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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조금씩 몸의 움직임이 달라져갔다. 침대에서도 예전에는 거의 차렷 자세로 누워 잤는데, 이제 옆으로도 살짝 돌아누울 수 있게 되었다. 옆으로 누웠더니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듯이 너무 포근하고 편안했다. 옆으로 눕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싶었다.

침대를 세우지 않고도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자 침대 밥상을 펴보려고 팔을 뻗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곳에 손이 닿지를 않았다. 처음엔 왜 손이 안 닿는지 몰랐는데, 그동안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허리에 30센티는 됨직한 각목이 끼워진 듯 뻣뻣했다.

다리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굳고 약해져 있었다. 발이 가려워 긁고 싶어도 손이 닿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양말도 못 신는 상태냐며 안타까워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그림의 떡이었다.

돌아보면 '오늘은 드디어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했어!'라며 기뻐 뛰고 싶은 시간도 있었고, '아직도 저 코앞의 침대까지 걸을 수가 없구나'하는 절망의 시간들이 교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예전에는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이러저런 흠들이 많아 보였던 내 몸이 얼마나 온전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온전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약한 존재, 그래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일어서기 연습을 시작한지 열흘쯤 지났을 때 주치의가 침을 놓으러 와서는 퇴원 얘기를 했다. 진단서에 따르면, 진단일수가 다음주 수요일에 끝나니 그때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수술 병원에서 퇴원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당황스러웠다. 이런 말을 저렇게나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다니!

수술의에게 추가 진단서를 받아오지 않는 한 병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진단일수 이상으로 입원시키면 지원금이 깎이게 된다고 했다. 그럼 나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요양병원 같은 데를 알아보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일단 수술병원에 가서 추가진단서를 요청해보기로 했다. 택시로 옮겨 앉을 수 있을까 좀 걱정되었지만, 할 수 있을 듯했다. 급하게 진료예약을 잡고, 앰뷸런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갔다.

수술의는 진단일수와 입원일수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고, 진단일수라는 것은 거의 정해진 틀대로 자신들이 적는 것이라서 추가진단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어디에, 누구에게, 어떻게 하소연하거나 따져야할지 모를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부당한 진료 거부가 아닌가 싶어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당장 급했다. 언니가 이곳저곳 전화 상담을 했다. 나같이 이미 입원이 오래된 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었고, 와서 상담을 해보라는 곳도 있었다.

환자들과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된 공공병원인 제주권역재활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의사가 여러 가지 요건들을 알아보더니 입원 60일 이내였더라면 입원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한데, 지금은 여러 검토를 해보아도 입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정보들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진작 이 병원으로 입원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와야 했다. 상황을 들은 친구는 몸이 아픈 것 이상의 무슨 요건이 필요하냐고, 미치겠다며 속상해했다.

이날은 내 생일이었고, 오전에 출발하면서 생일 선물로 입원 허락을 받을 수 있으면 최고의 선물이겠다 싶었다. 결국 최고의 선물을 받지는 못했고, 다음날 다른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불안한 마음으로 창가에 섰다. 저 멀리 고깃배의 불빛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즈음 종종 봤던 제주도 배경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빠가 예전에 달 백 개가 뜨는 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고 어린 딸아이가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달 백 개가 뜨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달 백 개는 마을 사람들이 궂은 날씨에도 그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고깃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밝힌 불빛들이었다. 나는 고깃배의 불빛들을 보며, 내일 가는 병원이 나를 받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을 나가라 하는데 갈 수 있는 곳은 알아보지 못한 불안한 상황에서 저 멀리 저녁 바다와 고깃배의 불빛들을 보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처럼 나도 소원을 빌었다. 내일 입원 상담을 가기로 한 병원은 나를 받아주기를.
▲ 병원 창가에서 본 고깃배의 불빛들  병원을 나가라 하는데 갈 수 있는 곳은 알아보지 못한 불안한 상황에서 저 멀리 저녁 바다와 고깃배의 불빛들을 보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처럼 나도 소원을 빌었다. 내일 입원 상담을 가기로 한 병원은 나를 받아주기를.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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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빛 덕분인지 소원이 이루어졌다. 상담 과정에서 의사는 내가 아직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이니 한 달 입원하는 것으로 하자, 골절의 경우 입원 기간을 오래 인정해주지 않는다, 입원을 해도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니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갈 데가 생겼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 당시 나는 내 몸을 잘 치료해줄 좋은 병원이 아니라 나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는, '병원난민' 같은 처지였다. 그렇게 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입원 병원을 정하게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해서 화가 나고 답답하고 불안했을 때, 나가라는 병원과 주치의에 대한 욕을 포함해서 같이 수다 떨고 흥분하고 뭐라도 도움 되는 정보들을 알아봐주려는 친구들이 있어 그래도 다행스러웠다. 그런 시간들이 충격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지만, 충격을 줄여주는 매트리스같은 역할들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가라는 통지는 받았으나 대안이 없어 불안했던 어느 날, 옆 병실에서 사람들이 와서 병원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고 얘기를 나누다가 어찌어찌 노래자랑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며칠 전 입원해서 조용하고 우울하게 계시던 할머니 환자분이 고운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병원 이름을 따서 '00노래자랑'이라 부르고, 상품으로 음료수도 돌리면서 놀았다.

아무래도 노래, 수다, 웃음 등은 참 좋은 심신의 치료제인 것 같다.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좋지만, 노래하고 웃고 떠들며 지내는 순간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빛나는 보석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가수 한대수는 자신을 낙천적 염세주의자라고 했다. 서로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삶의 비극성을 인정하되 그것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여유 같은 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찰리 채플린 영화와 한대수의 노래를 감상해볼까?

태그:#퇴원 통보, #찰리 채플린,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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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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