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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이후 매일 1시간 반 정도씩 병가 외출을 내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같은 계단인데도 오른쪽은 높이가 촘촘하고, 왼쪽은 계단이 띄엄띄엄 돼 있어 발을 크게 내딛어야 했는데 외부에 있는 데다 조명이 전혀 없어서 오르내리는 길에 크게 넘어졌다. 머리가 철제 난간에 부딪히면서 소리도 크게 나고 꽤 많이 뒹굴어서 놀랐다. 그래도 발목 접지른 정도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문제는 그 뒤에 있었다. 건물 주인은 "여기에 조명 설치해야겠네"라고만 얘기하고 내가 다친 데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때는 신축 건물이어서 고쳐야 할 부분들을 체크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나로서도 경황이 없었는데 옆에 있던 지인이 주인 연락처를 받고 같이 야간 연 정형외과에 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혹시라도 두개골에 금이 갔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머리나 발목, 팔 등은 모두 금이 가지 않았다. 의사는 2~3주간의 물리치료를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건물 주인도 걱정하지 않을까 생각해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아무런 답이 없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멀기만 한 법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가운데),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가운데),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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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법학과를 나오고 사법고시를 공부하며 익힌 법 지식을 오랜만에 써봤다.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에 대한 소유주와 점유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하고, 관련한 판례를 간단히 정리해 보냈다. 그제서야 건물주는 '미안하다'는 이야기와 병원치료비 등을 줬다.

법이 약자의 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을 통해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는 권리들이 많다. 또 타인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하도록 하고, 합당한 형벌을 가해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법이 멀다. 이미 있는 법도 법조인이 아닌 이상 알고 있지 못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태일이 법상 정해진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도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법을 공부하며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는데 평균 450만원 벌금일뿐

노동자들의 현실은 2020년도 녹록지 않다.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간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에 대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평균 450만 원의 벌금으로 '퉁' 치고 있다.

혹여라도 재해 사망자가 발생하더라도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시키면서 비용을 줄이는 게 기업 대표들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지난 10일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2주기였지만 정기국회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2021년 1월 8일)에는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본안 그대로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국내 30개 경제단체는 "헌법과 형법을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제정에 반대한다"면서 지난 16일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주요 경제단체들이 특정 법안에 대해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처럼 450만 원 벌금으로 퉁 치고 싶은 경제계 대표들의 마음이 일견 이해는 된다. 당신 자녀들은 김용균씨처럼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처참하게 목숨을 잃을 일이 없을 테니까.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용균이가 엄마에게 가는 길 - 일하다 죽지않게 비정규직 오체투지 기자회견'이 비정규직이제그만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4박 5일간 구의역~전태일다리~고용노동청~ 서울역~여의도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용균이가 엄마에게 가는 길 - 일하다 죽지않게 비정규직 오체투지 기자회견"이 비정규직이제그만 주최로 열렸다. 참가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4박 5일간 구의역~전태일다리~고용노동청~ 서울역~여의도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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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에게 들려드리는 '공장법' 탄생과정

국회의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자녀들도 450만 원의 억울한 죽음을 겪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하지만 당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에게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처참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450만 원을 받고 그 슬픔을 달래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나.

마지막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산업혁명 초기 아동노동의 실태를 얘기해보고 싶다. 아이들은 탄광, 면직, 굴뚝청소에 4살부터 고용됐다. 10분간의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12~18시간을 일해야 했다. 고용주들은 말도 배우지 못한 어린 아이들을 임금이 가장 싸다는 이유로 고용했다. 굴뚝 청소는 대형 공장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맡을 정도였다. 많은 아이들이 굴뚝에서 질식하거나 타죽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장법이 마련된 게 1802년이었다. 보육원의 경우 하루 12시간 이내 노동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1819년 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7명의 소녀가 죽자 9세 이하 고용을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12시간 노동만 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한 공장주에겐 벌금 10~20파운드를 부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아동노동 기준이였지만 이러한 공장법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공장주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산업혁명 당시 평균수명은 15세까지 내려갔다. 계속된 열악한 노동환경 결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을 하고 보니 키도 작고 영양실조 청년들이 많아 돌려보내야만 했다.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고 입법기관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아마 위 내용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의 노동현실과 산업재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연결시키고 있지 못할 뿐. 새해에는 부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길 기대해본다.

태그:#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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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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