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대표팀 주장 박정아(한국도로공사)

여자배구 대표팀 주장 박정아(한국도로공사) ⓒ 박진철 기자

 
한국 여자배구가 2024 파리 올림픽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여정을 앞두고 있다. 오는 24일부터 네덜란드와 폴란드에서 열리는 '2022 여자배구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현재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1일 밤, 해외 전지훈련을 위해 불가리아로 출국한다. 불가리아 대표팀과 4차례 친선 경기를 갖고, 마지막 전력 점검과 보강을 할 예정이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배구는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랭킹 포인트'를 최대한 많이 쌓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남자배구가 세계랭킹이 낮아 파리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여자배구도 위기 국면이기 때문이다. 8일 현재 한국의 세계랭킹은 남자배구 35위, 여자배구 2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8월 1일부터 대회 개막까지 약 55일의 소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남자배구 대표팀과 똑같은 기간 동안 소집훈련을 하고 있는데도 기류가 달랐다. 대표팀 차출 논쟁과 부실한 훈련 등으로 우려가 적지 않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현재 어려움에 처한 것은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우선 대표팀 선수 구성 면에서 이번 세계선수권 출전 팀 24개국 중에서 가장 변동 폭이 크다.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34·192cm)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인데, 양효진(33·190cm), 김수지(35·188cm)까지 장신 트리오가 모두 함께 은퇴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아 있는 주전급 선수들마저 상당수가 부상 등의 이유로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하차했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 4강 신화 멤버 12명 중 박정아, 염혜선, 표승주, 박은진 4명만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그야말로 '극단적이고 강제적인 세대 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도쿄 4강 신화 멤버, 4명만 남았다... 다른 주전들도 '부상 하차'

대표팀과 프로구단의 협조 관계도 균열이 생겼다. 일부 여자 프로팀 감독이 지난 7월 초 세자르(45)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 발언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등 국내 감독과 프로구단이 세자르 감독에게 불평·불만을 표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표팀 감독이 선발한 선수에 대해 일부 국내 감독이 '직접 구단에 와서 보고 뽑아라', '소집훈련 선수를 14명으로 줄여달라' 등의 요구를 했고, 세자르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부상 선수 이탈로 추가 선발한 대표팀 선수들은 KOVO 컵 대회가 끝난 뒤에서야 진천선수촌에 보내주는 일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10일 이상을 12명만 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훈련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그러자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던 배구 팬들이 발끈했다. 여자배구 팬 사이트 등에서 팬들은 국내 프로팀 감독과 구단들을 향해 연일 비난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 소속팀 선수가 대표팀에 적게 차출되도록 하기 위한 비협조적 태클, 외국인 감독을 무시하고 길들이려는 꼰대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KGC인삼공사처럼 대표팀 차출 선수가 많은 구단을 향해서는 팬들조차 미안해 할 정도로 지지와 동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후 국내 감독들의 세자르 감독을 향한 인터뷰가 잠잠해지면서 논란은 다소 가라앉았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 국내 감독들을 향한 불만과 불신이 더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지난 7월 VNL 전패 당시에도 배구계 안팎에선 급격한 국제경쟁력 추락의 핵심 원인으로 김연경 부재와 함께 국내 감독들이 주도하는 V리그가 외국인 선수 몰빵 배구를 주로 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았었다.

외국인-국내 감독 갈등 '발목'... 팬들, '국내 감독 비난'도 커져

문제는 한국 여자배구에게 '안타까운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여자배구가 처한 현실, 그리고 다른 배구 강국들의 세계선수권 대회 준비 상황을 비교해 보면, 우려스러운 대목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다음으로 세계랭킹 변동폭이 큰 대회이다. 때문에 모든 배구 강국들이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고 여자배구 프로 리그를 운영하고 있는 튀르키예(터키) 대표팀은 한국 대표팀보다 더 빨리 소집훈련을 시작했고, 훨씬 강도 높게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다.

튀르키에 대표팀은 지난 7월 17일 VNL 3위 결정전을 치르고 난 뒤, 대표팀 선수들에게 휴식을 단 10일밖에 주지 않았다. 그리고 7월 27일에 곧바로 세계선수권 대표팀 소집훈련에 돌입했다. 

대표팀 주장인 에다(35)는 지난 8월 6일 튀르키예 배구연맹(TVF)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우리 대표팀은 7월 27일부터 세계선수권대회 준비를 시작했다"며 "강렬하고 힘든 훈련 캠프 기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대표팀 훈련 캠프를 진행하고, 그곳에서 친선 경기를 할 것"이라며 "우리는 더 열심히 훈련해서 가장 준비된 방식으로 세계선수권에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폴란드 대표팀도 한국보다 빠른 7월 27일 세계선수권 소집훈련에 돌입했다. 이후 독일, 불가리아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하는 등 타이트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편, 유럽 여자배구 강호인 이탈리아, 세르비아, 터키, 폴란드 4개국은 오는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세계선수권 준비 친선 대회'까지 별로로 개최한다.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 세계선수권 총력전... '놀라움과 충격'
 
 세자르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세자르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 박진철 기자

 
일부 국내 감독과 배구계가 롤 모델로 여기고 있는 일본 대표팀의 세계선수권 준비는 과연 어떨까. 유럽 강호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놀라운 대목들이 훨씬 많았다.

일본 대표팀은 한국보다 일주일 빠른 7월 24일부터 세계선수권 소집훈련에 돌입했다. 더 놀라운 건, 대표팀 소집 인원이다. 한국 대표팀이 처음 소집했던 16명보다 3명이나 많은 19명을 소집했다. 그리고 지난 8월 대표팀 선수 19명을 A, B 두 팀으로 나누어 자체 청백전 형식의 대회를 4차례나 개최했다. 청백전이지만, 정식 대회처럼 일반 경기장에서 관중이 입장한 가운데 경기를 치렀다.

그뿐이 아니다. 해외 전지훈련도 한국보다 10일 먼저 떠났다. 일본 대표팀은 지난 8월 30일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거기에서 최근 2차례 친선 경기를 가졌다. 이후 7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올림픽 프리 대회'에 출전한다. 그리고 다시 20일에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네덜란드로 입성한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일본 대표팀은 해외 전지훈련까지 세계선수권 최종 엔트리인 14명보다 많은 16명을 데리고 갔다. 때문에 2명의 선수는 세계선수권에 출전도 못 하고 중간에 일본으로 귀국하거나, 경기장 관중석에서 지켜만 봐야 한다. 세계선수권 대회 개막 직전까지 고르고 골라 최상의 멤버로 임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렬한 것이다.

일본 대표팀의 세계선수권 준비 상황을 살펴보면, 한국 대표팀의 상황이 오버랩되며 서글픈 생각마저 스며든다. 일본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국내 감독과 배구계 인사들이 왜 대표팀 훈련 방식에 대해선 '정반대의 요구'를 세자르 감독에게 하는 지도 의문이다. 지난 VNL에서 1승도 거두기 힘들 정도로 약해진 한국 여자배구계가 취하고 있는 자세라고 하기에는 더욱 난해하다. 

대표팀, 이젠 국가 위한 희생 아니다... '최고 기회'의 장

장성호 프로야구 해설가는 지난 8월 29일 KBSN SPORTS <야구의 참견 시즌2> 프로그램에 출연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는 "국제대회 성적이 KBO 리그의 흥행과도 연관된다는 것을 저는 여자배구를 보면서 참 많이 느꼈다"며 "그래서 (야구 대표팀도) 한국 야구의 흥행을 이끌 수 있는 정말 사명감을 갖고 내년 WBC 대회를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기 어려운 멘트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 대표팀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그런 사고가 바로 시대착오다. 우리는 지금 하계, 동계 올림픽이 끝난 이후 대중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기업 CF 광고를 휩쓸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들이 대표팀을 위해 투혼을 불사르며 희생한 선수들에게 반드시 '큰 인기'로 보상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하다. 객관적 전력만 봐도 한국 여자배구는 이번 조별 예선 B조의 6개 팀 중 최약체다. 세계랭킹도 가장 낮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투혼으로 거둔 승리는 대중을 감동시킨다. 불완전했지만, 그동안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어떤 변화된 경기력을 보여줄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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