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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햇빛 충만한 도시, 아를(Arles). 아를의 예쁜 골목골목,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로 따뜻해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좋아하는 옛 집 구경도 하고 상점에서 기념품 구경도 하면서 한가로이 길을 걸었다.

아를은 낮은 집들과 어우러진 골목들이 사랑스럽다.
▲ 아를의 골목길. 아를은 낮은 집들과 어우러진 골목들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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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은 골목길이 참 사랑스러운 곳이다. 프랑스에서 놓치고 가면 후회할, 편안하고 운치 있는 골목길이다. 골목길을 에워싼 건물들은 일부러 고풍스럽게 꾸민 테마파크가 아니라 과거부터 사람들이 살면서 가꾸어온 살아있는 건축물들이다.

아를은 볼 만한 여행지와 특별한 장소를 가보는 것도 좋지만 무작정 골목 걷기만 해도 지루하지가 않다. 약간 흐리던 날씨가 점점 물러나고 햇볕이 집 건물의 벽면을 사랑하듯 강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아를을 사랑했던 이유는 쏟아지는 햇볕과 이 고풍스러운 골목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운치 있는 골목 사이를 걷는다는 사실이 괜히 행복했다.

담쟁이 넝쿨이 반기는 아를의 골목길은 정겹기만 하다.
▲ 아를의 골목. 담쟁이 넝쿨이 반기는 아를의 골목길은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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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를의 원형경기장(les Arènes d'Arles)에서부터 고대극장(Théâtre antique)까지는 미로 같이 이어지는 골목길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고대극장을 찾아가면서 이 짧은 골목길을 지그재그로 모두 돌아보았다. 직선 골목길로 걸으면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나는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골목길에 발을 디뎌 보았다.

원형경기장 남쪽의 골목길을 걷다 보니 집들 사이로 고대극장의 우뚝 솟은 2개의 기둥이 언뜻언뜻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골목과 골목의 집들, 고대극장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를 고대극장 남쪽에 자리잡은 공원에 도착해서 보니 고대극장 모습이 대부분 눈 안에 들어왔다.

2천년이 넘는 이 역사적 건축물은 프랑스에 남은 로마의 유적이다.
▲ 아를 고대극장 남문. 2천년이 넘는 이 역사적 건축물은 프랑스에 남은 로마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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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대극장의 아치형 모양 출입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나는 일순간 당황했다. 고대 로마의 극장 유적을 만나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보지도 못한다는 것인가? 나는 급한 마음에 쇠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집어넣어 고대극장의 이곳 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나는 고대극장 안 역사의 현장 안으로 너무나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고대극장의 동서남북 네 변을 모두 돌아보기로 했다. 고대극장 서쪽에는 극장 터의 기둥 잔해들이 무너진 채로 가득 쌓여 있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쇠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집어넣어 사진을 찍었다.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한 석재들이 마치 창고의 제품처럼 가득 쌓여 있었다. 2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석재들이 신비롭게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폐허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석재가 나뒹굴고 있다.
▲ 고대극장의 석재. 폐허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석재가 나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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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로마시대로부터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다. 무너진 석재들을 보면서 나는 고대극장의 본래 모습을 떠올려본다. 로마시대의 수많은 원형극장 중 이곳처럼 폐허의 쓸쓸한 느낌을 주는 곳도 없는 것 같다. 역사 오랜 돌들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허탈하게도 고대극장의 북쪽으로 접근해보니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도 있고 입장 티켓을 파는 매표소도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매표소 안으로 얼른 들어갔다. 매표소 안에는 젊고 건강해 보이는 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고대극장 입장료가 얼마에요?"
"고대극장 티켓만 구매하면 비싼데…. 하지만 이 티켓으로 원형경기장도 입장할 수 있어요."
"네? 이런, 방금 원형경기장도 입장료 내고 다녀왔는데요."
"괜찮아요. 원형경기장 티켓을 보여주면 고대극장도 그냥 입장할 수 있어요."

나는 얼른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여행 다니면서 입장권과 교통편 티켓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습관이 있는데, 원형경기장 입장 티켓도 호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를의 고대극장은 입장하지 않아도 밖에서 안을 훤히 볼 수 있기 때문에 고대극장 내부까지 들어가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는 내가 반가운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입장권을 사서 고대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고대극장은 3층에 이르는 객석에 만 명을 수용하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 고대극장 복원도와 비너스. 고대극장은 3층에 이르는 객석에 만 명을 수용하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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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겸 안내소를 겸하는 이곳의 직원은 나에게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나는 입장 티켓을 매표소 아가씨에게 보여주면서 아를 고대극장에서 발견된 비너스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아를의 비너스(Vénus d'Arles)가 발굴된 게 맞죠? 미지의 바다에서 태어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
"네 맞아요. 아를의 비너스는 이곳 고대극장의 벽감 안에 고정된 여성상이었죠. 하지만 그 아름다운 국보는 지금 아를을 떠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랍니다. 이 로마시대 극장을 발굴할 때 나온 아를의 비너스 등 수많은 유물들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그녀는 관광안내소의 사진도감에 실린 아를의 비너스를 보여주었다. 미지의 바다, 푸른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사랑과 미의 여신은 석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여신은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가리는 옷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엉덩이를 살짝 비틀어 엉덩이에 걸친 옷 속에 하반신을 가리고 있었고 상반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대리석의 아름다운 여신은 옷을 걸친 왼손을 구부리고 있고 길게 뻗은 오른손에도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비너스가 땅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양팔이 부러졌고 부러진 양팔은 분실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발견 당시에 오른팔은 완전히 사라졌고 몸통에 가까운 왼팔 일부만 남아있었습니다. 현재 아를 비너스의 양팔은 조각이 제작된 BC 360년경 당시 모습 그대로는 아니에요. 루이 14세 시절인 17세기에 발굴된 후 왼손에 거울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빗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아를 비너스의 양팔은 현재 추정에 의해 복원된 모습입니다."

아를의 비너스는 원래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을까? 아를의 비너스는 후세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2천년 전에는 실제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스에서 발견된 밀로의 비너스(Vénus de Milo)도 팔이 사라진 채 발견되어 참고할 만한 석상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비너스의 사라진 팔을 없어진 채로 놔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고대 비너스의 모습은 상상 속의 세계로 남겨두는 것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고대극장 무대로 이어지는 벽면은 오랜 세월에도 잘 남아 있다.
▲ 고대극장 안으로. 고대극장 무대로 이어지는 벽면은 오랜 세월에도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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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내소의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고대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로마제국 안으로 시간여행을 들어온 듯한 장소. 옛 고대극장으로 인도되는 길은 오랜 세월에도 잘 버티고 남은 벽면이 신비하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의 유적은 현재 아를의 다른 로마제국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이 고대극장은 기원전 1세기말에 로마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 때 건설됐으며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계속적으로 훼손되어 왔다.

아를의 고대극장은 세계문화유산이자 로마 유물의 보고이다.
▲ 고대극장 전경. 아를의 고대극장은 세계문화유산이자 로마 유물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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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는 고대극장 안에 수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설 정도로 훼손이 심해서 극장 터라는 사실이 잊혀질 뻔 할 정도였다. 아를에 살던 주민들이 극장의 석재와 장식을 떼어 자신의 주택을 세우는데 사용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아를의 고대극장은 19세기 중반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고대극장에는 무대를 꾸미던 2개의 대리석 기둥과 받침대, 그리고 관람석 일부가 남아 있다. 고대극장이 처음 세워졌던 기원전 1세기경에는 이 대리석 기둥 뒤로 무대의 벽이 높게 둘러쳐 있었지만 지금은 벽은 허물어지고 폐허 같은 모습이 남아 있다. 그래도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반원형의 계단식 좌석이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극장의 무너진 벽면에는 대리석 기둥 2개만이 외로이 서 있다.
▲ 고대극장 기둥. 극장의 무너진 벽면에는 대리석 기둥 2개만이 외로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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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를의 고대극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무대, 아름답게 장식된 벽면, 그리고 관객이 앉는 반원형의 관중석 공간인 카베아(cavea)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베아는 직경 102m나 되는 계단식 좌석이 33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려 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좌석에 앉는 관객들은 당시 로마의 사회 계급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극장 내부의 전망이 좋은 계단 자리나 오케스트라 앞 자리에는 귀족과 군인 계급들만이 앉을 수 있었다.

무대 뒤 안쪽 벽면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고전 양식의 대리석 원기둥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2개의 원기둥과 기둥을 받치던 토대뿐이다. 이 장식벽면의 벽감에서 아름다움의 상징, 비너스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고대극장은 인근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파괴가 진행된, 처연한 유적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무대의 커튼을 올리고 내리는 무대장치까지 발견되었다. 여러 발굴 유물을 통해 고대 로마의 건축기술을 확연히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이 고대극장은 보물 같은 유적인 것이다.

고대극장에서는 고대로마의 희극과 비극이 공연되었다.
▲ 고대극장 객석. 고대극장에서는 고대로마의 희극과 비극이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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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축제 때에는 이 고대극장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놀이가 진행되었고, 정기적으로 연극이 관객들에게 공연되었다. 이 고대극장에서는 로마 신화 속 희극과 비극이 공연되었을 것이고, 당시 로마 배우들의 공연과 함께 노래가 무대와 객석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현재도 아를의 고대극장은 다양한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를의 축제 기간이 되면 이 고대극장은 콘서트나 오페라 등이 열리는 야외공연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매년 여름 열리는 국제사진축제와 영화제도 아를의 고대극장이 주무대이다.

이 무너진 극장 벽면에 미의 여신, 아를의 비너스가 세워져 있었다.
▲ 고대극장의 무너진 벽면. 이 무너진 극장 벽면에 미의 여신, 아를의 비너스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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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고대극장은 현대의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곳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아를의 비너스는 낭만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대극장 안, 객석 앞 무대 위에 혼자 서 보았다. 고대, 그날의 노래가 되살아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아를에서는 왠지 모두가 낭만에 취하게 된다.

고대극장은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지만 남겨진 객석과 기둥을 바라보며 상상 속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유적 위에는 평화로운 새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아를, #고대극장,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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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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