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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핵심 당사자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 나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 팔짱 낀 채 압수수색 항의하는 김웅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한 핵심 당사자인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 나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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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사주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김웅 의원은 지난 9월 13일 공수처의 의원실 압수수색을 끝으로 정치 무대에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김 의원은 <뉴스버스>의 첫 보도 이후 조금씩 말을 바꿨지만 마지막 기자회견(9월 8일)까지도 일관되게 고수한 입장이 있다. 총선 전후 자신한테 여러 제보가 쏟아졌고, 자신은 선거운동에 바빠서 당에 그대로 전달만 했고,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게서 자료를 받았을 수 있었지만 많은 제보 때문에 특별히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

검사를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새로운보수당 1호 인재로 정치권에 진출하고, 다시 한 달 만에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해서 쉽지 않은 선거구에 전략공천된 뒤 선거운동에 진력하는 후보에게 제보가 집중됐다면 하나하나 살피기 힘들다. 하지만 접수된 제보가 몇 개 없었고, 그 제보가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방대한 자료로 구성됐다면 기억 못한다는 게 되레 이상하다. 그런데 그의 침묵 이후 등장한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증언은 김 의원이 강조하는 '제보폭주론'과 상치된다.  

2020년 4월 초 총선 운동기간에 발생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서 김웅 의원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은 '단순 전달자'라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공동정범'이라고 간주한다. 아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고발 사주 의혹'이 한바탕 논란이 된 뒤 화천대유 등 또 다른 이슈가 불거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사량이 적어 여론의 관심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검찰이나 공수처가 고발사주 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다시 정국의 화두가 될 수 있다.

검사 김웅과 정치인 김웅
 
책 <검사내전> 표지.
 책 <검사내전> 표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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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김웅 의원이 검사 시절에 쓴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에 고발 사주 의혹을 푸는 데 참조할만한 사례가 있다. 그는 '검사 생활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과 다르다'라는 제목으로 한 장을 할애해 자신의 추리력을 자랑했다.

사례를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 회사에서 15장짜리 중요한 문서가 그 회사 건물에서 복사돼 유출됐다. 복사본은 회수됐으나 복사한 자는 알 수 없었다. 근무 직원은 1000명, 설치된 복사기는 15층 건물의 양쪽 끝에 한 대씩 총 30대, 복도 중간에 복도 양측을 감시하는 CCTV가 설치돼 있으나 얼굴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성능이었다.

부장검사는 검사들을 불러 6시간 안에 복사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들 30대의 복사기 중 어느 것에서 복사됐는지 알 수 없고 6시간 안에 모든 CCTV 자료를 확인할 수는 없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김웅 검사는 부장이 가지고 있는 복사본을 본 뒤 1시간 만에 문제를 해결했단다. 어떻게?

김 검사는 복사지에 나타난 미세한 줄에 착안해서, 30대 복사기 모두 복사를 해오게 한 뒤 줄이 일치하는 복사기를 찾아냈다. 그 다음은 그 복사기를 사용한 수많은 사람 중에서 범인을 특정하는 것. 여기엔 그 층에 설치된 CCTV 자료를 이용했다. 복사를 하려면 반드시 빛이 필요하다. 15장의 문서를 복사하려면 15번 불빛이 지나가야 한다. CCTV 화면에서 15번의 불빛이 비치는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런 문서유출사건 수사 속 김웅 검사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푼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지 않을까.

김웅 후보에게 전송된 100장의 사진은 인쇄한 종이를 촬영한 것이다. 인쇄물의 내용으로 볼 때 지아무개씨의 실명 판결문 외에는 전송 당일이나 하루이틀 전에 출력한 것이다. 사진 파일은 한 번이 아니고 세 차례로 나눠서 전송됐다. 전송된 사진이 수신자가 보고 문서작성을 위한 재입력이 가능할 정도의 해상도라면 디지털포랜식 기법으로 프린터의 미세한 특징을 잡아낼 수도 있다. 만약 대검찰청 청사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라면 출력 시점에서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프린터의 기계적 특성은 달라졌겠지만, 프린터 서버에 기록된 사용 시간, 출력 매수, 대검이 보유한 출력 문서 보관철, 출력물의 스캐닝 파일 등을 갖고 누가 출력했는지 특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고발 사주 의혹 속 김웅 의원은 문서유출사건의 김웅 검사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한 기자회견의 한 장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뉴스버스>의 최초 보도 시점엔 세세한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고발 사주'에 공모공동정범이 아니라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을 법하다. 그러나 김 의원은 기억을 복구하긴커녕 기억이 안 나는 이유와 변명을 만들기에 급급한 모양새였다.

제보폭주론은 정녕 사실일까...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야당을 통한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임을 밝힌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0일 오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야당을 통한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임을 밝힌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0일 오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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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의원은 21대 총선 기간 중에 자신에게 제보가 몰렸고 당에 계속 전달했다는 주장을 당의 '창구'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제보자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반복했다. 그런데 정작 조 전 부위원장은 총선 기간 중에 김웅 후보가 자신에게 전달한 자료는 '고발 사주' 한 건밖에 없었음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했다. 조 전 부위원장이 김웅 의원의 '제보폭주론'을 거짓이라고 반박한 데 대해 김 의원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조 전 부위원장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제보폭주론이 진실일 다른 가능성도 있다. 김웅 의원이 다른 제보들을 별도의 당 내 통로로 전달했다면 제보폭주론은 거짓이 아니다. 그런데 김 의원은 후보 시절에 조 전 부위원장으로 '창구 단일화'를 했다는 사실을 이미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조성은씨가 스스로 제보자임을 밝히기 전에 여러 인터뷰에서 제보자를 특정할 수 있다면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신은 선거 시기에 당에 제보를 전달하는 '단일한' 창구만 있었으며, 그 '창구'를 부장검사 시절에 만났는데 텔레그램에 김웅이 부장검사로 표시된 것으로 볼 때 명함 소지자, 자료 전달자, 언론 제보자가 동일인임이 확인된다고 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김웅 의원과 조성은 전 부위원장,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조 전 부위원장은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진위가 밝혀질 것이라고 하는 반면, 김 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딱히 내놓지 않고 있다. 누구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선거 현실에서 볼 때도 선거 직전에 정치에 갓 입문해 지역구에 뛰고 있는 원외 인사에게 제보가 몰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선거 경험이 풍부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처음부터 김웅 의원의 제보 폭주론을 의심했다. 홍준표 의원은 "의아스러운 게 제보가 폭주했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도 아닌데 제보 폭주 할 이유가 없다. 제보가 왔다면 그 사건 한 건일 것이다"(9월 8일 '연합뉴스TV 1번지 현장' 인터뷰)라고 지적했었다.

마지막으로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바로 전달만 했기 때문에 기억이 안난다'는 말도 자료가 온 시기를 전후한 김웅 의원의 입장과 역할을 따져본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웅 의원이 강조했듯이, 당시 최강욱 후보의 발언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야당에서 처음 문제 삼았다. 그는 친문정치공작진상조사특위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윤석열 죽이기'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발언 직후 검찰총장의 측근인 과거 검찰 동료는 실명 판결문 등 법적으로 민감한 문건이 포함된 방대한 자료를 보내줬다. 내용도 김 후보의 발언을 뒷받침해주는 팩트 수집과 법리 검토, 고발장 초안으로 구성됐다. 게다가 조성은 전 부위원장은 김웅 의원이 4월 8일엔 고발장 진행 여부에 대한 확인 전화를 했고, 대검 민원실에 접수할 것을 챙겼다고 폭로했다. 그 바쁜 선거운동 기간임에도 지극한 관심사였음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을 보면 김웅 의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 가능하다. 제보폭주론도, 기억이 안 난다는 말도, 자료를 보지도 않았다는 주장도,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는 변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발 사주 의혹'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27일 공수처는 제보자인 조성은 전 부위원장을 소환했다. 의혹 관련자에 대한 첫 조사가 시작됐다. 조 전 부위원장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소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됨과 동시에 공당인 국민의힘도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국민의힘은 김재원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공명선거추진단을 구성해 '고발 제보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했다. 국민의힘은 현역 의원인 김웅 의원과 당원인 조성은씨 간의 공방이 당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양자를 소환해 진실을 가리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건 정치인 김웅이 아니라 <검사내전> 속 '검사 김웅'이다.

태그:#김웅, #고발 사주 의혹 사건, #공동정범, #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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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보좌관, 국회 정책전문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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