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에 이런 곳이? 산동백 흐드러진 건봉령

[강원도 구석구석] 소양호 호숫가 산동백 군락지, 산막골 가는 길

등록 2013.04.14 14:14수정 2013.07.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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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백. ⓒ 성낙선


산막골에 다녀왔다. 산막골 가는 길,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갯길에 산동백이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산동백이 호숫가 높고 가파른 산비탈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니, 그 풍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산막골은 춘천시 북산면 청평2리, 730여 미터 봉화산 아래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촌생태마을인 부귀리에서도 산길을 더듬어 가며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지도만 봐도 산자락을 타고 넘어가는 길이 상당히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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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깎아 만든 좁은 길. 낙석 주의 표지판. ⓒ 성낙선

이런 곳에 길을 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사람들 참 용하다. 그 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스콘이 깔렸다. 하지만 폭이 좁은 게 요즘에도 이렇게 험한 길이 있나 싶다. 길은 또 왜 그렇게 심하게 구부러지는지 그 길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듣던 대로 그 험한 길 곳곳에 산동백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무렵 강원도 깊은 산골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산동백이 거의 유일하다. 산이 온통 회색빛을 드러내고 있을 때 노란 산동백 몇 그루가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만약에 산동백과 다른 꽃이 같이 피었다면, 산동백이 그처럼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산동백 자체는 은은한 노란 빛을 띠고 있다. 굳이 경쟁을 해야 할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필요 이상으로 강한 빛을 띨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길에 산동백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산에 산동백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수로는 오히려 다른 나무에 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 산동백이 이 산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이 산에서 산동백 말고 다른 나무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간에 소월정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자 아래, 진달래가 몇 그루 꽃을 피우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진달래도 지금 이 산 속에서는 아직은 객쩍은 나그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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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령에서 내려다 보이는 소양호. ⓒ 성낙선


노란 산동백 곱게 물든 소양호, 그곳에서 마주한 비경

그 산 속을 얼마나 돌아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개 위에 철판으로 만든 표지판이 하나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 표지판에 검은 글씨로 '건봉령', '승호대'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이 길에서는 조금 생뚱맞다 싶은데, 이곳에 이런 표지판을 세운 이유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자리에서 거대한 소양호와 그 소양호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산과 호수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기분이 장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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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호가 한눈에 내려가 보이는 건봉령 정상, 승호대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 ⓒ 성낙선

가슴이 벅차다. 호수 너머 먼 산에는 아직도 산 정상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마치 소양호가 겨울과 봄의 경계선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이곳에 서서 비로소 산막골로 산동백을 보러 와줄 것을 청했던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산막골 가는 길은 길 자체가 풍경이다. 대관령, 미시령도 이 길처럼 심하게 굽어 돌지는 않는다. 굽잇길마다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그 길에 소양호가 있고, 산동백이 있다. 계절을 달리 해서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줄 게 틀림없다.

산동백은 소설가 김유정이 <동백꽃>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유명해진 꽃나무다. 원래 이름은 '생강나무'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박나무' 또는 '산동백'이라 부른다. 영 다른 이름이 붙은 셈인데, 그 배경에 강원도 사람들만의 애환이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머리를 단장할 때 동백기름을 이용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을 구하기가 어려워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을 대신 사용하면서 산동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짜 동백기름은 아니지만 생강나무 기름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었을 듯싶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산동백을 두고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이라거나,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와 같은 표현을 썼다. 어쩌면 생강나무 기름의 그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동백기름보다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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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산비탈을 물들인 산동백. ⓒ 성낙선


뒤숭숭한 세상, 그래도 꽃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 산동백

산동백은 개나리, 진달래보다 먼저 꽃을 피워 온 세상에 서서히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식물 중 하나다. 자연히 헐벗은 산에 저 혼자 노란 빛을 띠고 서 있는 모습이 상당히 고고해 보인다. 하지만 요즘은 그 모습이 더러 애처로워 보일 때도 있다.

요즘은 날씨가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뒤바뀌는 게 도무지 정신이 차릴 수가 없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보니, 날씨마저 세상 분위기 따라 제멋대로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망한 세상, 맘 편히 살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이럴 때 우리가 자살률 1위에 행복지수 하위권인 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평생을 '전쟁'을 치르며 사는데 '행복'을 말하는 게 우습다. 이런 때 기필코 제 먼저 꽃을 피워내야만 하는 산동백의 신세가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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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 성낙선


건봉령을 되넘어오는 길, 굽잇길을 돌 때마다 또 다시 산동백이 슬쩍 슬쩍 고개를 내민다. 그런데 저 멀리 서 있는 나무가 산동백인지 산수유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산비탈을 기어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산동백 꽃은 산수유 꽃과 모양이 비슷해 얼핏 그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오는 것도 똑같다. 그래도 산동백의 경우 꽃받침이 여섯 개이고, 산수유는 네 개라는 점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또 다른 차이는 산수유가 가지에서 튀어나온 짧고 가느다란 꽃대 끝에 꽃을 매다는 것에 비해 산동백은 꽃이 별다른 꽃대 없이 가지에 밀착해 핀다는 점이다. 산동백이 주로 산에서 많이 자라는 것과 달리 산수유는 주로 평지에서 많이 자란다는 것도 조금 다르다.

산막골에 산동백이 아름답게 피었다는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올해로 14년째 산막골 주민으로 살고 있는 우안 최영식 화백(60)이다. 최 화백은 산막골에서 폐교가 된 청평분교를 화실로 개조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소나무를 주로 그려 '소나무 화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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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어느 집 지붕을 덮고 있는 산수유.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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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농가 지붕 위로 불이라도 붙은 것 같은 산수유. ⓒ 성낙선


#산동백 #생강나무 #산막골 #소양호 #건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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