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에 방영된 MBC <피디수첩>은 '아베, 총격범 그리고 통일교' 편을 통해 아베 신조 피격과 통일교의 관계를 다루면서 이 교단의 모금방식 중 하나를 조명했다. 최근 일본 언론에서도 거론된 이 방식은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죄의식과 관련을 갖고 있다.
 
 MBC <피디수첩> '아베, 총격범 그리고 통일교' 편.

MBC <피디수첩> '아베, 총격범 그리고 통일교' 편. ⓒ MBC

 
방송 시작 23분 뒤에 아기와 함께 등장하는 26세의 야마다씨(가명, 전 통일교 신자)는 자신의 부모님이 통일교에 헌금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교주가 그렇게 하라고 해요. 재산이 전부 없어질 정도로 일본인은 헌금해야 한다고요"라고 말한다.
 
"헌금해야 한다고요"라고 하지 않고 "일본인은 헌금해야 한다고요"라고 했다. "왜 일본인은 그렇게 해야 하나요?"라고 취재진이 묻자 야마다 씨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이 과거에 한국을 점령해서 메시아가 있는 나라를 욕되게 했으니 계속 사죄해야 하고 통일교에 돈을 내야 한다는 거죠."
 
방송이 26분을 경과할 때는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가 통일교 경전인 <원리강론>을 펼쳐 보여주면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본, 이탈리아 이런 것은 사탄 편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죠"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일본에 있는 통일교 신자들이 그동안에 일본이 지은 죄를 갚기 위해서 한국에, 한국이라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통일교에 헌신해야 된다는 명분으로 착취가 이루어진 거죠"라고 말한다. 뒤이어 방송 진행자는 "군국주의 시절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죄의식, 바로 이 점을 헌금의 명분으로 강조한 겁니다"(32분)라고 해설한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자민당 극우세력은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라며,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한국인들을 겨냥해 혐한 정서를 부추겼다. 그러면서도 그들 상당수는 일본의 죄의식을 헌금과 연결하는 통일교의 자금과 조직에 힘입어 참의원이나 중의원 선거를 치렀다. 통일교와 관련된 의원이 112명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일본 극우세력은 대중 앞에서는 '일본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일본의 유죄'를 근거로 헌금을 모으는 통일교와 관련을 맺었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극우세력의 진정한 의도가 대중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승승장구하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이 갑자기 떨어진 데에는 그 같은 이중성에 대한 대중의 환멸감도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해지는 우경화, 일본인의 죄의식
 
 MBC <피디수첩> '아베, 총격범 그리고 통일교' 편.

MBC <피디수첩> '아베, 총격범 그리고 통일교' 편. ⓒ MBC

 
갈수록 심해지는 우경화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은 더 악화되고 혐한 여론도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이 한국에 상처를 줬다는 역사적 사실만큼은 일본인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기 힘들다. 그런 역사를 근거로 민족적 우월감을 느끼는 일본인들도 많겠지만, 가해자 집단에 끼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양심의 가책 혹은 미안함 내지 불편함을 느끼는 일본인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1982년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인해 한일관계가 다소 불안정할 때인 1985년 8월이었다. 이때 일본의 해외 경협 책임자가 미국 신문에 기고한 글이 한국인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그달 9일자 <동아일보> 4면 우단 기사는 "일본의 해외경제협력기금 책임자인 호소미 타카시가 8일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일반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과거 한국 식민지 지배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을 펴 교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8·15가 임박한 시점에 쓴 이 글에서, 호소미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과 관련해 일본 국민과 일본 지도층을 구분했다. "일본의 한국 지배 역사에 대해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죄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다고까지 말하지 않겠으나, 일반 국민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호소미는 정부 지도자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런 글은 식민지배 문제에 대한 일본 대중의 감수성이 극히 희박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제국주의 국가범죄에 대한 저항심은 일본 피지배층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중국·오키나와 등지뿐 아니라 일본 대중에게도 명확한 피해를 끼쳤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일본 대중이 아무런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정말로 그렇다면, 통일교가 일본인들의 죄의식 내지 속죄의식을 자극하고자 시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뤼순(여순)형무소에서 만난 현지의 일본 헌병 치바 도시치는 평생 동안 안중근을 위해 향을 사르며 명복을 빌었다. 그의 이야기는 사이토 다이켄의 <내 마음의 안중근>에 소개돼 있다.
 
치바 도시치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은 일본인들의 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03년에 <일본학> 제22집에 실린 김광림 전 한국시인협회장의 논문 '일본 현대시에 나타난 한국·한국인상'에서도 그런 시들을 접할 수 있다.
 
이 논문에 나오는 일본 시인 사이토 마모루는 1924년 식민지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 용산에서 성장했다. 스물한 살 때까지 한국에 살았던 그는 용산 바로 남쪽의 한강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한강에 뗏목이 다니고 여성들이 빨래하는 풍경을 서두에서 보여주는 '한강'이라는 이 시는 주인공이 강을 향해 조약돌을 던진 뒤의 상황을 이렇게 보여준다.
 
뜻밖의 비명이 일고
모랫벌에 발이 빠지면서 여자가 달려왔다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피묻은 손이 내밀어졌다
나는 이 나라의 말을 알지 못했다
빨래 방망이를 내던지고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일어섰다
나는 사과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하지 않았다.

 
시인은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이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라는 점은 인식했다. 조약돌을 던진 뒤에 외침이 들리고 피묻은 손이 나타나고 한국인들이 일어섰다. 사과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크게 보면 제국주의 침략에 책임이 있다고 봤던 것이다.
 
위 논문에는 2001년에 일본 월간지 <시와 사상>에 실린 사쿠라이 데츠오의 시도 소개돼 있다. ,'나는 침략자'라는 이 시에는 주인공의 아내와 장인이 등장한다. 수력발전 기사인 장인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압록강 수풍댐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장인은 주인공의 아내에게 "너는 침략자의 딸"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의 아내는 주인공에게 "침략자의 딸을 보듬은 당신은 침략자"라고 말했다. 평범한 자신들도 한국에 상처를 주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일본인들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문학 작품이다. 그런 의식이 상당했기에, <피디수첩>에 소개된 모금 방식도 고안될 수 있었으리라 볼 수 있다.
 
지배층이 아닌 일본 대중은 제국주의 착취의 가해자로 동원되어 부분적인 수혜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엄연한 제국주의 피해자였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일차적 착취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대중의 심리 속에는 한국 대중과 동병상련을 느낄 여지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지배세력의 행동대인 일본 극우세력이 대중을 상대로 끊임없이 선전전을 펼치는 것은 양국 대중 사이의 연대의식 형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식민지배 역사를 지우려는 극우세력의 힘이 강해지고 있어, 일부 일본인들의 심리 저변에 깔린 '한국에 대한 미안함'이 제대로 발현되기 힘들다. 하지만 양국 대중이 극우세력의 공세로부터 진짜 역사를 잘 지켜낸다면, 그런 미안함이 올바른 한일관계 수립에 기여하는 날이 오게 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아베 신조 피격 일본 통일교 피디수첩 일제 식민지배 일본 자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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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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