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6 16:18최종 업데이트 23.08.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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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한 뒤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발언했다. 독립운동이 반공 투쟁으로 이어졌다는 이런 역사 해석은 한일 안보협력이나 군사동맹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안보협력과 첨단기술 협력을 적극 추진"해 왔다고 한 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독립운동이 반공 투쟁으로 계승됐다는 논리는 이처럼 한미일 혹은 한일 반공연대를 합리화하는 데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도 이용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립운동 재평가가 그것이다. 위의 논리는 반공 이념에 배치되는 독립운동을 저평가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의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복선을 깔고 있다고 해석될 만한 대목이 이번 경축사에 들어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 예우에 관한 부분이다.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이분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국가 계속성의 요체요 핵심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기억'이란 표현을 두 번 사용했다. 이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은 작년 8·15 경축사 및 금년 3·1절 기념사와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다.

정권의 기준에 맞는 독립운동가만 '제대로 기억'?

윤 대통령은 작년 8·15 때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라며 "이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다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 아니라 미래 번영의 출발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때는 '제대로 기억'이 아니라 '반드시 기억'을 언급했다. 그랬다가 올해 3·1절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당대에 독립을 상상할 수 없었던 칠흑 같이 어두운 시절,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작년 8·15 때 없었던 '제대로 기억'이 이때 추가됐다. 그러면서 '반드시 기억'과 '제대로 기억'이 병렬됐다. 그런데 이 시점에 국가보훈처(지금의 국가보훈부)가 준비하던 것이 있다. 3월 7일에 첫 회의를 연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 활동이 그것이다.

위원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성향을 띠는 국민공감위원회의 임무는 독립유공자 훈격(훈장 등급)을 재조정하는 일이다. 공적과 훈격의 불일치를 조정해 제대로 된 서훈을 하겠다는 것이 이 기구의 목표다.

국민공감위원회 발족을 알린 3월 5일 자 보훈처 보도자료는 "공적에 비례하여 서훈되지 않았다는 공정성 논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서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흘 전의 3·1절 기념사에 담긴 '제대로 기억'과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경축사에서는 '반드시 기억'이 사라지고 '제대로 기억'이 두 번 들어갔다. 모든 독립운동가를 '반드시 기억'하기보다는 정권의 기준에 맞는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보다 강하게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윤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제대로 기억'할 것인지는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다. 독립운동에 대한 희생도나 성과를 평가하기보다는 어떤 이념을 갖고 운동을 했는지가 우선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홍범도 추가 서훈에 재조정 의사 비친 국가보훈부 장관
 

지난 6월 30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 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7월 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목적이 있는 겁니다"라며 "자유를 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고 한 뒤 "김원봉 같은 경우가 어려운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발언했다.

박민식 장관은 광복절 전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의 주역인 홍범도의 훈격을 재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지훈 변호사가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기준이 개정돼서 가짜 유공자 서훈 박탈 작업에 나서겠다 말씀을 하셨는데, 여운형 선생, 홍범도 장군 서훈 얘기가 있어요"라고 말하자, 박 장관은 홍범도가 이중 서훈을 받았다며 재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추가 서훈'을 '이중 서훈'이라는 부정적 용어로 언급했던 것이다.

박 장관은 1962년에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상황에서 2021년에 그보다 높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승격 추서된 일을 거론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그 어떤 선호의 표시라고 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문 정권의 선호가 추가 서훈에 반영돼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홍범도는 윤 정권이 대표적인 명장으로 띄우는 친일파 백선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훌륭한 장군이다. 백선엽처럼 사회와 민족을 배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민족이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군사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 명장이었다.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성사시킨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우리 민족이 평화적인 만세 시위뿐 아니라 무장투쟁을 통해서도 일본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있음을 세계만방에 표시했다. 동시에, 대일 투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독립군 잡으러 다닌 백선엽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2021년에 문재인 정부가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유해를 봉환한 뒤 1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수여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훈법 제4조는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동일한 공적이 아닌 새로운 공적이 밝혀지면 얼마든지 추가 수여할 수 있게 돼 있다.

박 장관은 YTN 방송에서 "동일한 공적"이라는 표현을 뺀 채, "상훈법 제4조에 의하면 이중 서훈이 금지되어 있습니다"라며 추가 서훈에 법적 하자가 있는 듯 발언했다. 홍범도에 대한 추가 서훈이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이처럼 재조정의 의사를 내비친 것은 홍범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은 반공투쟁으로 이어졌다'는 윤 정권의 명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극우 진영은 1921년에 소련령 스보보드니(일명 자유시)에서 발생한 자유시 참변 때 홍범도가 소련의 요구에 따라 무장해제를 선택한 사실을 들어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고 있다. 무장해제를 거부한 한국 독립투사들이 참변을 당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소련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야 했던 홍범도와 그 동지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줄 뿐이다.

좌파 독립운동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격하 운동
 

2021년 8월 15일 특별기를 통해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집필한 이동순 전 영남대 교수는 광복절 전날 한길사가 주최한 북토크에서 그 부분을 언급했다. 진행자인 김미옥 문예평론가가 '홍범도는 공산주의가 좋아서 소련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이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2003년에 민족서사시 <홍범도> 전 10권을 펴낸 바 있는 이동순 전 교수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며 홍범도는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했다고 했다.

홍범도는 그럴 만한 세속 지식이 없었으며 그가 아는 것은 어떻게 사냥을 하고 어떻게 전투를 하는가 하는 정도였다면서 이념에 관한 한 거의 백지상태였다고 이동순 전 교수는 평했다. 항일투쟁을 수행하려면 소련의 협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소련 치하에서 소련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던 그의 처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범도가 설령 공산주의자였다 해도 그가 이룩한 독립운동의 가치는 변경되지 않는다. 그에게는 민족의 독립이 최상의 과제였고 그것을 위해 소련과 제휴했을 뿐이다. 극우 진영이 이런 홍범도를 겨냥해 이념 공격을 벌이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은 반공투쟁'이라고 말하고 박민식 장관이 추가 서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홍범도에 대한 모욕을 떠나 우리 독립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시인인 이동순 전 교수는 북토크 때 홍범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에 기초한 '내가 돌아오지 말걸'이란 시를 낭송했다. "내가 돌아오지 말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로 시작하는 이시는 "이 땅을 미·일·중·러 / 4대 강국의 꼭두각시로 만들고 / 위안부 지원병 강제징용 / 그 피해보상을 한국 기업이 하도록 / 물길 튼 자는 누구인가 /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인가 / 죄는 일본이 지었는데 / 보상은 어찌 피해자가 떠맡는가" 등등의 하소연을 담고 있다.

홍범도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훈장 같은 영예를 얻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 훈장이었다. 그런 홍범도를 두고 훈격이 과하다며 등급 조정을 운운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모독이 아니다. 이런 일 때문에도 그는 "내가 돌아오지 말걸" 하고 탄식할 만하다.

문제는 윤 정권의 독립운동 폄훼가 홍범도에게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일본 실정법을 무시하며 총과 칼을 사용했던 무장 독립투사들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진영이나 아나키스트 진영에 수두룩하므로, 이런 좌파 독립운동에 대한 윤 정권의 격하 운동이 홍범도 이외의 운동가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독립운동은 반공투쟁으로 이어졌다는 윤 정권의 해석은 한일 반공연대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는 동시에, 무장독립투쟁의 비중을 독립운동에서 약화시키는 '명분'이 될 공산이 크다. 일본제국주의가 합법적인 우파 독립운동도 경계했지만 총칼을 드는 좌파 독립운동은 더욱 두려워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독립운동 재평가 역시 결국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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