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머니께 드리는 것과 같이 싱싱한 생선만"

손님 마음 사로잡은 생선가게 열정남, 당진 대덕동 한홍희씨

등록 2020.11.12 08:54수정 2020.1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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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희 씨 ⓒ 김예나


"어린 나이에, 심지어 연고가 없는 타 지역에서 하는 사업이라 부담이 매우 컸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판매자가 아닌 '사람 한홍희'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붙임성 없는 성격 탓에 단골손님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손님들은 제게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하고 마음을 다 잡게 했죠."

나이 서른에 한홍희(33·대덕동)씨는 지난 2018년 경남 통영에서 벗어나 연고 없는 당진에 자리 잡았다. 걱정보다는 자신감으로 'HB씨푸드'라는 수산물 판매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우강, 당진, 고대, 정미 총 4곳의 농협 하나로마트 내 수산물 코너를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밑바닥부터 수산물 관련 일 배워"

어려서부터 한씨는 운동을 좋아했다. 특히 '무에타이'라는 운동에 푹 빠져 살았다. 무에타이는 태국의 전통 스포츠로, 무에타이를 할 때면 잡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 역시 해소된단다.

한씨는 군 전역 후 태국에서 4~5년 간 무에타이를 가르쳤다. 그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운동만 하며 살고 싶었다"며 "특히 동남아시아는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한국에 다시 오니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며 "먹고 살기 위해 예상치도 못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시 시작한 한국 생활은 이전의 태국 생활과는 너무 달랐어요. 한국에서는 돈이 있어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젊었을 때 고생하고 40세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많은 일 중에서도 생선가게를 하게 된 계기는 운동을 함께 했던 친한 형 때문이다. 통영에서 수산물 판매업체 10곳을 운영하고 있었던 형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한씨는 "형 밑에서 수산물 유통 관련 일부터 배웠다"며 "수산물 판매업체에서 발주하면 직접 시장에서 물건을 골라 배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통 업무를 하면서 거래처가 많은 당진을 왕래하며 이곳을 알게 됐다"면서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니 신선하고 좋은 생선을 보는 눈이 생겨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후 한씨는 당진에 터를 잡고 지난 2019년 우강농협 하나로마트 내 수산물코너에 입점했다. 그렇게 하나 둘 단골손님을 늘리고, 매장 수도 확대해 나갔다. 지금은 당진농협, 고대농협에, 정미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수산물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생선, 돈으로 봐서는 안돼"

그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3년 동안 쉰 적 없이 매일 일했다. 혹여라도 쉬게 되면 목표를 달성하는데 시간이 늦춰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단다. 그는 "내 목표는 손님들에게 다양한 수산물을 선보일 수 있는 수산물 판매센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40대에는 제주도에 내려가 수산물센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나와 함께 일하는 7명의 직원들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며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일을 배워 여러 수산물 센터를 운영하게 된 것처럼 내게 일을 배우고 있는 우리 직원들이 잘 일어서서 독립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수산물을 판매하면서 당일 가져온 회는 당일 판매한다는 원칙과 생선을 돈으로 보지 않겠다는 운영철학을 세웠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날 판매하지 못한 회를 모두 폐기하는 것을 배웠다"며 "내가 독립해서도 이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사업체 이름을 내 이름의 이니셜 'H'와 이 일을 알려준 형의 이니셜 'B'를 넣어 'HB씨푸드'라고 지었다"고 전했다.

그는 타국생활을 하던 중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를 회상하며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신선한 생선만을 판매할 것을 강조했다.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들의 말 한 마디와 계속해서 찾아주는 손님들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생선은 공산품처럼 오늘, 내일, 모레 언제든지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생선들이 제게 돈으로 보이는 순간이 제가 은퇴하는 날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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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진시대 기자 김예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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