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8

짐 싸는 소아과 후배들... 정부와 의료계가 당장 해야할 일

[주장]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증원 문제 핵심은 '국민 건강'... 싸움 멈추고, 대화 시작해야

24.02.26 11:36최종 업데이트 24.02.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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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고경남씨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소아암을 진료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전공의들 사직서 제출한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1∼3년 차를 포함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환자보호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이정민

 
코로나 방역으로 저력을 보여준 K의료가 K팝 수준인 줄 알았는데, 최근 필수의료의 위기를 통해 밝혀진 현실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열악하다. 필자는 소아청소년과, 그중에서도 중증 환자의 빈도가 가장 높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면서 정부의 대책을 절실히 기다려 왔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대규모의 의대 증원을 발표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고 많은 전공의가 사직서를 쓰고 병원을 떠났다. 중증 환자 진료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정부의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이 실제로 필수의료를 구원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한 적은 없으며,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4대 패키지를 병행하면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정책 패키지에 대한 논의는 충격적인 의대 증원 발표에 의해 완전히 묻혔으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세한 내용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우선 소아 의료 관련 대책을 몇 가지 살펴보겠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제대로 된 내용이 없다 

대학병원의 중증 소아 환자 입원 진료는 항상 적자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정책 패키지에서는 1세 미만 소아 일반병동 입원 수가 가산율을 30%에서 50%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얼핏 보면 뭔가 올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1세 미만 소아의 입원료를 소폭 올려주겠다는 의미이다. 소아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은 1세나 5세나 비슷하다. 게다가, 소아청소년과 전체 입원 환자 중 1세 미만은 5% 남짓이다. 결국, 이 정도의 지원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어린이병원의 만성 적자를 보상해 주기 위한 '어린이병원 사후 보상 시범 사업'이라는 것도 있다. 어린이 병원에 적자가 나면, '사후에', 그것도 무려 '차등해서'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어린이병원의 적자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그걸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내놓지 않는다. 이 정책에 의하면 결국, 어린이병원이라는 곳은 결코 흑자가 날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이병원에서 인력을 확충하고 시설을 보완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사후 보상 사업은 어린이병원이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정도의 대책밖에 안 된다. 
 

의대증원 맞서 의협-전공의 집단행동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이동하고 있다. ⓒ 이정민

 
소아과 오픈런 때문에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통계를 한번 살펴보자. 만 0세~19세까지 소아 및 청소년 수는 2010년 1200만 명에서 2020년 800만 명으로 감소했고, 소아과 전문의 수는 5501명에서 7298명으로 늘었다. 소아 1000명당 소아과 의사 수가 10년 사이에 0.46명에서 0.91명으로 두 배 증가했다. 그렇다면, 2010년에는 없었던 소아과 오프런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소아과 의사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소아과 전문의가 소아 진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강보험의 구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소아 진료를 위해서 의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수가를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해 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생아 중환자실을 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생아 중환자실의 침상 부족으로 인해 산모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이는 대학 병원들이 만성적인 적자 구조 때문에 추가적인 병상 확보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생아 중환자실 수가를 대폭 인상한 후, 전국 병원들은 자발적으로 신생아 중환자실 침상 수를 늘리고 의료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투입을 꺼리는 정부의 대책은 당장 무너져가는 소아 진료 시스템 앞에서 너무 한가해 보인다. 

의사 늘려서 문제 해결? 진단과 해법이 잘못됐다 

정책 패키지에서 언급된 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진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국내 종합병원들의 전공의 의존도는 매우 높다. 전공의들은 주 80시간 이상을 일하며 병원을 24시간 지킨다. 많은 국민들이 의사 수를 늘려서 전공의들의 근로 시간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을 한다. 전공의들을 주 40시간 일하는 전문의로 대체하는 경우, 전공의 1명당 전문의 2명 이상을 채용해야 한다. 동년배의 다른 전문직종 수준의 인건비로 계산해도 전문의 보수는 전공의의 3배 정도 된다. 그럼, 당장 인건비가 6배 이상 증가한다.

현재 전공의 중심 구조는 병원이 사악하게 전공의를 쥐어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 수준에서 병원 운영이 가능한 최소한의 방안이다. 이런 기형적인 인력 구조는 근본적으로 건강보험 시스템이 강요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려면 엄청난 재정 투입이 필요한데, 과연 정부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따라서, 지금 같은 건강보험 시스템 내에서는 아무리 의사 수를 증원해도 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정책 패키지에서는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재정 투입 방안을 찾기가 어렵다.

국민들이 불만이 많은 대학병원의 2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의대 정원을 증원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 역시 보통 외래 한 세션에서 40~5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한다. 진료 후에는 완전히 진이 빠지고, 환자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15분 진료를 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외래 환자 수를 20%로 줄여야 하고, 환자들이 예약 대기 기간은 5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의사를 많이 뽑아서, 외래 진료를 늘리면 될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서울의 빅 5 병원은 외래 진료실을 100%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를 더 뽑아서 외래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재 진료비 수준에서 15분 진료하고 환자를 1/5로 줄이면 아마 대부분의 대학 병원은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의사를 늘린다고 해서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30분씩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 의료 문제 역시 심각하다. 정부는 지역 완결적인 의료체계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고, 필자 역시 이 목표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이미 KTX로 전국이 연결된 상황에서는 지역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해졌다. 의료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에서 수도권 집중화가 있는 상황에서 의사 수 증가만으로 지역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당장 다음 주에 수술해 주겠다는 지역의 대학 병원을 제쳐두고, 서울로 와서 두세 달을 기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 전달 체계를 완전히 재정비해야겠지만, 이에 대한 비전 역시 정책 패키지에서 찾을 수 없다. 

물론, 정말 의사가 부족한 격오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모든 게 부족하다. 편의점도 없고, 어린이집도 없다. 실례를 하나 보자. 지역의 분만 인프라 붕괴가 문제가 되자, 강원도 홍천에서 정부 예산의 지원으로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를 열었다. 그러나, 이 병원은 6개월 동안 겨우 6건의 분만을 하고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아무리 의사가 늘어난다고 해도, 공공의 지원을 받는 병원조차 유지할 수 없는 지역에 병원을 차릴 수는 없다. 

갑작스럽게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면 대학은 수용 가능한가? 장관과 차관 모두 2000명 증원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아니, 어떻게 정원이 한꺼번에 60% 이상 늘어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수 있는가? 당장 초등학교 30명 교실에 50명을 수업해도 문제가 생길 텐데, 하물며 의과대학 교육은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의대 교육만 문제가 아니다. 늘어난 2000명의 졸업 이후 병원 수련이나 진로에 대한 구체적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자칫하면 수많은 의사 낭인들을 양산할 수 있으며, 이것은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의대 증원 규모나 속도에 관해서는 복지부가 근거로 제시한 논문에서도 각각 의견이 다르고, 특히 이처럼 급격한 증원을 제안한 연구는 없다고 본다. 일각에선 국민들의 80% 이상이 의사 증원에 찬성한다고 한다. 아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의사 증원을 통해서 소아과 오픈런, 대형 병원 3분 진료, 지역 의료 문제, 응급실 문제 등 현재 겪고 있는 불편함이 해결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대 증원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구체적인 대책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을 나열한 쪽에 가깝고, 그나마도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책들이 많다. 

2000명이란 숫자가 금과옥조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정상 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 연합뉴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어떤 이유로든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현재,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또한 미래 의료를 책임져야 할 전공의들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교수들은 사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할 의무도 있다.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의사들은 최악의 소아 진료 환경에서도 중증도가 높은 소아 환자를 진료하기로 결심한 소중한 인력들이다. 소아청소년과 지원 이유를 물어보니 전공의들은 "소아과 전망이 안 좋다고 해서 걱정이 되긴 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미래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려고요" 또는 "정부에서 뭔가 대책을 마련해 주겠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사태를 겪으며,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라며 짐을 싸고 있다. 이들은 불안한 미래를 감수하고도 자발적인 의지로 소아과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정부의 강요에 의해 일을 해야 하는 신세로 바뀐 상황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많은 전공의가 투쟁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직을 선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패키지와 대규모 의대 증원이 미래의 의료 환경을 더 악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절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전공의들에 대해서 강압적으로 구속 수사, 면허 취소 등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협은 그동안 고위험, 고난도, 저수가에 시달리던 필수 의료과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고 본다.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은 집단 행동이라기보다는, 집단 좌절과 절망에 가깝다.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전공의들 중 상당수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고, 필수의료 분야의 지원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라고 본다. 의사들이 정부를 이길 수도 없고, 이길 생각도 없다. 정부가 몇몇 전공의들을 시범적으로 법적 처벌할 수는 있겠지만, 전국 수천 명 전공의들의 절망과 포기를 전부 처벌할 셈인가. 정부가 2000명이라는 숫자를 지키기 위해 의지를 관철하고, 의료 시스템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면 이 불필요한 싸움의 승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같은 상황이 단 한 달만 지속되도 종합병원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의대의 교육 체계와 병원 수련 시스템을 고려하면, 한 달 이상의 장기전은 6개월 정도가 아니라, 1년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3월 이후에는 의대생들이 모두 유급을 당할 수 있고, 종합병원도 신규 전공의를 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대학에도 어마어마한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의 진료 기능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결국, 미래의 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는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고, 오직 정부의 의지만이 승자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진심을 믿는다. 하지만, 진심이 항상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논의하고 현장의 임상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금과옥조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미칠 정책이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없이 결정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정부와 의료계 모두 서로를 향한 말 폭탄을 거두고 좀 더 차분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원인을 되돌아보며 사태 해결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을 바라봐야 하며,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한 논의의 최종 목표는 국민 건강 증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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