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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초벌, 1961년 봄, 쾰른(악보) 첫 부분 *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 물이 흐른다. 낡은 괘종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 테이프 녹화기가 있다. 메조 피아노, 3분마다 3초가량 다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 (1) 종소리, 벨소리(불교 기독교?) (2) 2000hz 1/10sec. 정현파 (3) 프랑스 라디오 TV(프랑스 여자 아나운서) (4) 쾰른 역의 안내 방송 (5) 2000hz 1/10sec. 정현파 (6) 새소리 (7) 이탈리아 여자 아나운서(알레그로 모데라토…) '짧은 TV(감기약 광고) (9) FFF(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의 포르티시모 부분) (10) 독일 TV 뉴스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 (11) 종소리, 벨 소리(불교?) (12) 젊은 이탈리아 여자 기도 소리 (13) <여러분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14) 2000hz 1/10sec. 정현파 (15) TV 게임 프로그램의 웃음소리. 이런 텍스트 악장이 15개 더 있다. 물론 중간중간에 모두 휴식 시간도 있다.
 백남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초벌, 1961년 봄, 쾰른(악보) 첫 부분 *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 물이 흐른다. 낡은 괘종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 테이프 녹화기가 있다. 메조 피아노, 3분마다 3초가량 다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 (1) 종소리, 벨소리(불교 기독교?) (2) 2000hz 1/10sec. 정현파 (3) 프랑스 라디오 TV(프랑스 여자 아나운서) (4) 쾰른 역의 안내 방송 (5) 2000hz 1/10sec. 정현파 (6) 새소리 (7) 이탈리아 여자 아나운서(알레그로 모데라토…) "짧은 TV(감기약 광고) (9) FFF(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의 포르티시모 부분) (10) 독일 TV 뉴스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 (11) 종소리, 벨 소리(불교?) (12) 젊은 이탈리아 여자 기도 소리 (13) <여러분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14) 2000hz 1/10sec. 정현파 (15) TV 게임 프로그램의 웃음소리. 이런 텍스트 악장이 15개 더 있다. 물론 중간중간에 모두 휴식 시간도 있다.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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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중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이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 2층에서 6월 19일까지 열린다. 백남준의 1961년 작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국내 최초로 시연했다. '완벽한 최후의 1초'는 절호의 순간을 생생하게 연주하라는 뜻인가! 백남준은 1962년까지 작곡가였다. 실제로 그는 2001년 영국 '그로브 음악사전'에 작곡가로 등재되었다.

위 사진은 백남준 29살 때 작곡한 것이다. 이런 악보가 15개 더 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찾고 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런 지시문으로 어떻게 연주하고 어떻게 전시하라는 건가? 소리와 시각을 합친 1963년 첫 전시의 전주곡이랄까. 이건 괴벽스러운 아나키스트의 작품이다. 이걸 보여주면서 후배 작가들에게 불가능해 보여도 한번 도전해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올 베니스비엔날레(2022년 4월 23일~11월 27일) 한국관에 지금 김윤철 작가가 참여 중이다. 그는 전자음악으로 설치미술을 하는 백남준의 후손이다. 그의 출품작 '나선'이 이번 베니스 세계미술올림픽에서 백남준이 1961년에 고안한 아이디어를 멋진 키네틱 아트로 구현하고 있다고 본다면, 60년을 넘어 두 작가는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은 흐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한 '김윤철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나선(Gyre)', 한국 미술의 원형인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를 연상시킨다.
 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한 "김윤철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나선(Gyre)", 한국 미술의 원형인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를 연상시킨다.
ⓒ 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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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위 교향곡을 발표한 후, <음악의 신존재론(1963)>에서 "음악은 흐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청중을 충동질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험적 충격을 주는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화성학 위주의 서양음악의 룰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그의 이런 과격성은 이미 독일에서 소문났다. 그래서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신 야만인처럼 서구의 성상인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마구 부숴댔다. 첫 전시에서 'TV'를 도입했으나 일방형이라 이 마저 파괴했다. 그 대신 1974년에는 쌍방형 '인터넷'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이걸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라 불렀다.

백남준은 1958년 '슈타이네케 다름슈타트강좌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음악을 '무음악(a-music)'이라고 명명했다. 이건 기존 서양의 화성을 해체한 쇤베르크의 '무조성(a-tonal)'과도, 소음도 음악이라는 존 케이지의 '무작곡(a-composition)'과도 다르다고 했다. 
 
백남준은 1964년 일본 '스게츠홀'에서 7년 간 독일유학 시절 시연한 과격한 퍼포먼스의 일부를 재현했다. 백남준은 스스로 자신을 '문화깡패'라고도 했다. 백남준은 이런 행위를 일종의 수행이자 명상, 더 나아가 몸으로 하는 연주로 본 것 같다.
 백남준은 1964년 일본 "스게츠홀"에서 7년 간 독일유학 시절 시연한 과격한 퍼포먼스의 일부를 재현했다. 백남준은 스스로 자신을 "문화깡패"라고도 했다. 백남준은 이런 행위를 일종의 수행이자 명상, 더 나아가 몸으로 하는 연주로 본 것 같다.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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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무음악' 개념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다. 이런 계보는 한국, 일본, 독일에서 형성됐다. 백남준은 한국에서 피아노는 신재덕 선생(전 이화여대 음대학장), 작곡은 이건우 선생에게서 배웠다. 쇤베르크도 이때 접했다. 일본 유학파인 김순남 선생을 좋아했으나 직접 배우진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이다.

그러나 김순남은 경향파 지식인으로 월북 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 전까지 묻혀 있었다. 백남준은 그를 존경해 1992년 <객석> 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제목은 "한국의 씨받이, 비운의 천재 작곡가 김순남" 그중 일부를 아래 소개한다.

"만약 김순남이 순조로운 창작 생애를 보낼 수 있었다면 세계의 극소수 클래식 작곡가가 됐을 걸 [...] 이런 천재는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른다. '힌데미트'가 말하길 "작곡가는 5천만 명 중에 하나쯤 태어난다"고. 핀란드에서 한 사람 나왔다. '시벨리우스'다. 그로 인해 핀란드가 얼마나 이익을 봤는가! 하늘은 우리에게 김순남을 주었지만 그를 또다시 뺏어갔다."
 
2019년 5월, 독일에서 백남준 탐방취재 중, 백남준이 1956년에 공부했던 뮌헨대 예술사학과 강의실을 찾았다
 2019년 5월, 독일에서 백남준 탐방취재 중, 백남준이 1956년에 공부했던 뮌헨대 예술사학과 강의실을 찾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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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에는 또 백남준의 독일 유학과도 관련 있다. 그가 처음 공부한 뮌헨대는 노벨상을 42명 배출한 명문이었고, 그의 지도교수는 게오르기아데스(T. Georgiades)도 유명한 음악이론가였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 대학이 너무 보수적이라며 뛰쳐나왔다. 왜일까?

조가연(조선대)의 백남준 석사 논문을 보면, 백남준은 원래 쇤베르크의 제자인 안톤 베베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독일 음악계는 자신의 유파를 선택하면 다른 유파에 대한 관용이 떨어지는 경직성이 있다고 봐 여길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다음 해 프라이부르크대로 옮겼다. 여기서 지도교수로 W. 포르트너(Fortner)를 만났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마저 물리쳤다. 한번은 교수가 백남준에게 작품을 보라고 하자, "제 작곡은 피아노 부술 때 내는 소리"라며 가방에서 도끼를 꺼냈다. 그러자 교수는 그에게 전자음악의 개척지인 쾰른방송국(WDR)에 가보라며 추천서를 써줬다.

피아노 부수고, 넥타이 자르고... '백남준 스타일' 
 
존 케이지는 일본의 '선(Zen)'이론가이자 선생인 "스즈키"로부터 넥타이를 선물 받는다. 그런데 백남준은 일본 '선'이 자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며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그 넥타이를 자른 것인가, 아니면 스승마저 넘어서려는 도발인가?
 존 케이지는 일본의 "선(Zen)"이론가이자 선생인 "스즈키"로부터 넥타이를 선물 받는다. 그런데 백남준은 일본 "선"이 자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며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그 넥타이를 자른 것인가, 아니면 스승마저 넘어서려는 도발인가?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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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전자음악 거장 슈톡하우젠를 만났다. 백남준은 이렇게 대학보다는 '국제 신음악 여름강좌'에 관심이 더 많았다. 1958년에는 마침내 앞에서 언급된 존 케이지를 만났다. 그건 백남준 생애를 전후로 가르는 대사건이었다. 그가 백남준에게 준 영향은 지대했다. 서양인인 그는 선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악보가 아니라 '주역'으로 작곡했다.

백남준은 그에 대한 오마주 곡을 1959년 뒤셀도르프(갤러리 22)에서 발표했는데 그때 그는 불참했고, 그러나 1960년 쾰른에서 2차 오마주 곡을 발표했을 때는 참석했다.

이 제목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이때 파란이 일었다. 백남준은 관객을 공격하고 피아노 2대 부수더니 마침내 존 케이지의 넥타이마저 잘랐다. 이 사건이 함의하는 것은 뭔가? 누구한테도 배울 순 있지만, 그마저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그는 이런 각오 없이 서구에는 없었던 이런 교향곡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곡의 콘텐츠를 보면 유럽식과 아시아식이 반반이다. 그러나 놀랄 게 없다. 이게 백남준 스타일이다. 그는 늘 유럽과 아시아 문화를 골고루 배치했다. 그의 연주에는 감초처럼 과격한 액션이 들어간다. 그래서 지시문에 나무, 자갈, 금속, 돌, 흙을 전시장에 가져다 발길질하라고 명했다. 어쨌든 관객이 전시에 참여하라는 강권이다.
 
작품 해설은 지면상 생략. 위 왼쪽부터 "김다움, 송선혁, OC.m, 지박, 계수정, 문해주, 권용주, " 작품을 이미지 합성
 작품 해설은 지면상 생략. 위 왼쪽부터 "김다움, 송선혁, OC.m, 지박, 계수정, 문해주, 권용주, " 작품을 이미지 합성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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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관장은 이번 90주년 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그럴 만하다. 접근이 어려운 전시였다. 그런 악조건에서 2층 전시는 한누리 학예연구사가 능숙하게 기획했다. 계수정, 권용주, 김다움, 문해주, 송선혁, OC.m, 지박 등 7명 작가와 6명의 낭독자가 참가했고, 이희경 교수, 정세랑 교수는 텍스트로 전시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1층에선 이수영 학예사가 백남준 대표작을 모아 연 전시가 9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이 또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의 일환이고, 전시명은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이다.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이라는 백남준 말에서 따왔다. 신매체가 나올 때마다 백남준이 그걸 어떻게 비디오 아트에 적용했는지 큐레이팅했다. 그 자신이 진정한 아방가르드임을 자부하듯 "나의 (45살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라는 LP도 남겼다.
 
백남준 I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 1980. 백남준은 작품을 작곡으로 봤기에 제목에 음악용어가 들어간다
 백남준 I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 1980. 백남준은 작품을 작곡으로 봤기에 제목에 음악용어가 들어간다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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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1층 전시에서 꼭 봐야 할 작품이 있다. 제목은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다. 이걸 백남준이 낚시하는 걸로 보면 큰 착오다. 1981년 백남준이 뒤셀도르프시, 호프가르텐 공원의 라인강 언저리에서 리모컨 무선조종기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화창한 날에, 라인강의 물결을 세라! 바람 부는 날에, 라인강의 물결을 세라!"는 백남준의 시가 있는데, '라인강 물결'이 '바이올린 선율'과 합쳐지면 어떤 화성이 되는지를 상상한 작품이랄까. 확장된 음악으로 강물이 출렁이는 모습(sight)과 그리고 바이올린 등 주변 소리(sound)가 총체적으로 합쳐진다면 어떤 효과가 올지를 실험했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백남준아트센터 홈: https://njp.ggcf.kr/ 이번에 <백남준 비디오 서재> 등 그의 영상 아카이브도 공개

 


태그:#백남준, #김윤철, #존 케이지, #쇤베르크, #베니스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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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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