 하는 과목에 따라서 지원할 수 있는 학과가 다른데 결국은 문과 이과가 나뉘어져 있다. 그것도 2학년 3학년 두 학년에 걸쳐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라 미리 선택하지 않으면 원하는 학과에 지원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는 어려움이 없었다. 선택 과목이 없고 모두가 공통된 과목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근데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며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이때에도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을 했고 아이는 과학탐구 과목을 택했다. 아이가 그 과목을 택한 이유는 과학을 잘 해서가 아니라 궁금하고 관심이 있어서 배우고 싶은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입시에 대해서 잘 모르던 터라 크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 학교 생활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는, 학급회장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교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근처 몇몇 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수업을 듣는 공동교육과정 '클러스터'를 신청해서 수업을 더 듣기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바쁜 학교 생활이었다. 그뿐인가. 대회에 참여해 상장도 종종 타왔는데 받은 상장은 주로 문예창작대회, 독서비평대회, 인문학글쓰기대회, 디베이트토론대회 등 주로 자신이 잘 하는 분야의 상들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고3 문턱에 가까워지니 주변 사람들도 왕왕 묻는다.

"OO이가 벌써 고3이 되네. 문과지? 뭐 전공하고 싶대?"
"문과반 아니고 이과반이야."

"아니 OO이는 문과 쪽을 더 잘하지 않나?"
"그렇긴하지. 근데 과학을 배우고 싶었대."

"그래도 잘 하는 쪽으로 정했어야지. 무조건 성적 잘 나오는 걸 해야 돼."
"그러게...."


아직도 아이와 나는 결정을 못하고 있다. 어제도 결정하지 못한 3학년 과목을 두고 저녁을 먹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며칠 째다. '이것이야'라고 정확하게 정해주지 못하는 나도 안절부절이다. 제일 답답한 건 아이 자신이겠지만 말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으며, 하고 싶은 활동도 몸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했고, 성적과는 관계없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 했으니 그거면 됐다. 원하는 학교를 가지 못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 줄 것이다. 나는 아이가 만약 지금 이대로 사회에 나간다고 해도 제 자리에서 제 몫을 책임감 있게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왜 꼭 그렇게 미리 정한 대로만 해야 하는 거야?"
 

저녁식사 모처럼 둘이 외식하며 나눈 많은 이야기들 ⓒ 김미영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필요한 학원을 보내달라고 말했을 때, 학원비를 알아보고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안 보낼 수도 없고 해서 학원을 보냈지만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사교육비에 허덕인다. 

교육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다시 한 번 절감했던 기억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학원에서 배워야 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둘째는 되도록 사교육없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내 노력이 얼만큼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 내가 해보고 싶은 게 많고 뭘 할지는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는데, 그걸 미리미리 정하라고 하니까 너무 답답해.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해봐도 다 잘 모르겠대. 왜 꼭 그렇게 미리 정한 대로만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왜 우리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주는 거야?"

어젯밤 속사포처럼 불만을 털어놓던 아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도 너의 마음과 같다고 현실이 이래서 미안하다고. 그러니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니 더 안타깝지요.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자라는것 같습니다.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고민이 더 많이지네요
#고3 #아이 #입시 #교육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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