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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와 박해의 역사가 서린 당진 버그내 순례길

등록 2020.11.06 21:01수정 2020.11.0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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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 펼쳐진 버그내순례길을 걷다보면 이 땅을 밟을 수 있어서 참 고맙구나 느껴진다. ⓒ 이현숙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북서쪽의 산티아고를 향해서 약 800Km의 길을 한 달가량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물론 출발지는 제각각 다를 수 있다).

이제는 멀리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섬이나 들판을 가로지르며 이처럼 걷는 길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 신안섬의 12 사도 순례길을 일컬어 섬티아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 초여름에 다녀온 신안섬의 순례길은 갯벌이 살아있는 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섬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당진의 버그내 순례길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 가을이 한창이던 지난달에 다녀와서 지금껏 그 들판이 차분하게 나를 다스린다. 여건상 순례길 일부만 돌아보았지만 다시 한번 조용히 찾아가 제대로 걸어볼 생각이다. 마음속에 기분 좋은 여정을 감춰두고 기다리고 있는 은밀한 기분이다. 
 

노송이 환영하듯 입구에서 맞아주는 솔뫼성지 위의 하늘이 더없이 푸르다. 다가가는 두근거림이 있다. ⓒ 이현숙

 
순례길의 주요 지점은 솔뫼성지를 시작으로 합덕제와 합덕성당, 원시장과 원시보 우물터를 거쳐 무명 순교자의 묘를 경유해 신리성지까지 약 13.3㎞ 코스로 비순환형이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부터 이용되었던 순교자들의 길이다. 시간은 발걸음에 따라 4~5시간 정도 걸리는데 오름길이나 거친 길도 없이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해서 이곳이 더 알려지지 않고 지금만큼만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의 삶을 가까이서 느껴보는 시간... ⓒ 이현숙

 
버그내 순례길의 시작인 솔뫼성지,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솔뫼라는 순 우리말로 붙여졌다. 이곳이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자리이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부터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솔뫼성지를 신앙의 못자리이자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14년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전 세계적인 천주교 성지로 명성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의 해이고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최종 선정되어 당진 일대를 걷다 보면 곳곳에 행사를 예고하는 글귀를 볼 수 있다.
  

교황님의 방문으로 더없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모든 이들의 솔뫼성지. ⓒ 이현숙

 
솔뫼 성당 입구를 들어서 조금 걸으면 원형 공연장 겸 야외 성당인 솔뫼 아레나가 쉼터처럼 펼쳐진다. 둘레에 12 사도가 세워져 있어서 야외행사의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성당 주변을 둘러싼 솔밭 사이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 있는 조형물들이 이어진다. 천주교 전파를 위해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의 모습이 노송들 사이에서 성스럽다.

버그내라는 이름은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만나는 물길로 합덕 장터의 옛 지명인 '범근내포'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물줄기를 중심으로 천주교 신앙이 퍼져 나간 것이다. 이 길에 서린 순교와 박해의 역사를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합덕의 들판을 비추이는 은총처럼 합덕성당이 굽어보는 경건함 ⓒ 이현숙

 
발길 따라 계속 걷다 보면 합덕 평야에 농업용수를 조달하던 저수지 합덕제를 거쳐 합덕성당이 기다린다. 1929년 프랑스 선교사였던 페랭 신부가 봉헌한 합덕 성당은 조용한 합덕 마을을 앞에 두고 고요히 서 있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구조를 이룬 두 개의 종탑이 반짝인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은 형상이라고 하는데 그 경건함이 붉은 벽돌의 고딕과 어울려 아름답다. 가던 길 멈추고 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합덕성당에 들러 그 풍경 속에서 한참씩 쉬어가도 좋을 곳, 100년쯤의 역사를 간직한 합덕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제와 수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소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합덕의 너른 들에 가득 차 있는 이 땅의 기운을 받으며 처절한 순교의 길을 택한 이들을 기억하며 구불거리는 길을 걸어 나간다. 바람 부는 평야를 지나고 조붓한 둑길을 걸으며 평온한 자연 속에서 버그내 길은 이어진다. 걷고 또 걸으며 순례길이 품은 순교자들의 신념이나 아픔, 그들의 뜨거웠던 영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위안을 받는 또 다른 시간이다.  
 

버그내 순례길을 걸으며 순교자들의 신념을 되새기며 이 땅의 감사함도 되새겨 보는 시간... ⓒ 이현숙

  
신앙의 못자리이자 한국의 베들레헴이라는 말,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이 말이 당진 곳곳을 지나면서 자주 보였다. 여기에 이런 말이 있었구나 내심 생소했지만 하루쯤 걷고 둘러보면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지로써 그들의 뿌리와 죽음은 물론이고 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 것을.

점차 걷기 열풍이 계속 이어지는 추세지만 순례길만의 깊은 의미를 새기는 시간은 남다르다. 지난해엔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되었을 만큼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길을 통한 주변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니까 조용히 묵상하면서 걷는 예의도 명심할 일이다. 아직은 비대면의 여행이 강조되는 시기여서 이럴 때 순례길 걷기는 더없이 좋다. 특히 이곳은 '혼행'으로 최적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지 않아도, 애써 여러 날을 비울 필요도 없다. 어느 날 하루 훌쩍 떠나면 된다. 신념의 전파를 위해서 피 흘리기를 택했던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무언가 가슴에 실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단 하루면 가능한 버그내 순례길의 여운은 아주 길다.

▲주변 명소 & 맛집
 

오래된 마을 면천읍성에 가면 들러볼 곳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 이현숙



- 당진 면천읍성(沔川邑城) 마을

당진시 면천읍성 일대를 성안마을로 불린다. 아주 오래된 그곳은 뉴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마을이다. 우체국을 미술관으로 만들어낸 <면천읍성 안 그 미술관>, 자전거포를 동네 책방으로 변신시킨 <오래된 미래>, 대폿집이었던 곳에 소품 가득 감성 가득 <진달래 상회>, 건너편에 면천향교를 두고 연꽃 가득한 연못 <골정지>, 면천 관아의 문루였던 풍락루(豊樂樓... 마을 전체가 개발이 제한된 유적지여서 푸근한 시간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을. 느리게 그러면서도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 면천읍성 마을이다.

- 교황님도 다녀간 당진 식당 '길목'의 '꺼먹지 정식'
 

구수한 향토음식을 맛볼 기회다. ⓒ 이현숙


'꺼먹지'는 당진의 향토음식으로 가을 무청을 염장했다가 다음 해에 먹을 수 있는 무청 짠지로 처음에는 파랗게 절여졌던 것이 검게 변했다 하여 꺼먹지라고 한다. 걸쭉한 들깨 찌개에 구수한 꺼먹지가 함께 어울려서 맛을 내는 향토음식이다.

그릇도 하얀 분청사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손맛이 좋은 반찬들이다.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 후 사제단 만찬을 이곳에서 했을 때 꺼먹지 정식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당진에는 명장이 만든 떡, 민속 떡집이 있다. 민속떡집의 쑥 왕송편이 유명해서 당진을 떠나면서 늦은 저녁에 들렀더니 이미 거의 다 팔린 후였다. 떡 명장이 만들어내는 민속떡집은 당진시 최초로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라보마이라이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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