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서평]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등록 2007.05.03 17:52수정 2007.05.04 07:27
0
원고료로 응원
"우리 유전자 검사 한 번 해볼까요?"

당신의 유전자가 단일민족 유전자인지 검사한다면, 당신은 순혈의 단일민족 후손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비판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제도권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반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 국가'라고 배워왔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예"라고 답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a

ⓒ 역사의아침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의 저자인 박기현은 각국의 문명 교류사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족보'와 같은 사적 기록들을 추적하며 우리 민족이야말로 '잡탕'이라 할 만큼 많은 외래집단의 혼성체이며, 한반도라는 큰 그릇 속에 서로 일체감을 이뤄낸 민족공동체라고 말한다.

책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는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전해지던 우리 땅을 찾은 귀화인 중 성공한 귀화인과 실패한 귀화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산 이씨의 시조 베트남 왕족 이용상, 이성계의 오른팔이던 여진족의 이지란 장군, 진주에 터를 잡았으나 정착에 실패한 비운의 산남왕 온사도, 조선의 문물을 흠모해 조총기술을 전한 왜장 사야가(김충선), 흉노족 김일제, 가야의 수로왕과 혼인해 널리 후손을 퍼뜨린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원나라 제국대장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장순룡, 명나라 장수 가유약, 음료수를 구하려다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 등.

한반도는 중국이나 북방 지역에 전쟁이나 대홍수, 가뭄 등의 재해가 있을 때마다 해당 지역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중국의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시대, 당나라가 몰락할 때, 발해가 멸망할 때, 송나라가 멸망할 때,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에 대규모 귀화가 발생했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당시에 넘어온 귀화인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반도 안에 살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달라지고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적극적인 귀화 정책을 폈던 고려의 경우, 귀화인에 대해 집이나 논밭, 물품 등을 증여하여 귀화인을 적극 수용하였는데, 그 목적은 고려의 국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고, 필요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인력을 받아들여 국방력을 키우거나 농업 인력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귀화인 우대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는데, 이는 여진족에 대한 포섭과 격려, 결혼 정책, 강제 이주, 인질책 등으로 주로 북방 경계를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귀화인들을 통해 북방의 정보를 얻고 여진과 적당한 교섭, 통상을 계속했으며 유사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비책으로 귀화인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현재 국내 성씨의 46%는 귀화 성씨이고, 전체 인구의 20%에서 절반까지가 귀화인들의 후손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할 이유가 없어진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 유구(오키나와),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 흉노, 발해 유민, 네덜란드, 등 실로 많은 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한국인'이 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를 통해 우리 민족은 열 명 가운데 세 명이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으로, 우리 민족이 일방적으로 귀화인들에게 혜택을 베풀었거나, 귀화인들이 우리보다 못한 집단에서 넘어온 부류라는 편견을 불식시켜 준다.

오히려 '귀화인'이라 불린 새로운 집단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고 우리 땅의 역사를 새로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었다고 주장한다. 중원의 승자가 바뀔 때마다, 전란과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난을 피해 한반도로 들어온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집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천 년에 걸쳐 한반도에 이주해 온 귀화인들.

그렇게 많은 국가에서 들어온 귀화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 한복판에 들어온 귀화인들은 우리와 같은 피부색, 우리와 같은 언어, 우리와 같은 문화권으로 동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책 말미에 "귀화인은 없다"는 소감을 적어 놓았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귀화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을 조금 늦게 한반도에 들어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부족한 인력난을 해소시켜주고, 문화적 토양을 풍부하게 해 주는 존재로 인식하여 한반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힘써 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보듬어가며 피와 땀으로 지켜온 언어적, 지리적, 사회 문화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3%에 해당하는 1억5000만명이 이주민이며, 매년 200만에서 300만 명이 새롭게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100만명에 이르렀다. 또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낯설지 않을 만치 전체 결혼의 13%, 농촌 결혼 인구 중 네 명에 한 명이 국제결혼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 귀화인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과연 정당한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자 필요에 의해 들여온 이들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을까?

동남아 출신 외국인을 '민족'이라는 잣대로 무시하고 인종적 차별을 마다지 않는 '안티 외국인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우리는 한반도에 들어온 다양한 귀화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보듬어가며 동화시킨 선조들의 자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는 저출산, 고령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한 열린 사회, 다문화 사회로 바로 서며,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 우리 땅을 선택한 귀화인들의 발자취

박기현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07


#동남아 #유전자 #박기현 #귀화 #민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2. 2 "이재용은 바지회장"... 삼성전자 사옥앞 마스크 벗고 외친 젊은 직원들
  3. 3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4. 4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5. 5 저출산, 지역소멸이 저희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