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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sLOVEnia)'는 나라 이름 안에도 '사랑(love)'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인 류블랴나(Ljubljana)도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슬로베니아 구시가의 여러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하트 모양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류블랴나에서는 온통 꽃으로 가게 입구를 장식한 가게들을 만난다.
▲ 꽃으로 장식된 가게. 류블랴나에서는 온통 꽃으로 가게 입구를 장식한 가게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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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의 어느 가게는 입구 전체를 꽃으로 덮어버린 채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붉은 꽃을 보고 있으면 류블랴나 사람들의 꽃에 대한 사랑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길을 걷고 있으면, 강변의 거리 악사들은 아코디언으로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류블랴나차 강변의 거리의 악사들은 사랑의 노래를 연주한다.
▲ 거리의 악사. 류블랴나차 강변의 거리의 악사들은 사랑의 노래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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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의 파스텔 톤의 도시 분위기는 여행자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진하게 칠하지 않은 도시의 색상은 막연하게 이 도시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게 한다. 류블랴나 도시 안에서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형물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와 아내는 본격적으로 류블랴나 구시가 탐사에 나섰다.

류블랴나차(Ljubljanica) 강을 지나 구시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자 메스티니 광장(Mestni trg)이 나왔다. 이 광장에는 오벨리스크를 머리 위에 세우고 있는 롭바의 분수(Robba Fountain)가 한눈에 들어온다. 1751년에 이탈리아 조각가인 롭바(Robba)가 로마의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에 있는 4대 강의 분수를 모델로 하여 만든 분수이다.
 
슬로베니아의 3대강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상징한다.
▲ 오벨리스크 분수. 슬로베니아의 3대강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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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나보나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지구의 4대 강을 상징하는 4개의 면으로 되어 있고, 그 아래에 4대강을 상징하는 조각상과 분수가 있다. 반면 이 롭바의 분수는 슬로베니아의 3대 강 즉 사바(Sava) 강, 크르크(Krka) 강, 그리고 류블랴나차 강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이 롭바 분수 위의 오벨리스크를 보면 왠지 두께가 얇아 보인다. 오벨리스크의 면이 4개가 아니고 3개, 즉 기다란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이 오벨리스크가 로마의 분수보다는 작지만 슬로베니아를 흐르는 강들을 상징하고 있어서 슬로베니아인들의 절절한 국토 사랑이 느껴진다. 강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의 조각들이 슬로베니아의 강물을 항아리에서 흘려 보내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롭바의 분수는 푸른 시계탑이 있는 류블랴나 시청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다. 한 나라 수도의 시청인데, 시청이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청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원래 재판소로 만든 건물을 시청사로 사용 중인데, 1층을 구경할 수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프레스코 양식의 다양한 문양과 함께 류블랴나 시의 지도가 그려진 시청 내부는 관청답지 않게 분위기가 편안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롭바의 분수에서 류블랴나 성으로 이어진 길을 계속 걸었다. 우리 눈 앞에는 2개의 첨탑이 우러러 보이는 류블랴나 대성당(Ljubljana Cathedral)이 나타났다. 성당 내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제 파이프 오르간이 인상적이었지만, 이 성당에서 가장 눈이 가는 것은 대성당의 남쪽 청동문에 새겨진 조각이었다.
 
대주교 6명이 숨진 예수를 애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 류블랴나 대성당의 청동문. 대주교 6명이 숨진 예수를 애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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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문에는 성당의 발전을 이끈 대주교 6명이 숨진 예수를 애도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예수를 바라보는 대주교들의 표정이나 얼굴의 각도가 모두 다르고, 마치 표정 뒤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듯 조각이 사실적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류블랴나 디자인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류블랴나 대성당 입구의 육중한 청동문에는 슬로베니아 기독교의 역사 또한 아로새겨져 있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대성당을 방문했을 당시 성당 안에서 기도를 올리는 장면도 자랑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조각상에는 창문에 손을 얹은 교황 바오로 2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슬로베니아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 신자가 장미꽃 한 송이를 교황에게 건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황에게 장미꽃! 참으로 류블랴나가 사랑과 꽃의 도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이다.
 
강변의 중앙시장에서는 슬로베니아의 특산품을 만날 수 있다.
▲ 류블랴나차 강과 중앙시장. 강변의 중앙시장에서는 슬로베니아의 특산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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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 대성당의 북쪽, 류블랴나차 강변으로는 중앙시장(Central market)이 열리고 있었다. 작은 광장에 선 시장인데 오후 시간이 되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주로 꿀, 호박씨 오일, 마른 과일 등의 슬로베니아 특산물이 팔리고 있었고, 배, 사과, 귤 등의 과일을 파는 가게들이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강변에 들어선 시장이라 풍경마저 사랑스러운 시장이다.

시장 옆의 강변을 걷다 보니 소시지 간판을 귀엽게 걸어놓은 여러 상점들을 볼 수 있었다. 류블랴나는 다진 돼지고기로 만든 크라니스카 크로바사(Kranjska Klobasa)라는 소시지도 유명한 특산품이다. 소시지를 한 개만 사서 아내와 나누어 먹어보았다. 소금과 후추, 마늘이 들어간 소시지는 약간 짭짤했지만 속이 꽉 찬 돼지고기의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나와 아내는 류블랴나차 강변에 있는 디바인(Divine)이라는 카페의 야외 좌석에 가서 앉았다. 슬로베니아의 전통 식재료들이 가득 채워진 패이스트리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였다. 이 케이크는 EU에서 슬로베니아의 전통 특산품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럽 내에서도 인정을 받은 케이크이다. 프렉무르예(prekmurje) 지방에서 시작된 이 슬로베니아 전통 케이크는 축제 행사마다 등장할 정도로 슬로베니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슬로베니아의 10대 음식으로 선정된 패이스트리 케이크이다.
▲ 프렉무르스카 지바니카. 슬로베니아의 10대 음식으로 선정된 패이스트리 케이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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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프렉무르스카 지바니카(prekmurska gibanica)라는 패이스트리 케이크를 함께 먹어보았다. 여러 색상이 어울리는 케이크의 층층마다 가득 채워진 사과와 양귀비 씨앗, 호두, 치즈, 건포도가 입안 가득히 퍼져 나갔다. 모든 맛있는 단맛이 한꺼번에 혼합되어 있는 듯한 풍족한 맛과 단 음식을 먹었을 때의 왠지 모를 행복감이 혀 끝에서 느껴졌다.

이 케이크에 일리(illy)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셨다. 류블랴나의 강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만족스러웠다. 음식 맛도 훌륭하지만 강변의 풍경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었다. 카페 주변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은 한동안 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와 아내는 류블랴나차 강변을 다시 계속 걸었다. 다리 일부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주변의 고풍스러운 석조 다리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의 다리가 눈 안에 들어왔다. 2010년에 완공된 이 새로운 메사르스키 모스트(Mesarski most) 다리에는 수많은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을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다리 난간의 물고기 조각상의 이빨까지 사랑의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나는 자물쇠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들을 몇 개 읽어보았다. 자물쇠 걸린 다리들을 그동안 보아 오면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 사랑의 도시 류블랴나에서 느끼는 사랑의 자물쇠는 느낌이 남달랐다. 류블랴나는 사랑의 자물쇠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랑의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류블랴나차 강변은 여유로운 힐링의 공간이다.
▲ 강변의 야외카페. 류블랴나차 강변은 여유로운 힐링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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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르스키 모스트 다리 옆 강변에는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야외 테라스에는 하루 종일 강변의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낮에 여유 있는 표정 속의 한가로운 모습들이 나에게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었다. 류블랴나차 강은 류블랴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비로운 힐링 공간처럼 보였다.

사랑의 도시 류블랴나의 분위기는 사람들을 로맨틱하게 만드는 것 같다. 거리의 벤치에서는 한 젊은 남녀가 부둥켜 안고 키스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류블랴나가 왜 사랑의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 류블랴나의 연인. 류블랴나가 왜 사랑의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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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 속 배우들 같은 외모의 이들은 류블랴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젊은 남녀의 사랑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다. 류블랴나는 역시 사랑의 도시였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독일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여행, #류블랴나, #류블랴나여행, #사랑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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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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