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안타까운 순간 26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과 수원의 경기. 수원의 김태환이 연결된 공을 발로 잡아 슛을 쏜 뒤 상대 선방에 막힌 뒤 안타까워 하고 있다.

▲ 수원 안타까운 순간 26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과 수원의 경기. 수원의 김태환이 연결된 공을 발로 잡아 슛을 쏜 뒤 상대 선방에 막힌 뒤 안타까워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밀리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외나무다리 승부가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 선수들과 감독의 언행은 거칠어지고 팬들도 덩달아 흥분한다. 좋게보면 승부욕과 절실함의 표현이지만 자칫 선을 넘을까 걱정이다. 한 시즌의 마무리에서 '승격과 강등'의 갈림길 앞에 선 각 팀들의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안양과 수원 삼성은 득점 없이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는 승강 PO 역사상 최초의 '지지대 더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안양과 수원은 프로축구 역사에서 오랜 인연이 있다. 안양은 본래 FC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의 연고지였다. 1996년부터 신생팀 수원이 창단하면서 안양과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며, 양팀의 대결은 안양과 수원을 잇는 1번 국도의 구간(지지대고개) 지명에서 따온 '지지대 더비'(1996-2003)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의 FC서울이 안양을 떠나 연고지를 옮기며 수원과의 라이벌전은 '슈퍼매치(혹은 슬퍼매치)'로 불리게 됐고, 지지대 더비는 한동안 사라졌다.
 
2013년부터 안양에 시민구단 FC안양이 새롭게 창단하며 지지대 더비도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1부리그의 강호였던 수원 삼성과 2부리그에 있던 FC안양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두 팀은 2013년(32강)과 2021년(16강) 대한축구협회(FA) 컵에서 맞대결을 펼쳤고 두 번 모두 전력에서 우위였던 수원이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두 번 모두 안양이 수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상당한 접전을 펼쳤다. 2013년에는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서정진의 골로 수원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고, 2021년에는 승부차기(4-2)까지 가는 혈전 끝에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올시즌, 운명의 장난처럼 두 팀은 하필 'K리그에서 가장 잔혹한 매치'로 꼽히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마주치게 됐다. 수원은 K리그1에서 10위에 그치며 올시즌부터 하위 2팀에서 3팀(10~12위)까지 확대된 승강PO의 첫 희생양이 됐다. 안양은 K리그2 PO에서 경남을 물리치고 승강PO에 안착했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승강 PO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은 2부 강등, 안양은 1부 승격의 경험이 아직 없다.
 
부활한 '지지대 더비', 뜨거웠던 경기장 안팎

경기는 지난 24일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얼마되지 않아 전 좌석이 매진될 만큼 팬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승부 역시 절박한 양팀의 상황을 반영하듯, 골만 없었을뿐 경기는 매우 치열했다. 양팀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적으로 맞붙었고, 곳곳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발을 밟히거나 걷어차이며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팀은 경쟁이라도 하듯 거친 플레이를 남발했고, 심판 판정에 대해서도 번갈아가며 불만을 드러냈다.
 
양팀 팬들도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이 넘어질 때마다 고성을 지르거나 불리한 판정이 나오면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결국 치열한 공방에도 불구하고 양팀은 끝내 승부를 내지 못한 채 2차전에서 최종적으로 승강의 운명을 가리게 됐다.

결과적으로 양팀 모두 장군멍군이었다. 안양은 홈에서 수원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열세라는 에상을 뒤집고 오히려 상당한 공격시간을 이어가며 자신감을 얻었다. 수원은 어려운 원정경기를 무승부로 안양전 무패행진(2승1무)을 지켰고 2차전이 홈에서 열리는 만큼 더 유리한 입장이지만, 안양의 견고한 수비진을 어떻게 공략할지가 숙제로 남았다.
 
경기 참 안 풀리네 26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과 수원의 경기. 수원의 이병근 감독이 답답한 표정으로 팀 벤치를 바라보고 있다.

▲ 경기 참 안 풀리네 26일 경기도 안양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안양과 수원의 경기. 수원의 이병근 감독이 답답한 표정으로 팀 벤치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양팀 감독들 역시 경기를 마친 후에도 치열했던 승부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병근 수원 감독은 이날 경기를 총평하며 "생각보다 안양의 수비가 굉장히 강하고, 더티(지저분)했던 부분이 우리 선수들을 괴롭힌 것 같다. 2차전에서는 좀 더 이겨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 감독의 발언은 수원의 공격이 저조했던 이유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굳이 불필요하게 상대팀을 감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더티하다'는 표현까지 쓴 것은 너무 나가버린 측면이 있있다. 이어 이 감독은 홈인 수원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지는 2차전에 대해서는 "더 공격적이고 전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상대가 강하게 나왔을 때 이겨내는 게 필요하다"며 계속해서 안양의 거친 플레이를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우형 FC안양 감독도 즉각 반격했다. 이우형 감독은 이병근 감독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축구는 정당한 몸싸움이 인정되는 스포츠다. 그렇게 얘기할 거면 네트를 놓고 배드민턴을 쳐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하며 "경기력으로 우리를 제압하지 못하니, 상대 팀에게 더티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해프닝은 경기장 밖에서도 벌어졌다. 이미 팀이 승강PO까지 추락한 데 불만이 쌓여있던 수원 팬들은 중요한 안양 원정에서 또 졸전 끝에 무승부에 그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원 팬들은 경기장을 떠나는 수원 선수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고, 선수단 버스를 막아서려고 하다가 현장 보안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수원 팬들은 지난 12일 K리그1 파이널라운드 36라운드 대구전에서 패한 직후에도 단체로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부진에 항의한 바 있다. 당시 이병근 감독이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부진을 사과한 끝에야 겨우 진정됐다. 불과 2주 만에 공개 팬 청문회가 또다시 재현될 뻔했다. 사상 첫 승강PO 추락에 이어 2부리그 강등의 벼랑 끝에 몰린 팬들과 선수단 모두 얼마나 압박감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편 2년 연속 승강PO에 도전하는 대전 하나시티즌은 같은날 홈에서 김천 상무를 상대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1부 승격을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대전은 김천 문지환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조유민의 동점골과 주세종의 역전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2022년 K리그는 최대 3팀까지 승격과 강등이 가능하다. 이미 K리그1 최하위를 기록한 성남FC의 강등, K리그2 우승팀 광주의 승격이 확정된 상태다. 군팀인 김천에 이어 K리그 4회, FA컵 5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 수원 삼성까지 2부리그로 추락한다면 그야말로 K리그 승강제 역사에 길이남을 파란이 된다.
 
한편으로 승강PO가 질정으로 치달으면서 지나치게 과열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벼랑 끝에 놓인 각 구단과 팬들의 절박함도 공감이 가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에 기반하여 자칫 선을 넘는 모습은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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