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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군사동맹과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 가능성이 의제로 떠올랐던 지난 대선에 이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비난으로 일본 자위대의 존재가 또다시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표는 7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을 끌어들여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하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냐"고 날을 세우며 "일본의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를 떠받쳐줄 수 있는 한미일 군사합동 훈련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명백하게 사과하고, 다시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미일 연합훈련이 추진된 것에 대해 "이것은 일본의 군사이익을 지켜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극단적 친일 행위다. 대일 굴욕 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혹평하였다(관련 기사 : 이재명 "한미일 합동훈련은 국방참사... 극단적 친일행위").

이날 이 대표가 "일본은 한국을 무력 지배했던 나라이고, 과거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서 "(일본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오히려 문제 삼고 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끊임없이 우긴다"고 발언한 것은, 그가 역사 인식 문제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바라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지점에서, 이 대표는 '일본 자위대'가 '정식 군대'로 인정받는 사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보인다. 현대 일본의 자위대와 제국 일본의 일본군을 동일선상에 놓는 이러한 시각은 과연 타당한가.

1945년 11월 30일을 기해 일본 육해군은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일본군은 법적으로도 실체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자위대라는 무장 조직이 존재하며 국방의 업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자위대는 결코 일본군이 아니다. '천황의 통수권'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문민통제를 거부하고 침략전쟁을 거듭 도발했던 일본군의 역사는 전후 일본 세대에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자위대의 존재 자체가 위헌이라는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자위대의 법적 지위가 표류하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사정이 있다(관련 기사 : [주장] 대선토론에 등장한 '일본군', 진실로 안보에 도움되나).

자위대가 문민통제에 단단히 묶여있는 것을 넘어, 아예 일본 정부가 임의로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위대의 존재, 미국-일본과의 군사동맹은 순전히 미국의 필요에 의해 조직되고 구성된 것이었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와 육군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반미세력을 일소한 미국은, 미국에 협조적인 일본 지도층들을 포섭해 새로운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구상했다. 일본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무시하고 강행된 1960년의 일미 신안보조약은 이러한 배경 아래서 성립되었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일미 신안보조약을 추진하자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군사동맹이 추진된다는 것은 일본 대중들에게 납득될 수 없는 것이었다.
▲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의 시위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일미 신안보조약을 추진하자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군사동맹이 추진된다는 것은 일본 대중들에게 납득될 수 없는 것이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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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310만의 국민이 사망했던 일본 사회는, 새로운 군사동맹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시위는 국회를 집어삼킬 정도로 번졌고, 조약을 추진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내각은 결국 총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부의 소용돌이가 어떻게 전개되든 미국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했다. 일미 신안보조약은 정상적으로 발효되었다(관련 기사 : '평화 헌법'의 일본은 어떻게 군사대국이 되었나).

패전 후 일본은 주권 회복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하게 정치·군사적으로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민중항쟁과 내각퇴진에도 불구하고 일미 신안보조약이 발효된 것은 이러한 종속관계가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육군 항공대 장교로 전쟁을 체험한 바 있는 역사학자 오에 시노부(大江志乃夫)는 저서인 <천황의 군대(天皇の軍隊)>에서, 일본 자위대가 미군에게 종속돼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본 정부/국회로부터의 통수권'보다 미군이 요구하는 '작전 준비'가 더 우선되고 있다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자위대의 진짜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시기부터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전초기지로 활용해왔다. 자위대의 탄생과 운용이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면, 결국 한미일 연합훈련은 물론이거니와 장차 일어날지 모를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 역시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군은 어떠한가. 전시작전통제권이 여전히 미군에게 있는 것은 물론, 미군의 지원이나 연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독자적인 작전수립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고자 하)는 동아시아 안보 질서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미 해병대와 육상자위대의 기동훈련 사진이 "신뢰를 다진 일미"라는 제목으로 육자대 페이스북에 게시되었다. 자위대는 사실상 미군에 종속된 조직으로 평가된다.
▲ "신뢰를 다진 일미" 미 해병대와 육상자위대의 기동훈련 사진이 "신뢰를 다진 일미"라는 제목으로 육자대 페이스북에 게시되었다. 자위대는 사실상 미군에 종속된 조직으로 평가된다.
ⓒ 일본 육상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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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안보 협력의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친일' 문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실체적으로도 이미 해산된 일본군과 별개의 존재인 자위대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시키기보다는, 자위대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의도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위대의 탄생과 일미 신안보조약이 일본 국민들의 의지와 무관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한미일 연합훈련을 '친일외교' 탓으로 돌리는 이 대표의 비난은 그 방향을 잘못짚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미군을 보조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를 진행해온 미국의 의지와 필요 앞에서,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발상을 전환해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반일담론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시민 사회의 연대 모색이라고 생각한다.

태그:#한일관계, #군사동맹, #한미일, #자위대,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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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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