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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농부의 땀방울이 수천 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쉽게 버리는 밥 한 알은 누군가의 배 속을 채우는 양식이 될 수 있다. 식탁 위에 올려진 밥상에 무심코 던진 반찬 투정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말에 온기를 느끼며 긴장감은 해제된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평가할 줄은 알았지만 해주는 사람의 노고까지 생각하면서 먹은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돈을 내고 사 먹으니 평가는 당연한 권리며, 맛은 의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이제 음식에 대한 내 생각은 '4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100인분의 점심 준비 
 
조리실
 조리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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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심이 많던 차에 주방보조를 구한다는 한줄 광고에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길래 51살이라고 하자 면접을 보러 오라 했다. 면접을 본 담당자는, 넘치는 의욕을 발견했지만 경력이 없어 주춤하는 내게 어렵지 않으니 아르바이트로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하루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면접관이 생각하는 51살의 평균 여성은 기본적으로 주방일을 충분히 할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별걱정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시켰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 어떻게 왔어?"라고 묻는 조리사에게 "요리 배우고 싶어서요"라고 하자 "여긴 배우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곳이야"라며 "요리하는 건 좋아해?"라고 물었다. "요리하는 건 좋아해요"라고 말하자 "그럼 됐어"라며 일을 시작했다.

일단 바닥을 쓸고 탁자를 닦았다. 그리고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알려줬다.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거대한 식기세척기에 놀라 겁먹은 내게 "처음이라 그래, 나도 그랬어, 익숙해지면 괜찮아"라며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 100인분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1인 요리는 해봤지만 100인분이라니. TV에서나 보던 대형 가마솥과 꽉 막힌 공간 속에 설치된 수십 개의 가스밸브에 공포가 밀려왔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은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이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 일을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던 걸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책임감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오늘 휴무를 맞은 직원의 몫은 해야 했다. 조리사와 단 둘이 오늘 구내식당 점심을 책임져야 한다.

다행히 60대 조리사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40대 외모의 동안이었는데 외모만큼 모든 것이 젊고 깔끔했다. 자신의 업무인 요리를 하면서도 계속 내 일을 거들며 알려주었다.

계속 버벅거리는 내게 '누구나 초보 때는 힘들지, 새로운 도전을 해야 삶의 자신감이 생겨'라며 초보인 나를 끊임없이 위안하여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뭐든지 모르면 어설프고 힘들다. 그 힘듬은 배가 된다. 쉬운 길도 돌아간다. 손은 부르트고 발은 뒷꿈치가 까슬렀고 작업복은 다 젖었다.

척척척 요리 솜씨를 뽐내며 멋지게 보조해야지, 하는 예상은 멀어지고 그저 오늘 내 역할만 무사히 마치기를 소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죄 없는 면접관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를 그저 나이만으로 가늠하고 하루 일을 맡긴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나 역시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컵을 씻고 건조하는 단순한 일조차도 버거웠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이었다. 공식 30분 휴게시간이 주어졌지만 초보여서일까 쉴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았다.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부족했다.

계속 힘들어 하며 자신 없어하는 내게 조리사는 '못 할 게 뭐 있어. 나도 전업주부 하다 왔어. 주부는 애 낳고 하면 못하는 거 없어. 그냥 뭐 용감해지는 거지'라며 '아줌마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주부도 아니고 애를 낳아본 적도 없다.

값 싼 점심에 깃든 노동
 
열악한 휴게실, 꽉 막힌 노동 공간에서 최저시급으로 만들어 내는 4가지 반찬과 신선한 샐러드에 한 끼 식사비는 4000원이다.
 열악한 휴게실, 꽉 막힌 노동 공간에서 최저시급으로 만들어 내는 4가지 반찬과 신선한 샐러드에 한 끼 식사비는 4000원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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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보조로서의 역할을 잘해 내진 못했지만 다행히 구내식당 점심 이용자 100인분을 끝내고 2시가 넘어서야 점심시간이 되었다. 힘들고 긴장해서인지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배고픈 줄 몰랐다. 뒤늦게 점심을 먹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급여가 작아서 쉬운 일인 줄 알았어요"라고 고백하자 조리사는 "최저시급이잖아"라고 응수했다. 양식, 중식, 일식 요리사들은 '셰프'라고 불리며 대우받는데 왜 한식 조리사는 '주방 찬모'(영양사는 조리사를 찬모라 소개했고, 나는 부찬모를 해야 한다고 했다)라 불리며 최저임금을 받는지 의아해 했다.

한식은 자신처럼 전업주부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 노동에 최저가로 이어지는 구내식당 식권으로 순환되는 시스템 때문인 거 같다고 열변했다. 노동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걸까.

열악한 휴게실, 꽉 막힌 노동 공간에서 최저시급으로 만들어 내는 4가지 반찬과 신선한 샐러드에 한 끼 식사비는 4000원이다. 누군가는 기쁘고 누군가는 힘들다. 시급이 작다고 맡은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다. 조리사 말씀처럼 이왕이면 즐겁게 신나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음식 맛이 난다고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최저가는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러나 그 최저가를 보장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조건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희생이 최전선에 근무하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건 더더욱 부조리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구조 시스템까지 불똥이 튀었고 결국 나이 제한에 걸려 할 수 있는 일이 한식 주방 밖에 없는 50대 이상 여성으로의 동질감을 느끼며 최저시급에 힘든 노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로 마무리했다.

조리사는 내가 계속 근무할 사람처럼 보이는지 끝까지 레시피를 알려줬다. '요리는 과학'이라며 1인분 기준 100개의 양을 만들면 되는 것이고 불 세기 조절과 재료 순서대로 요리해야 맛이 나는 것이니 요리의 맛은 과학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하므로 게으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힘들지 않냐고 묻는 내게 되려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자부심이 생긴다고 했다. 휴게시간도 반납하고 책임을 다하는 조리사의 노고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면접관 첫 대면 시 내 나이를 묻고는 바로 채용한다 했을 때 (알고보니 사람을 못구하고 있었다) 수락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하루 경험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프리패스 정식으로 덜컥 채용당할 뻔했다.

퇴근 무렵 면접관은 부찬모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죽고 싶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면접관은 처음이라 그렇다며 계속 일해달라고 했다. 사람을 못 구해서 그러냐고 물으니 사람을 구하지 못해 찬모가 지금 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였다. 힘들고 어려운 노동 업체의 구인난이다.

세상만사 의욕만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님을 알게 된 오늘, 나의 노동은 최저시급 9160원(2022년 최저임금)이 아닌 10배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대해 불만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태그:#노동, #요리, #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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