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3 04:44최종 업데이트 23.07.1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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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화 장인이 쇳덩이를 화로에 넣고 달구고 있다. 2023년 1월 19일 인천 <인일철공소>. ⓒ 정진오

 

요즘 대장간에서는 통나무를 때서 쇠를 굽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없다. 이규산 장인의 대장간 화로에서 탄 위에 놓인 통나무가 화력 높은 불꽃을 내뿜고 있다. 2023년 2월 23일. ⓒ 정진오


그동안 스물 한 차례에 걸쳐 여러분과 '대장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든 대장장이들이 일하는 현장을 찾기도 하고, 대장간에서 맞춘 연장을 사용하는 여러 곳을 가보기도 하였다. 430여 년 전, 대장장이들과 함께 조총을 만들던 이순신 장군 시절로 거슬러가기도 했다. 

더 나아가 조선 침략의 발판이 된 일본 조총의 출발지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또한, 신화 속에 그려진 대장장이 이야기에서부터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같은 대장간과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분야로 보폭을 넓혀도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 1938년에 태어난 85세 대장장이가 일하는 인천 <인일철공소>에서는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조새 꼬챙이를 고치기 위해 온 아주머니도 만났다. 수리 비용은 1500원이었다. 대장간이 없어진다면 그 아주머니는 이제 중국산 조새를 사야만 한다. 고장이 나더라도 고치지 못하니 새로 사서 쓰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거다.

굴착기 기사 같은 건설 쪽 종사자들은 대장간이 없어진다면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도심지의 대장간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도로를 파는 굴착기에 쓰는 정이며, 각종 건설 도구들을 대장간에서 손쉽게 고쳐 쓰고는 한다. 

딱딱한 돌을 파내다 보면 단단한 정도 닳거나 깨지게 마련이다. 이때 대장간이 필요하다. 닳아 무뎌지거나 끄트머리가 깨진 정을 대장간에 가져가면, 불에 달구어 뾰족하게 다시 모양을 잡고 담금질을 거쳐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도심 속 대장간이 사라진다면, 건설공사 관계자들은 필요한 여러 도구를 고쳐 쓸 곳이 없게 된다. 망가진 건 버리고 아예 새것을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사 비용이 오르게 되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우리의 국보를 고치는 데도 대장장이가 필수
 

2022년 제18회 울산 쇠부리축제 중 쇠부리 불매소리 구현 장면. ⓒ 울산북구청 제공

 

아차산 고구려유적전시관에 전시 중인 아차산 4보루 모형. 보루를 지키는 병사들의 거주 시설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보루의 오른쪽 맨 위 귀퉁이 흰색 표시가 붙은 부분이 간이 대장간 시설이다. 2023년 2월 28일. ⓒ 정진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숭례문과 같은 아주 귀한 우리의 국보를 고치는 데 대장장이가 필수 인력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겼다. 화마에 무너져 내린 국보 1호 숭례문을 다시 세우면서 우리의 옛 대장간 기술이 필요했다. 

대규모 목재 건축이어서 옛날 방식의 쇠붙이들이 무척 많이 들어가야 했다. 문화재로 보호받는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는 목재 구조물이 유난히 많다. 그 목재 건축물에는 철물(鐵物)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먼 미래에까지 그 문화재들을 계속해서 수리하고 남기기 위해서라도 옛 철물 기술을 아는 대장장이의 존재해야 한다.

다섯 번째 '신화 속 대장장이', 우리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대장장이가 신적 존재로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고구려인들은 대장장이를 불의 신이나, 농사의 신, 수레바퀴의 신처럼 아주 귀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무덤을 쓰면서 부장품을 많이 넣어 두었다. 저세상에서 살아갈 때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들이었다. 대장장이를 무덤에 그려 넣었다는 건 살아 있을 때 꼭 필요한 물건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존재인 대장장이가 죽어서도 필요하다고 여긴 거였다.

여섯 번째에서는 우리나라 유명 소설 중에서 대장장이를 마치 주인공처럼 중요 등장인물로 내세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김훈의 <현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다. <현의 노래>는 마치 대장장이 소설처럼 느껴졌고, <남한산성>에서는 한낱 대장장이가 나라의 운명을 걸머진 인물로 그려졌다. 작가는 대장장이가 '한낱'이라고 말해도 되는, 그런 하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열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귀에 익숙하도록 들어온 '세마치장단'이 대장간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들었다. 대장간의 마치질 소리가 사람들이 다 아는 노랫가락이 되었다는 건 대장간이 그만큼 사람들의 삶과 가까이 섞여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요새는 그 대장간이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열두 번째, '대장간과 철학'에서는 우리가 아는 위대한 사상가 중에는 대장간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고, 심지어는 율곡 이이 같은 분은 직접 대장장이로 나서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농기구와 맨손어업의 각종 도구도 대장간이 있기에 우리의 손에 맞추어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점도 그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속인이 쓰는 물품 중에도 대장간이 아니고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1968년 4월에 건립했다. 2023년 6월 7일. ⓒ 정진오

  

16세기와 21세기의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일본 남쪽의 작은 섬 다네가시마(種子島). 다네가시마에 있는 전시관 두 곳을 가면 500년 세월을 타임머신 타듯 한꺼번에 오갈 수 있다. 하나는 1543년 포르투갈 사람에게 조총을 사들인 뒤 이를 자체 제작하는 데 성공한 일을 기념해 마련한 '다네가시마 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우주 기술이 집약된 '다네가시마 우주센터'다. ⓒ 정진오


열여덟 번째, '조총을 만든 이순신과 조선의 대장장이들' 편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조총 개발에 성공한 뒤 임금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면서 자신과 함께 조총을 만들어 낸 대장장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한 점에 주목했다. 그 공을 대장장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였던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면모에서 우리는 '이순신이 왜 성웅 이순신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는 일본의 남쪽 섬 다네가시마였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파괴력 넘치는 무기인 조총을 재빨리 받아들이면서 생긴 일본의 전국적 권력 구도의 변화에 작은 섬 다네가시마가 있었다. 조총 개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500년, 38대를 이어온 다네가시마 대장장이의 내력을 아직 그 섬에서는 읽을 수 있었다.

조총을 보고 난 뒤에도 그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조선의 위정자들과 기술력의 상징인 대장장이들을 천시하고 역사에서 배제해 버린 조선의 지배계층 이야기에서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요즘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몸서리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1개월 만인 2021년 2월,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수급 문제를 겪던 4대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를 작지만 핵심 소재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못(nail) 하나가 없어서 편자(horseshoe)를 잃었고, 편자가 없으니 말(horse)을 얻지 못했고, 말이 없어서 전쟁에서 졌다"는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의 얘기를 인용하면서였다. 이 행정명령은 중국을 겨냥한 조치였는데,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을 소환해 자신의 말에 무게감을 더한 거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그 얘기 이후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미 국방부는 심지어 2022년 9월, 미국과 동맹국들의 주력 스텔스 전투기인 F-35 일부 부품에 중국산 원자재가 들어갔다고 하여 인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산 합금으로 된 자석 부품이 문제였다. 이렇게 되면서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고, 우리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대장간은 뿌리 깊은 삶과 삶의 복합 공간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각종 농기구들. ⓒ 정진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자격루의 각 부품들. 자격루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이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다. 장영실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 하나이다. 2023년 6월 14일. ⓒ 정진오


대장간에서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대장간은 반도체 기술의 원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편자를 만들고, 편자 박을 못을 만들던 대장간은 '살아 있는 기술 박물관'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존재 가치는 더욱 높아질 테다.

대장간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효율성 측면에서만 따지자면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땅덩어리 좁고, 자원도 부족한 이 나라가 살길은 기술뿐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그런 나라에서 기술 집약 산업의 뿌리인 대장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해서야 될 일인가.

얼마 전, 요새는 찾아보기 어려운 얘기가 언론에 실렸다. 아들이 열일곱 살 나이에 대장장이 일을 배우고 있다는 어떤 아버지의 글이 보도되었다. 그 청년 대장장이는 4년째 배우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 내 아들은 열일곱 살, 직업은 대장장이입니다 https://omn.kr/24mck) 

대장간에서 2년을 배우고, 그곳 대장장이의 추천으로 전통문화대학교 부설 전통문화교육원에 들어가 철물 단조 고급 과정과 철물 장석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사라져가는 대장간을 안타깝게 여기는 쪽에서 보자면 무척 다행스러운 사례였다. 이런 경우가 더 많아졌으면 싶다.

경기도나 충청남도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장장이를 그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려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동안 스물한 번에 걸쳐 이어온 이 이야기를 '대장간 평전'이자 '대장간 인문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점은 대장간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글쓴이의 부족함에 있다. 다 지나서 자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장간은 단순히 땀 흘리는 노동의 공간만은 아니다. 우리네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뿌리 깊은 삶과 삶의 복합 공간이다. 어느 지역이건 그곳을 얘기할 수 있는 대장간 하나쯤은 남길 만하다는 생각이다.
 

송종화 장인의 <인일철공소>에 놓여 있는 모루. 요즘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장간에서 쓰는 이런 형태의 모루는 양모루이다. 모루 위에 망치를 올려놓았다. 2022년 11월 1일. ⓒ 정진오

 

인일철공소 망치 걸이에 걸려 있는 20여 개의 망치들. 망치들에게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2023년 5월 13일. ⓒ 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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