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대표팀, 2022 세계선수권 대회 경기 모습

여자배구 대표팀, 2022 세계선수권 대회 경기 모습 ⓒ 국제배구연맹

 
'이기는 게 기적.' 지난 24일(아래 한국시간)부터 시작된 2022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마주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다.

한국은 B조 조별 예선 리그에서 도미니카, 터키, 폴란드, 태국에 모두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16강 리그 진출도 좌절됐다. 이제 10월 2일 새벽 코로아티아와 마지막 경기만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 전력상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이런 성적은 대회 개막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 여자배구는 올해 대표팀 선수 구성 면에서 너무도 큰 공백이 발생했다.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192cm)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인데, 양효진(190cm), 김수지(188cm)까지 장신 트리오가 모두 은퇴했다. 

특히 주전급 선수의 이탈 규모가 매우 컸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처럼 주전급 선수들이 많이 빠진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도쿄 올림픽 4강 신화 멤버 12명 중, 박정아, 염혜선, 표승주 3명만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도쿄 올림픽 12개 출전국 중 이런 사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다른 11개 국가는 도쿄 올림픽 멤버가 최소 6명에서 9명까지 그대로 출전했다. 

다른 나라들은 설사 은퇴 선수가 있더라도 나머지 선수들 중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 합류해 최상의 멤버로 출전했다. 심지어 부상이 있는 선수조차 대표팀에서 재활과 훈련을 병행했다.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번 대회 성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 나라 배구계 전체가 총력 지원 체제로 나섰기 때문이다.

V리그 '혹사 시스템' 유지되는 한, 대표팀 줄부상 악순환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의 '줄부상' 때문이다. 세계선수권 대표팀 소집훈련 명단에 포함됐던 이소영, 강소휘, 정지윤, 이한비, 정호영, 박은진, 안혜진이 모두 부상과 건강상의 이유로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14명도 몸이 성한 선수가 거의 없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의 V리그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V리그의 '혹사 일정과 시스템'은 전 세계 배구 프로 리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 빅리그는 대부분 팀당 일주일에 1경기를 치른다.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주중에도 경기가 추가되긴 하지만, 강팀들은 약팀과 경기할 때 주전 선수들에게 돌아가면서 휴식을 준다. 그만큼 부상 방지와 체력 유지가 가능하다. 또한 비주전 선수에게도 자주 출전 기회를 주면서 선수 운영 폭을 넓게 가져간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 리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체 일정 자체가 V리그 절반도 안 됐다. 고작 2개월 정도였다. 일본 리그도 주말에만 2일 연속 경기를 하고 평일 5일 동안은 경기가 없다.

반면, 한국 V리그는 10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6개월에 가까운 대장정을 치른다. 그것도 각 팀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3일 간격으로 경기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감독들은 시즌 내내 주전 선수 위주로 경기를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각 팀의 주전급 선수들은 시즌 종료 후 부상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대표팀 선수 1명인데, V리그 종료 후 부상 선수는 '최다'

선수 부상과 관련해 프로구단을 옹호하는 인사들은 국제대회 일정이 빡빡하다며 대표팀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른 부분도 있다. 국내 프로구단들이 산증인이다.

실제로 흥국생명의 경우 지난해는 대표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선수가 V리그 준비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올해도 이주아(22) 한 명만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럼에도 지난 시즌 V리그 종료 후 주전급 선수의 부상자가 여자배구 7개 팀 중 가장 많이 발생했다. 

팀 전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6개월의 장기 리그에서 무리를 하다 후유증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캣벨, 이주아, 김채연은 정규리그 33경기 전 경기를 풀로 뛰었다. 김미연, 김다솔도 31경기, 신인인 정윤주도 30경기를 소화했다. 이렇듯 주전 선수 위주로 장기 리그를 치르다 보니, 대부분의 선수가 V리그 종료 후 부상 치료와 재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하게 대표팀에 들어간 이주아가 현재 흥국생명 선수 중에서 몸 상태가 가장 생생하고, 기량도 가장 크게 발전했다. 

그렇다면 흥국생명만 이럴까. 흥국생명보단 덜하지만, 다른 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V리그 종료 후 각 팀의 주전급 선수 상당수가 크고 작은 부상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빠지고, 수개월 동안 부상 치료와 재활로 몸을 만들었다가 V리그가 시작되면 다시 멀쩡한 선수처럼 경기에 올인을 한다. 그리고 V리그가 종료되면 또다시 후유증이 시작되고, 대표팀에 들어가도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부상과 재활을 이유로 아예 대표팀에서 빠지는 선수가 다수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문제는 배구 팬과 배구계 인사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끈임없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한국배구연맹(KOVO)과와 프로구단들은 전혀 개선을 하지 않았다. 방송사 중계권료 등 '돈벌이'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감독들의 선수 훈련과 체력 관리 시스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인 감독을 경험한 선수들은 예외 없이 "외국인 감독과 국내 감독의 훈련 방식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감독, '외국인 감독 비협조' 논란... 훈련조차 '부실'

대거 부상 이탈로 어렵게 세계선수권 대표팀을 구성했지만, 이후 진천선수촌 훈련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여자 프로팀의 국내 감독들이 지난 7월 초 세자르(45)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 발언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등 세자르 감독에게 불평·불만을 표출하면서 대표팀을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일부 국내 감독들이 '대표팀 소집훈련 선수를 14명으로 줄여달라', '직접 구단에 와서 보고 뽑아라' 등의 요구를 했고, 세자르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또한 부상 선수 이탈로 추가 선발한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8월 KOVO 컵 대회가 끝난 뒤에야 진천선수촌에 보내주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대표팀이 10일 이상을 12명만 훈련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훈련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선수들이 자주 바뀌니 조직력을 다지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던 배구 팬들이 여자배구 팬 사이트 등에서 국내 프로팀 감독과 구단들을 향해 연일 비난하는 글을 쏟아내고, 세자르 감독을 옹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일본·중국·태국... 한국보다 강팀인데 준비도 총력전

한국 대표팀이 그렇게 비틀거리는 사이에 유럽 등 배구 강국들은 철저하게 세계선수권 준비를 진행했다. 한국보다 더 빨리 대표팀 소집훈련에 돌입했고, 주전급 선수도 대부분 합류했다. 

일본, 중국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총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대표팀 소집훈련 인원에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였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일본과 중국 모두 해외 전지훈련까지 세계선수권 최종 엔트리인 14명보다 많은 16명을 데리고 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회 개막 하루 전인 23일 14명을 최종 확정했다. 마지막까지 고르고 골라 최상의 멤버로 임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태국 대표팀도 기존의 주전 선수가 단 한 명도 부상 이탈 없이 전원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대표팀에서 손발을 맞춰왔다. 더군다나 지난 시즌부터는 주전 선수 대부분이 터키 리그, 일본 리그 등 해외 리그로 진출해서 맹활약했다. 

팬들은 이번 세계선수권의 부진을 놓고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하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프로팀 감독과 프로구단, KOVO 등 국내 배구계는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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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세계선수권 여자배구 세자르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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