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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외 불법사이트 895곳의 접속을 차단하며 보안접속(https)나 우회접속도 원천봉쇄하기 위해 SNI 기술을 이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다른 한쪽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이 글은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입장입니다.[편집자말]
지난 1월 말, 정부는 24조 원 규모의 23개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아래 예타,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공공사업 착수 전 타당성을 검증해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 면제 대상으로 발표했다.

안 그래도 선심성 예산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데 세금 낭비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예타 면제의 기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문재인 정부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조차 "이명박도 이렇게는 안 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독불장군식 행정은 "국민이 주인인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과도 맞지 않다. 그런데 예타 면제보다 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인터넷 검열이다.

보호가 아닌 '검열'인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2.12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2.1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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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아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인터넷은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누군가의 인터넷 검색기록과 방문사이트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개인정보보호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고, 사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지의 여부는 현세대 인간들의 행복에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불법사이트 차단을 이유로 각 개인의 인터넷 사용을 검열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고, 최대한의 사회적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다.

또한 실효성에 있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고, 법적으로도 위헌·위법 소지가 다분하며, 개인의 사생활 침해 위험도 크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도 이와 관련해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근본적인 측면에서 무관하다고 보기 힘든 테러방지법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이뤄지기도 했다.

물론 기존에도 국내에서는 접근이 차단되는 사이트들이 있었고(검열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당연히 비판했다), 이번에 차단 방식이 좀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단 방식 자체에도 큰 차이가 있을뿐더러,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정부가 기존에 특정 사이트를 차단했던 방식은 굳이 비유하자면 그 목적지(차단된 사이트)의 문 앞에서 접속을 막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목적지에 들어가려는 여러 방문자들 중에서 한국에서 온 이들만 못 들어가게 막는 방식이다(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아무런 제한 없이 접속이 가능했다). 여기서 핵심은 한국에서 접속했는지의 여부였고, 차단 방식과 우회 방법이 둘 다 단순한 편이었다.

반면 이번에 도입된 차단 방식은 출발지(각 개인)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집 앞에서부터 막아서는 것에 가깝다. 우리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즉각 확인해서(이용자가 현재 접속하고자 하는 주소를 보고 차단하는 방식) 아예 못 가게 만드는 셈이다.

결정적 함정

누군가는 불법사이트 접속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어서 더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원래 이용자가 특정 사이트를 접속할 때는 최대한의 암호화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인터넷 보안 종사자들은 이 암호화의 허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각 개인의 집 앞에서 목적지를 확인하고 차단하기 위해서는, 결국 암호화되지 않은 정보가 필요하다. 방통위가 말하는 SNI 필드 차단 방식은 이 '보안접속 이전의 주소'를 엿보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감청(통신 내용을 엿들음)'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감청과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게다가 이처럼 보안 허점을 이용한 차단 방식은, 인터넷 보안을 증진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감히 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행위란 게 너무나 명백하다. 어차피 새로운 보안기술이 적용되면 무용지물이다.

또 문재인 정부가 아예 대놓고 인터넷을 감시하며 독재를 펼치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공식적인' 인터넷 감청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정권이 바뀌었을 때, 과연 무슨 논리로 감청·차단·사찰을 막을 수 있을지 큰 의문이다.

'불법사이트'란 무엇인가
 
한때 차단되었다가 현재는 접속 가능한 노스코리아테크 메인페이지 갈무리.
 한때 차단되었다가 현재는 접속 가능한 노스코리아테크 메인페이지 갈무리.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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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북한의 정보통신 기술 관련 이슈를 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 외신기자(영국인)가 운영하던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접속차단 결정을 내렸다(이후 국정원의 작품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2017년에 법원이 "차단 결정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아무튼 우리는 국내에서 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이트가 '불법사이트'인가를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을 가지고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국은 아직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전혀 갖지 못했다. 방통위는 차단 사이트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냥 일방적 차단만 존재하는 왜곡된 구조이며, 향후 어떻게 악용될지도 알 수 없다.

다들 알다시피 일단 한번 생긴 제도는 없애기도 무척 어렵다. 박근혜 정부나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5년 임기가 주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문제점이 많은 제도를 무작정 실행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짓이다.

예타 면제를 발표할 때에는 "4대강 개발식의 SOC와는 다르다"고 하더니, 인터넷 검열을 하면서도 "이명박근혜 정권과는 다르다"고 할 셈인가? 어떻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인터넷 검열은 더 고약한 구석도 있다. 이전 정부들은 본격 시행 전에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문재인 정권은 (예타 면제처럼) 그냥 곧바로 실행해 버린 후 '나를 따르라'고 하니 말이다.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이번 인터넷 검열이 시작된 건 2월 11일부터였다. 갑자기 사이트 접속이 안 되는 일이 발생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고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항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이트 차단 사실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안내하지 않은 것이다.

12일 오전에 관련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살펴보면, 다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며 반신반의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제일 먼저 차단작업을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 KT도 11일에는 이용자들의 문의에 그저 이리저리 얼버무리기 바빴다.

과연 이게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표방하는 정권이 말하는 민주주의인가? 전혀 투명하지 않았고, 제대로 소통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독불장군식으로 사이트 차단을 강행했는지 나중에라도 꼭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인터넷 자유국가' 약속을 기억한다면...
 
"이명박 정부 동안 우리나라는 인터넷 검열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하던 한국이 지금은 동급이 됐다. 인터넷 세상에서만 보면 이명박 정부는 독재정권 ... (중략)... 네트워크 세상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어야 하며 이를 공권력으로 통제해선 안된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인터넷 자유국가로 만들겠다." - 2012년 10월 15일, 판교 테크노밸리센터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

이런 식의 인터넷 검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한 공약과도 어긋나고, 이제까지 주창해온 정부의 방향성과도 맞지 않는다.

독재국가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촛불을 들었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후보로 선택되어 권력을 잡은 게 바로 문재인 정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기존의 시대착오적 인터넷 차단 제도를 바꾸기는커녕 인터넷 검열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었을 때 벌어질 수도 있는 일들("2019년에 문재인 정권이 특정사이트를 차단할 때 이용했던 방식과 동일하게...")을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는 2030세대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아무래도 인터넷 검열은 이들에게 민감한 사안일 텐데, 그냥 단순히 '불법사이트 차단'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건 너무 안일한 태도다. 

일반 시민들은 어떤 사이트가 왜 차단됐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웹서핑을 한다. 사회적 합의와 적절한 방식을 거치지도 않고 그저 "나쁜 거니까 막는다"는 식의 전근대적 발상은 21세기 젊은이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그런 일방적인 강요를 수긍할 사람은 별로 없다. 이번 인터넷 검열로 인해 젊은 세대가 문재인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방향성을 상실한 문재인 정부의 오판이, 어쩌면 극단적 정치혐오의 시대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헬조선' 탈출을 위해 촛불을 들었는데, 또다시 '네오조선'으로 향한다면 국민들은 언제든 다시 저항할 수밖에 없다.

[방통위 https 차단 논란]
 

도박·음란물 사이트 막으려다 인터넷 검열 사회 온다? 
[주장] 나쁘니까 막는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주장] 억압 행사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불법 동영상' 소비자들 

태그:#인터넷검열, #감청, #예타면제, #문재인, #사이트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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