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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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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을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특권층'으로 규정하고 불법행위와의 전쟁에 나서겠다고 한다. 특히 '회계 투명화'를 거론하며 노동조합의 회계를 들여다 보겠다고 나섰다. 26일엔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무총리, 고용노동부장관까지 나서 연신 노동조합, 특히 민주노총의 회계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간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한덕수 총리),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노조 재정 투명화)은 하겠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민주노총을 회계비리의 온상으로 규정해 버린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동관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조차 부재해 일어난 초헌법적 발상이다.

노동자 파업만 있다?... 아니다, '사용자 직장폐쇄'도 있다

파업은 '노무제공의 거부'다. 노동자의 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우리 법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포기하고 파업에 나서는 것이다. 파업에 상응하는 사용자의 권리는 '직장폐쇄'다. 직장폐쇄라고는 하나 실제로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서만 직장폐쇄가 이뤄진다. 즉, 파업이 '노무제공의 거부'라면 직장폐쇄는 '노무수령의 거부'다.

직장폐쇄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대등한 교섭력 확보를 위해 인정된다. 하지만 직장폐쇄의 효과는 파업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단행하면 노조를 배제한 채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대체인력을 채용해 파업의 효과를 대부분 상쇄시키기도 한다. 노무제공의 거부라는 파업의 수단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파업과 직장폐쇄는 노동자와 사용자 서로의 교섭력 강화를 위한 대응적 수단이다. 하지만 두 수단의 권리 수준을 비교할 수 없다. 파업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인데 반해 직장폐쇄는 '노동조합법'을 통해 인정되는 사용자의 권리에 그친다. 이처럼 노동3권이라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노동조합법'이라는 하위 법률이 직장폐쇄로 대응하는 이유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이 이뤄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노무제공의 거부(파업)와 노무수령의 거부(직장폐쇄)라는 노동자와 사용자 각각의 권리를 통해 노사교섭의 균형이 유도된다. 이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사고에 기반을 둔 제도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자의 권리를 바탕으로 교섭해 노동조건, 즉 노동의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참여해 서로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각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관계자가 도로에 세워둔 화물차들에 붙어있던 파업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관계자가 도로에 세워둔 화물차들에 붙어있던 파업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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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성

하지만 제도는 중립적이라 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조합 조직률 자체가 턱없이 낮다. 각종 규제로 인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된다. 파업의 뒤에는 천문학적 손해배상이 청구되곤 한다. 무엇보다 사용자는 공장, 즉 대규모 자본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자가 가진 건 노동력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교섭이라는 운동장을 사용자에게 심하게 기울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정작 더욱 큰 문제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다. 

우리 헌법은 노동3권을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으로 표현한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은 평범한 노동3권이 아닌 자주적인 노동3권이다. 대부분 조건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진한 사용자에 의해 노동조합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헌법은 자주성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은 오롯이 조합원들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독립된 자주적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통해 교섭에 나서야 한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 회계감사를 강제한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대외적 자주성만이 아닌 노동조합 내부의 운영이나 재정 문제에 대한 충분한 자주성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이 연 2회 이상 회계감사를 받도록 강제한다(제25조). 이렇듯 노동조합은 사용자로부터 독립해 자주적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집단이다.

노조의 핵심을 말살하려드는가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 용산 청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 용산 청사가 불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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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용자와의 교섭만으로도 버거운 노동조합을 더욱 힘들게 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국가권력이다. 이번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같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게 되면 교섭이라는 운동장은 사용자에게 극단적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대등한 교섭을 위한 역사적 결과물을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노동조합의 핵심인 자주성 자체를 말살하려 들고 있다. 국가가 노동조합 내부 민주적 운영에 의한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외부로부터의 자주성을 직접 훼손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조합의 회계는 내부 운영의 자주성과 독립성의 핵심이다. 자주성과 독립성이 훼손된 조합은 더는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가에 노동조합의 회계를 들여다볼 어떠한 권한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헌법과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이 국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자주적 노동3권과 회계감사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에게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은 국가에 노동조합 내부 민주적 운영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기에 노동조합 내부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은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초헌법적 주장이다.

정부의 우격다짐

각 100만이 넘는 조합원의 자주적 결사체인 민주노총·한국노총은 '노동조합법'에 따라 매년 2회 이상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들 노총 지도부는 조합원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 윤석열 정부는 각 100만이 넘는 조합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노동조합들을 근거도 없이 회계비리 집단으로 매도해 우격다짐으로 내부 회계를 들여다보려 하고 있다.

두 노총 내부의 민주적 운영은 국가와 사용자로부터 독립될 헌법적 권리가 있다. 또한 두 노총 내부 민주주의는 국가나 사용자가 아닌 각 100만이 넘는 조합원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부분이다.

윤석열 정부의 구성은 역대 정부 중 법조인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은 "법과 원칙"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법과 원칙에 따르면 국가는 노동조합 내부 민주적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김광민 기자는 현직 변호사로 경기도의회 의원(교육행정위원회, 부천5)으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윤석열, #민주노총, #노동3권, #노조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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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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