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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018년 3월 29일 오후 서울 조선호텔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018년 3월 29일 오후 서울 조선호텔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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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버지 부시의 중국여행단을 수행하다

1977년 9월, CIA 국장을 그만 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지인과 친구들로 이뤄진 대규모 중국 여행단을 꾸린다. 상하이, 항저우 등 대도시를 거쳐 티베트, 장강삼협, 계림 등 명산절경까지 16일간 중국 대륙 절반을 훑는 빡빡한 여행이었다.

CIA국장이 되기 전에 미중 국교 정상화 직후 미국의 초대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을 지냈던 그가 베이징을 떠나기 전 덩샤오핑 당시 부총리와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다시 방문한 것이다.

여행단 중에는 훗날 부시의 대통령선거 대책위원장과 국무장관을 지내는 제임스 베이커 부부와 역시 후일 주한미국대사를 지내는 제임스 릴리 전 대사, 법률고문, 언론인, 수십 명의 석유사업가 등이 포함된다. 참가자들의 면면으로 보아 부시는 이때 이미 대통령의 야망을 키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행가이드, 통역 등 중국 현지인들도 많이 수행하는데, 이 가운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27세의 젊은이가 있었다. 상하이 출신으로 영국의 명문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유학한 뒤 외교부에 막 들어온 신참 외교관이었던 그는 금방 여행단 일원들과 친해진다. 릴리 전 대사의 말로는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영어는 물론 사교성도 모두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띠라고 해서 부시로부터 '타이거 양'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이 여행 이후 부시 가문과 급히 친해졌고,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미국통으로서 자신의 경력도 키워간다. 주미대사와 외교부장을 거치며 승승장구, 중국 외교계의 최고 실력자가 된다.

그가 현재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 양제츠(楊潔篪, 70)다.

중국 외교 최고 실력자로 성장... 미중관계 고비마다 완충역할

16일간의 여행에서 굳어진 인연은 부시가 1989년 실제 대통령이 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그해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부시는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로렌스 이글버거 등 자신의 보좌관들을 보내 반정부시위 지지자이자 천체물리학자 팡리지를 구출해내려고 한다. 이때 같이 보낸 사람이 양제츠와 친분이 있는 채이스 운터마이어였다.

부시는 티베트 여행을 함께 했던 운터마이어로 하여금 양제츠를 만나 천안문 비극에도 불구하고 미중 양국 사이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양제츠와 부시의 돈독한 관계를 이용한 것은 비단 미국만은 아니었다. 1992년 여름 미국이 대만에 F16 전투기를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중국은 양제츠를 백악관으로 보냈다. 이때 보통의 저명인사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전달하지만 양제츠는 극소수의 외교관만 들어갈 수 있는 백악관 관저에서 만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인연은 아들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져 그의 1차 임기 4년간 양제츠는 미국 대사를 지내며 양국관계를 원만히 이끌어왔다는 평이다.

부시 가문과의 인연이 상징하듯 양제츠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통'이다. 공부는 영국에서 했지만, 영국에서 배운 영어를 가지고 미국에서 활약했다. 주미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공사, 주미대사, 외교부 북미국 부국장, 외교부장, 외교담당 국무위원, 정치국 위원 등 그가 걸어온 길로 봐도 확연하다.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018년 3월 서울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018년 3월 서울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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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 방한 사전조율 유력... '미국편 들지말라' 요구할 수도

양제츠 정치국 위원이 이번주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가 방한할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에 외교부는 그간 "확인해줄 사항이 없다"며 철저히 함구하더니 18일엔 "양측이 일정을 조율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양제츠 정치국 위원 방한 소식과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발표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외교가의 최고 실력자인 그가 2018년 7월 비밀방문 이후 2년만에 갑작스레 방한할 것으로 보도되자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을 사전조율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시진핑 주석은 당초 올초 방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연기된 상황이다. 현재는 양국 모두 올초에 비해선 코로나 상황이 호전됐기 때문에 가능성이 커졌다.

두 번째는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미중 갈등 와중에서 한국을 미국의 영향권에서 떼어놓으려 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으로서는 아시아의 신흥 경제대국 한국을 아군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최소한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지 못하도록 단도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현재 800km으로 묶여있는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겠다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문제가 유력한 이유일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방한중 만날 주요 인사로 외교부장관뿐만 아니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제츠는 2년 전에도 정의용 전 안보실장을 만나고 갔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다방면으로 중국 외교 방향을 결정짓는 최고 책임자이면서 대미외교에 있어서도 수십 년간 최전선에 서 있었던 그의 심기가 요즘은 편치 않다. 중국의 부상을 한사코 막으려드는 트럼프 정권과 하루가 멀다하고 불협화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화웨이의 발목을 잡는가 하면 다음날은 틱톡, 위챗에 시비를 걸고 있다. 급기야 양국의 영사관을 하나씩 폐쇄하는 사태까지 나갔고, 홍콩보안법 문제를 비롯해 대만, 신장위구르 문제 등 사안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답답했는지 그는 지난 7일엔 이례적으로 "최근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잇따라 잘못된 주장으로 악랄하게 중국과 중국의 정치제도를 공격하고, 50년 미중 관계의 역사를 왜곡하고 전면 부정했다"고 지적하며 "이에 중국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하며 미중 관계를 안정시키겠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가 시 주석의 방한과 사드 배치 이후 4년 넘게 한중 교류를 막아온 '한한령'을 풀어주는 선물을 제시할 것인지, 미중 대치 와중에 중국 편을 들라는 청구서를 내밀 것인지, 이번 방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그:#양제츠, #부시, #부시가문, #정의용, #한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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