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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출근해서 회사에 머무는 기간은 대략 10시간 가까이 된다. 거기다 야근까지 한다면 4~5시간을 더해야 한다. 하루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매일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젊고 생생했던 20, 30대 때만 해도 회사 내에서의 목표가 뚜렷했었다. 성공하고 싶었다. 빨리 승진해서 과장, 차장, 부장 등 높은 곳으로 가고픈 열망으로 가득 찼다. 삶을 갈아 넣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어느새 1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과연 나는 기대했던 것만큼 성취했을까. 그 질문에 답은 안타깝게도 '아니오'이다.

승진하면 잠깐의 기쁨 뒤에 또다시 그 역할만큼의 일이 몰려왔다. 총명함은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과 비례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밑에서 맹렬하게 치고 오는 후배의 기세와 위에서 누르는 선배의 권위 사이에 끼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지금쯤 되어보니 알겠다. 내가 앞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나. 직장 생활에서의 낙은 없는 것일까. 그러면 억울할 텐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불쑥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바로 직장 동료였다.

회사에 다니며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모두가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직업 특성상 3년 정도면 다른 근무지로 떠나야 했기에 오랜 기간 정을 쌓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마음 맞는 몇몇과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관계를 맺고 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서 소주 한 잔 하며 털어낼 수 있고, 일 년에 한두 번은 먼 산을 함께 오르며 인생의 고민을 나눈다. 가족끼리도 친해져 시간을 맞추어 휴가를 함께 떠나기도 한다. 흔히 사회에서 형성된 관계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깊은 사이가 되었다.

직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중 A 선배와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다. 입사하고 어리바리하던 시절 선배를 처음 만났다. 직급 차이도 있고, 나보다 12살이나 많았기에 처음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런데 함께 출장 다닐 일이 생기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이미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였다. 나도 글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출장 가는 차 안에서 글과 책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선배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남들처럼 승진이나 출세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었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채 2년이 안 되었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도 꾸준히 연락하며 소통하고 지냈다. 최근엔 나도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선배에게 소식을 전했고,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선배와 함께 춘천 공지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 공지천 자전거 여행 선배와 함께 춘천 공지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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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을 돌다가 잠시 아름다운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 공지천 자전거 여행 공지천을 돌다가 잠시 아름다운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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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춘천으로 발령 난 선배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반나절 동안 공지천을 크게 돌고 난 후 뒤풀이로 술 한 잔 하며 회포를 풀었다. 처음 만났을 때 선배는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는데, 내년이면 벌써 퇴직이었다. 선배는 미리 퇴직 후 준비도 해 놓았다.

숲 치유사란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관련 대학 과정을 이수했고, 지금은 인근 대학교에서 보수 교육을 듣고 있었다. 나도 선배를 통해 관심이 생겼고, 열심히 정보를 얻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선배는 나중에 한적한 곳에 자리 잡으면 꼭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러겠다고 답하며 선배와의 인연은 회사를 떠나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또 다른 동료 B와는 6년 전 본사에서 근무하며 알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고, 나이도 한 살 차이여서 편했다. 처음 본사에 근무하며 생소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답답한 마음에 점심시간에 걷기 시작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동료 B도 따라왔다. 둘이 함께 걸으며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로 업무적으로도 난관에 봉착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여서 가족 모임을 몇 번 했더니 친해져 일 년에 한두 번은 함께 여행을 다녔다. 가족들끼리도 교류하게 되니 회사를 떠나 집 안 속사정도 훤히 알게 되었다. 아내들은 틈틈이 아이들 학업에 관한 정보도 주고 받고 고민 거리도 나눴다.

본사 생활을 마치고 각자 다른 근무지에서 있다가 2년 전 또다시 본사에서 만났다. 주변 사람들이 실과 바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붙어 다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걸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제는 알고 지낸 지 10년 가까이 되어 표정만 보아도 그날의 기분을 맞출 정도가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 모닥불에 불을 피우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 캠핑과 모닥불 저녁을 먹은 후 모닥불에 불을 피우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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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사정이 생겨 다른 근무지로 가게 되었지만 지금도 수시로 연락을 한다. 최근에는 둘이서 1박 2일로 캠핑도 다녀왔다. 그곳에서 직장, 가족, 미래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밤 늦도록 했다. 

회사에서의 연차나 처한 상황도 엇비슷하니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반갑고 좋지만, 때론 꺼낼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동료 B와는 그렇지 않으니 친구보다도 편할 때가 있다. 남은 회사 기간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좋은 인연, 퇴직 후에도 이어갔으면

직장 생활 초기엔 직장에서의 관계가 친구처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뜻이 맞는 이가 분명 있었다.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동료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어떤 일인들 두려우랴. 그들이야말로 힘이 되는 든든한 존재요, 퍽퍽한 직장 생활의 진정한 낙이었다.

그저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좋은 인연 계속 이어가길 바라고, 퇴직 후에도 만나며 정을 쌓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중년, #친구, #직장, #낙,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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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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