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3 06:51최종 업데이트 23.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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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새 대법원장 후보로 대표적인 보수성향 법관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을 지명했다. (자료사진) ⓒ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대법원장 후보로 대표적인 보수성향 법관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하면서 사법부 보수화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법부의 추를 돌려놔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장 교체는 대법원이 보수 우위로 확실히 재편되는 신호탄이 될 거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입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의 잇단 보수적 판결로 사회적 혼란이 커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의 구도는 이미 지난달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중도 성향의 대법관 두 명을 임명하면서 대법원은 '중도·보수 7 대 진보 6' 구도로 역전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제청 전부터 '이념성향'을 이유로 특정 후보 임명 거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노골적인 '코드 인사'를 꽂으려 한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이런 마당에 이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이 되면 '중도·보수 8 대 진보 5'로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대법원이 확실한 보수 우위로 기울어지는 셈입니다.  

윤 대통령 남은 임기 내에 9명 대법관 더 교체 

여권은 김명수 대법원장 때 우리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진보성향 대법관이 대거 임명돼 대법원에 '진보벨트'가 구축됐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전원합의체에서 진보성향 대법관은 7명으로 과반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새 보수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전원합의체가 보수성향 대법관 일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 대통령 남은 임기 내에 9명의 대법관이 더 교체되기 때문입니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8월, 김상환 대법관이 12월에 퇴임합니다. 내년에만 전체 14명의 대법관 중 6명이 교체됩니다. 2026년 3월에는 노태악 대법관, 9월에는 이흥구 대법관의 임기가 끝나고, 2027년 5월에는 천대엽 대법관의 임기가 종료됩니다. 2027년 9월 퇴임하는 오경미 대법관만 예외입니다. 교체되는 대법관 후임은 새 대법원장이 제청하게 되는데, 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드인사'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여당은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판결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삼권분립 원칙을 존중해 법원 판결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을 자제해왔는데 최근 들어 이런 관행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이 지난 6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노동자마다 개별적으로 따지라는 판결을 내놓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자극적인 단어를 써가며 대법원을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에 대한 여권의 비판도 과도해 보입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의 보수화와 관련해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퇴행적 판결이 잇달아 나오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차별을 시정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노력을 무효화시키는 임신중지권·어퍼머티브 액션·학자금 탕감 무효 등의 보수적 판결이 사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런 현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때 대법관의 보수·진보 비율을 6대 3으로 역전시킨데서 비롯됐습니다. 미국 연방대법관 임기는 종신직이어서 이런 구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대법관들이 주류를 차지하면서 판결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엄정해야 할 사법부 판결이 정치적 편향성을 띠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권에서 "사법부의 비정상화가 심각하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습니다. 가뜩이나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극단적인 진영화의 폐해가 심각한데 사법부까지 휘말리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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