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한민국-크로아티아 경기 장면 (2022.10.2)

2022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한민국-크로아티아 경기 장면 (2022.10.2) ⓒ 국제배구연맹

 
전패가 유력시됐던 여자배구가 마지막 경기에서 대반전을 일으켰다. 그것도 가장 중요하고 절박했던 순간에 거둔 승리였기에 더욱 빛이 났다. 연말에 개봉 예정인 영화 '1승'이 현실 세계에서 먼저 일어난 느낌이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일 새벽(아래 한국시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펼쳐진 '2022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회' B조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크로아티아를 세트 스코어 3-1(25-21, 27-29, 27-25, 25-23)로 이겼다.

말 그대로 '단두대 매치'였다. 이 한 경기의 승패에 따라 내년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 예선전' 출전 여부가 결판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한국 대표팀은 세자르(45) 감독이 부임한 이후, 지난 6~7월에 열린 '2022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에서 12연패,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4연패로 국제대회 16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승리는커녕 한 세트를 따내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이 경기가 주목받은 이유는 이번 세계선수권 24개 참가국 중에서 한국이 주전급 선수의 이탈 규모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자배구 황금기의 기둥 역할을 했던 김연경(192cm), 양효진(190cm), 김수지(188cm) 등 장신 트리오가 모두 은퇴했고, 설상가상으로 남아 있는 주전급 선수들마저 대거 부상과 건강상의 이유로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14명도 몸이 성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 

어렵게 세계선수권 대표팀을 구성했지만, 이후 진천선수촌 훈련마저 외국인 감독과 국내 감독의 불협화음 등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력이 가장 크게 약화된 나라가 대표팀 선수 구성과 배구계 전체의 훈련 지원 부분까지 다른 나라들보다 부실했던 것이다. 결국 이번 대회 초반부터 그 여파가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기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관련 기사 : 세계선수권 4연패 여자배구... 예견된 시련).

그러나 세자르호는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대회 막판에 귀중한 첫 승을 따냈다. 감독과 선수 모두가 절박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따낸 승리였다. 크로아티아의 장신 미들블로커들이 무차별 고공 속공을 퍼붓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원팀'으로 이를 버텨낸 것이다. 

선수별 득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박정아 21득점, 이선우 21득점, 황민경 15득점으로 윙 공격수들이 가장 이상적인 득점 분포를 만들어 냈다. 미들블로커도 이주아 9득점, 이다현 4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세터 염혜선, 리베로 김연견, 원 포인트 서버로 들어가서 3세트 끝내기 서브 에이스를 기록한 표승주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한 세트도 따기 어려워 보였던 세자르호

이번 '1승'이 가장 빛나는 대목은 위태위태했던 '파리 올림픽 예선전 출전권'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내년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 예선전'은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상위 24개 팀이 출전한다. 그런데 프랑스(올림픽 개최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징계 중)가 출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세계랭킹 25~26위까지는 유지해야 한다.

한국은 2일 새벽 크로아티아와 경기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랭킹이 25위, 랭킹 포인트가 140점이었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한국보다 높은 세계랭킹 24위, 랭킹 포인트 143점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크로아티아에 승리한 직후인 2일 오전, 한국은 세계랭킹 23위, 랭킹 포인트 149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1경기 승리했는데, 랭킹 포인트가 9점이나 오른 것이다. 그러면서 내년 올림픽 예선전 출전도 확정됐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세계랭킹 27위, 랭킹 포인트 134점으로 폭락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예선전 출전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만약, 한국이 패하고 크로아티아가 승리했다면, 두 나라의 상황은 정반대가 됐을 것이다.

이 한 경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리고 세계선수권이 올림픽 다음으로 중요하고 큰 대회라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물론 내년 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이 파리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4강 팀이 전 세계 24강이 겨루는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하는 것과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또한 2023 VNL 등을 통해 전력을 더 끌어올리고, 올림픽 예선전에 총력을 쏟아부을 기회와 시간도 벌게 됐다.

크로아티아 예상 밖 부진

한국이 오랜만에 승리를 했다고, 상대 팀인 크로아티아를 만만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것은 사실 예상밖의 일이다. 

감독과 선수 구성, 그리고 올해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기세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주전급 선수가 이탈자 없이 모두 이번 대회에 출전했고, 객관적 전력 평가에서도 한국보다 많이 앞섰다.

올해부터 크로아티아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아크바시(Akbaş) 감독은 현재 유럽 정상급 프로팀인 에자즈바쉬 감독이기도 하다. 에자즈바쉬는 김연경이 지난 2018-2019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2시즌 뛰었던 팀이다. 아크바시는 에자즈바쉬 팀과 크로아티아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 주전 선수들의 커리어도 만만치 않다. 주공격수인 파브리스(190cm)는 이탈리아 리그 이모코, 러시아 리그 디나모 카잔 등 유럽 정상급 팀에서 주전 아포짓으로 활약해 왔다. 올 시즌은 에자즈바쉬에서 뛴다.

미들블로커인 부티간(190cm)도 지난 시즌부터 이탈리아 리그 베르가모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미들블로커 샤마단(193cm)도 2020-2021시즌에 이탈리아 리그 강호인 스칸디치에서 뛰었다. 아웃사이드 히터들도 프랑스 등 해외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크로아티아는 올해 국제대회에서 기세가 매우 좋았다. 특히 지난 7월 말에 열린 '2022 발리볼챌린저컵(Challenger Cup)'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내년 2023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로 승격됐다. 

당시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는 유럽 강호 벨기에를 3-1로 꺾었다. 그 때 크로아티아의 경기력은 이번 세계선수권보다 훨씬 좋았다. 주공격수인 파브리스가 양팀 통틀어 최다인 31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주도했다. 미들블로커인 부티간, 샤마단도 똑같이 12득점씩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반면, 벨기에는 주공격수 헤르보츠가 23득점으로 분전했지만 팀 패배를 막지 못했다. 벨기에는 계속 VNL에 잔류할 것으로 기대했다가 강등이 확정되자, 선수들이 경기 직후 펑펑 울었다. 심기일전한 벨기에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A조 조별 리그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16강 리그에 진출했다.

그런데 이번엔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마치 뭔가에 홀린듯 경기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 출전 경험이 적은 게 주 요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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