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일과 3일 양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가 열립니다. 상영작 장단편 6편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제주4.3 74주년을 맞아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마련한 '4.3과 친구들 영화제'는 신청 시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기자말]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웹포스터.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웹포스터. ⓒ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제주 4.3을 대표하는 영화는 명실상부 오멸 감독의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아래 <지슬>)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에 이어 2013년 1월  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드라마틱)'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지슬>. 

이에 힘입어 독립예술영화로서는 드물게 전국 14만 관객이 관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제주 4.3 관련 장편 극영화 자체가 희소하다는 점에서 '파란'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개는 다큐멘터리 장르로 소개돼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슬>의 등장은 확실히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 2018년 제주 4.3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두 번의 특별 상영에서도 <지슬>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2018년 당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제주 4.3 제70주년 특별상영: 끝나지 않은 세월' 기획전을,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는 '제주를 넘어, 4.3 영화특별전'(Beyond JEJU 4.3 Cinema Special)을 마련해 <지슬>을 포함해 각각 6편과 9편의 제주 4.3 영화를 상영한 바 있다. 

특히 당시 인디스페이스는 <지슬>을 비롯해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1996), 고 김경률 감독의 <끌나지 않은 세월>(2005), 오멸 감독의 <이어도>(2011), 임흥순 감독의 <비념>(2012), 이상목 감독의 로드다큐 <백년의 노래>(2017) 등을 통해 평소 만나기 힘든 제주 4.3 소재 영화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는 4월 2일과 3일, '포스트 <지슬>'에 해당할 제주 4.3 관련 소재 장‧단편 6편이 최근 홍대에서 재개관한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다. 이름하여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아래 4.3과 친구들 영화제).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제주 4.3 74주년 서울지역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마련한 '4.3과 친구들 영화제'는 <지슬> 이후 관객들과 만났거나 만날 예정인 4.3 관련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상영작의 면면을 보면, 장편은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소준문 감독의 <빛나는 순간>(2021), 임흥순 감독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9)을 상연한다. 

또 단편은 강희진 감독의 <메이‧제주‧데이>(2021), 변성진 감독의 <헛묘>(2021), 최진영 감독의 <뼈>가 관객들과 만난다. 4.3을 다룬 단편조차 흔치 않은 현실에서 장편영화들에 앞서 '4.3과 친구들 영화제'의 포문을 여는 해당 단편 3편은 제주 4.3을 어떻게 영상화했을까.  
 
<메이제주데이>의 경우 
 
 영화 <메이·제주·데이>의 한 장면.

영화 <메이·제주·데이>의 한 장면. ⓒ 씨앗AniSEED.

 
4.3 생존자들의 증언은 제주 4.3 역사는 물론 한국 인권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증언일 수밖에 없다. 제주에서는 십수년째 그런 증언대회를 개최 중이다. 제주 4.3 71주년이던 지난 2019년 6월 제주 4.3 생존자들은 UN 인권심포지엄에서도 증언에 나선 바 있다.  
 
지난 2020년 10월 제주4‧3평화재단은 이들을 위해 색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열린 '4·3 생존자의 삶과 치유 프롤로그展' 연속 전시 <어디에도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는 4.3 생존 할머니가 수년간 미술심리치료학 박사를 만나 본인이 겪은 4·3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한 내용을 통해 <제주 4.3 생존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미술치료> 책을 출판한 바 있다. 

4.3 생존자들이 본인의 아프고 슬픈 기억을 그림을 통해 치유하는 과정은 일반 관객들에겐 분명 낯설면서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장면이라 할 것이다. <메이‧제주‧데이>의 강희진 감독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2년 전 우연히 찾은 전시회에서 본 제주 4‧3의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학살 당시 아이의 기억에서 멈춘듯해 보였다. 현재는 노인이 된 70년 전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그려냄으로써, 제주 4‧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억의 세대 전승과 전달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제작하였다." 

강희진 감독의 제작 노트 중 일부다.  202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뉴스타파펀드' 첫 지원작으로,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 등 국내 유슈의 다수 영화제에서 상영된 <메이‧제주‧데이>는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적절히 결합시킨 매우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 생존자들의 증언은 4.3 관련 인물 다큐로 기능한다. 여기에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살아 숨 쉬는 애니메이션으로 되살아났다. 그 애니메이션은 생존자의 미시적 기억인 동시에 4.3이란 기억의 거대한 퍼즐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메이‧제주‧데이>는 4.3이란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 개인의 기억을 거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시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제주 전통 노래나 생존자들의 목소리 및 인물화가 겹쳐지면서 제주4.3은 물론 색다른 영화적 체험을 경험케 한다. 14분 조금 넘는 상영시간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며 제주4.3을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히 각인시키는 작품.     

<헛묘>와 <뼈>의 경우 
 
 영화 <헛묘>의 한 장면.

영화 <헛묘>의 한 장면. ⓒ 엥그리필름

 
4․3사건이 진정되니까 살아남은 친척들 사이에서 시신이라도 찾아서 장례를 치러야 될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칠성판을 만들고 학살터라는 정방폭포 위에 갔습니다. 가서보니까 뼈들이 다 엉켜져서 도저히 누구누구의 시신인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에 옷도 일부 흩어져 있고 하였지만, 이미 살이 삭아들어 뼈만 남아 있었지요. 우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어요. 그래서 시신은 못 찾았지만 비석이라도 세우고 해야 하지 않겠냐 해서 죽은 이들의 혼을 불러다 헛 봉분을 쌓고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한림에서 굿을 하고, 죽은 사람들이 저승에 가서 잘 살도록 길도 쳤습니다. 그 후 한 번 시신들이 있는 곳을 가 봤는데 그곳은 다 바뀌어 집들이 들어서 있었어요. - 제주4.3평화재단 4.3 아카이브 내 임문숙씨(남, 04년 79세, 동명리) 헛묘 관련 증언

1948년 당시 제주도 인구는 10만여 명. 그중 3만여 명이 희생됐다고 알려진 제주 4.3 희생자들의 시신을 다 찾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을 터. 가족들 시신을 찾지 못한 섬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헛 봉분이라도 만들어 고인의 넋을 기렸다고 한다. '헛묘'의 시작이다. 

지난 2020년 12월 개최된 중국 '닝보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 외국어단편영화상과 2020년 초 열린 제4회 한중국제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으로 영화 <헛묘>는 이 헛묘를 소재로 제주4.3 당시와 현재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배우 성지루가 연기한, 제주에서 벌초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봉삼. 선불을 제시한 어느 재일 교포의 의뢰가 들어오자 봉삼은 벌초를 할 외증조 할아버지의 묘를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하자 그 대안으로 헛묘를 세운다. 풍족한 사례비로 혼자 키우는 어린 딸 신비에게 스마트폰도 사주고 삼겹살 파티를 벌인 봉삼의 기쁨도 잠시. 의뢰인이 할아버지 묘를 찾아 제주도를 찾아오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헛묘를 둘러싼 해프닝은 결국 거대하고 슬픈 4.3의 역사를 어떻게든 관객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은 감독의 선의와 닮아 있다. 봉삼과 딸 신비를 4.3 유족인 의뢰인의 사연으로 전치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 어쩌면 <헛묘>는 가족드라마 장르 속에 제주4.3이란 어려운 소재를 따뜻하게 녹여 낸 것 자체로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장편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개봉을 앞둔 최희진 감독의 <뼈>는 제19회 부산독립영화제 초청부문, 제17회 전북독립영화제 온고을경쟁부문, 제12회 전북여성인권영화제 초청부문 등에 상영된 화제작이다. 

언뜻 <지슬>의 인상적인 장면을 연상시킬 만하다. 큰넓궤라 불리는 동굴 말이다. 실제 4.3 당시 주민들은 중산간으로 대피하면서 큰넓궤라 불리는 동굴에 장기간 숨어 지냈고, 군경에서 발각되고선 학살을 피할 수 없었다. 제주 안덕 동광마을 큰넓궤 등 실제 체험이 가능한 동굴 속을 기어들어가보면 4.3 당시 제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공감하게 된다. 

<뼈>가 그 동굴을 직접 시각화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슬>처럼 그 동굴에서 숨어 지내던 주민과 그를 발견한 경찰이 회상으로 등장한다. 그 회상의 실체적 주인공은 역시나 재일교포인 하루코이고, 그의 동행은 아버지가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 살다 4.3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에 동참 중인 동희다. 

<뼈>는 하루코가 동희에게 들려주는 부친의 이야기다. 4.3 당시 제주에서는 한마을에 친척처럼 살다 폭도와 경찰로 맞닥뜨린 주민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동굴에서 숨어 지내다 발각된 하루코의 부친과 산으로 도망친 동생을 찾아 나섰다가 동희 부친을 만나게 된 경찰도 바로 그런 4.3 당시 제주 주민들이 겪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현재와 과거를 부지런히 오가는 <뼈>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단편이란 한계 속에서도 4.3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심정적 거리를 좁히려는 영화적 노력이자 그 노력을 4.3을 모르는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려는 선의로 가득 찬 편지와도 같다. 그리 늦지 않게 당도한, 영화와 현실을 적절하게 매치시킨. 

'4.3과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이 세 편의 단편영화는 <지슬> 이후 나온 여러 단편 중 4.3 소재 영화의 최전선이라 할 만하다. 국내외 여러 유수 영화제를 통해 발굴되고 검증된. <지슬>을 잇는 또 다른 4.3 소재 관련 화제작이 나올 날이 멀지 않았다.      
 
 영화 <뼈>의 한 장면.

영화 <뼈>의 한 장면. ⓒ 필름다빈

 
덧붙이는 글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단편 섹션 <메이‧제주‧데이> <헛묘> <뼈>는 오는 2일 오후 4시 30분 인디스페이스(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상영됩니다. 상영 직후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과 영화 <재꽃> 하성태 작가의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무료 예매는 구글 폼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Plp9lkD65sFVI647Prhnt3b-hEWpp3E8MZZtQ7CtNKdVtiA/viewform 으로 진행 중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제주4.3 4.3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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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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