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8 13:33최종 업데이트 22.11.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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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잡은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입장을 많이 배려하는 편이다. 한국민들의 우려가 큰데도 해상자위대 관함식에 해군을 파견해 지난 6일 우리 군인들이 '욱일기'를 향해 경례하도록 했다. 13일에는 한국보다 일본에 훨씬 긴요한 한일정상회담 자리에 나섰다.

일본 측이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은 점증하는 북한 군사행동에 대한 자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유용한 것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대일 군사협력에 나서 북한을 견제한다는 이미지를 조성해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일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간 한일정상회담을 여는 과정에서 기시다 내각은 윤 정부의 위신을 제대로 배려해주지 않았다. 한국 시각 9월 22일 뉴욕에서 열린 윤석열-기시다 회담을 윤 정부는 '약식 정상회담'으로 표현한 데 비해 기시다 내각은 '간담'으로 낮춰 불렀다. 윤 정부가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를 잠재울 해결책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불만감을 반영하는 조치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일본이 11월 13일 회담을 앞두고는 한국보다 먼저 '3년 만의 정상회담'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회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난 9월에 비해 북한 군사행동이 한층 고조돼 한국의 협력이 더욱 절실해진 일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윤 정부는 그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가며 협조체체 구축에 주력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오히려 요구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8년 12월 20일의 초계기 사건까지 다시 거론하면서 이것에 대한 해법도 만들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3년전 초계기 논란 다시 끄집어낸 일본

2018년 당시 동해상에서 북한 어선 구조 활동을 벌이던 해군 광개토대왕함은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일본 초계기를 목격했다. 500미터 거리에서 위협 비행을 하는 일본 군용기를 향해 광개토대왕함은 수색용 레이더를 비췄다. 일본은 이 레이더가 상대방 식별을 위한 수색용이 아니라 사격을 위한 레이더였다며 한국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일본이 사과해야 할 사안인데도 도리어 억지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이틀 뒤인 지난 15일,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대신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는 "레이더 조준 사안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양국 방위 협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만"이라며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려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사카이 료 해상막료장도 "공은 한국 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앞으로 한국 측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정리된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0일 동해상에서 발생한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P-1 초계기가 촬영한 동영상을 28일 오후 공개했다. 2018.12.28 [일본 방위성 홈페이지] ⓒ 연합뉴스

 
국방부장관과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두 책임자가 같은 날 똑같은 발언을 한 사실은 이 문제를 재점화시키려는 일본 내각과 해상자위대의 의중을 반영한다. '한국이 해답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해상막료장의 발언은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해답을 만들어오라'고 요구하는 내각 각료들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윤 정부가 국내 여론을 외면하면서까지 일본의 입장을 배려하는데도, 일본은 도리어 요구의 수위를 높이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한번 밀리면 잘잘못을 떠나 계속 밀리게 되는 국제관계의 비정한 실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을 비판하고 공격해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일본 극우정권의 한계를 보여준다. 기시다 총리 자신은 극우파가 아니지만 그를 둘러싼 내각과 자민당이 갖고 있는 극우파 정권의 한계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신조 피격 이후의 통일교 논란으로 인해 지지율이 크게 하락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잡기 힘든 상태다. 14일자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10월보다 3% 포인트 하락해 내각 출범 이후 최저인 37%가 됐다. 그의 입지가 한층 좁아져 극우파의 목소리가 증폭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가 초계기 사건과 관련해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쪽으로 실상을 왜곡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반한 혹은 혐한 감정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이슈다. 통일교와의 정경유착, 경제 위기 및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팽배해진 국민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데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초계기 논란이 일본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정권 지지율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일본 SNS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6일 대통령실은 양국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 때 '강제징용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는 취지로 긍정적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브리핑을 내놓았지만, 일본 여론 때문에도 징용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 초계기 사건에 대한 일본 분위기에서도 나타난다.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

윤석열 정부는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등 전범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직접 배상하게 하는 대신 기부금 출연 등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전범기업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절대 끝날 수 없다는 원칙을 무시한 채, 일본이 그 정도 성의만 보여주면 한국 피해자와 법원을 어떻게든 설득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거짓 홍보를 국민들에게 해왔다. 이런 논리를 퍼트려 '거짓말 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확산시켜 왔기 때문에, '한국에 성의 표시를 해주자'고 자국민들을 설득하기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곧 끝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고 있다. 전범기업들이 배상금은커녕 기부금도 낼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도, 전범기업들의 성의 표시를 도출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결국 헛수고가 되기 쉬운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초계기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윤 정부의 성의 표시 요청을 들어주기 힘든 기시다 내각의 처지를 반영한다.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그 같은 성의 표시에 기대감을 거는 게 아니라 전범기업들의 사과·배상을 요구함으로써 피해자와 한국 국민 편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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