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첫번째 아이>를 연출한 허정재 감독

영화 <첫번째 아이>를 연출한 허정재 감독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어머니가 가정주부신데 뭔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 뒷모습이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돌봄 문제를 다룬 영화 <첫번째 아이>를 연출한 허정재(33) 감독은 개봉(11월 10일)을 사흘 앞둔 7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다는 건 정말 극단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아이>는 출산 후 1년 만에 복직한 정아(박하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정아는 재중 동포 보모 화자(오민애)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이 돌봐 줄 이를 다시 찾아야 할 상황에 놓인다. 복직한 회사에서는 자리를 비운 사이 입사한 계약직 지현(공성하)의 시새움을 받는다.
 
안락사와 비정규직 같은 뜨거운 사회 문제를 단편영화로 다뤘던 허 감독이 돌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것을 보면서다. "누구나 태어난 시점이 있잖아요. 나도 분명 그런 시점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계기가 맞물렸죠."
 
 영화 <첫번째 아이> 포스터.

영화 <첫번째 아이> 포스터.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또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육아하는 모습을 직접 찾아가서 보고 인터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정아의 딸이 수족구병에 걸려 어린이집에 가질 못 했다는 이야기는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 허 감독은 "육아에 대해 다 다른 얘기를 하더라고요. 재밌는 현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돌봄: 사랑의 노동> <엄마됨을 후회함> 같은 책을 읽으면서 관점을 확장하기도 했다.
 
정아는 남편 우석(오동민)과 내내 갈등을 겪는다. 우석은 보모를 구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아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육아를 "도와준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허 감독은 "정아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나빠 보일 수 있다"면서도 "우석은 자기 딸에게 굉장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우석은 노력한다고 항변하지만 그 방향성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우석은 시나리오를 쓴 남성(감독)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제 죄책감도 녹아들어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어떤 죄책감이냐는 질문에 그는 "꿈에 대해 생각했을 때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죄책감"이라고 말했다.
 
 영화 <첫번째 아이>의 한 장면.

영화 <첫번째 아이>의 한 장면.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영화가 "촌스러워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 영화가 촌스럽게 느껴질 때면 사회가 바뀌었을 거라는 의미다.
 
육아는 고되지만 그럼에도 정아에겐 묵직한 힘과 여운이 느껴진다. 배우 박하선의 섬세한 연기 덕택이다. 허 감독은 "배우가 육아 경험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을 배우가 채워줄 수 있고 출산하고 아이를 대하는 눈빛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하선 배우가 목소리나 이미지에서 무드가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20대부터 켄 로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아가르 파리디나, 크리스티안 문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감독을 좋아했다. 그는 "그 감독들은 영화로 사회적인 터치를 한다"며 "영화는 사람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 사회적인 삶의 양식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영화처럼) 이 상황에 놓인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나만 이런 상황에 있지 않다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크게 무언가를 바뀌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의미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차기작으로 사랑에 대한 키워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했어요. 사람을 살게 하는 게 사랑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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