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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고운 정장을 입고 외출을 하셨다. 물론 외출증은 내가 발급해 드렸다. 목적지는 예식장. 지난주 신부에게 미리 어머니와 같이 간다는 통보를 했었다. 그래서 축하금도 2인용으로 듬뿍 냈다. 주말이고 강남까지 가는 길이 막힐까 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하늘과 나무, 사람들, 자동차를 보시며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아유, 나무가 많이 자랐네."
"나무가 크네요."
"하늘 좀 봐!"
"좋네요."

우리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야

간간이 추임새를 넣듯이 반응해 드리면 더 좋아하신다. 어머니 같은 어르신들은 같은 말을 며칠 간에 걸쳐 반복하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다른 상황에 맞는 말을 또 반복적으로 질문하신다. 어머니는 감탄사가 붙은 말을 좋아하신다.

"저 빨간 차 이쁘네."
"빨간 차가 좋으세요?"
"아니, 저 차가 더 좋아."

나는 어머니의 표현에 깜짝 놀랐다. 잠시 혼자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야. 기억력이 떨어졌을 뿐이야. 나도 건망증 있잖아.'

굳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머니를 치매라는 구렁에 넣고 싶지 않은 자식의 마음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말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정적인 단어나 표현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상황이 나쁘더라도 '곧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고, 실패를 했어도 '다음 기회가 있겠지'라고 말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기억 재생 속도가 느려져도 그 상황에서 나는 희망적인 코드를 찾는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에게 백 배 당부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족두리 머리에 쓰신 것처럼 연출한 사진
 족두리 머리에 쓰신 것처럼 연출한 사진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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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기념 촬영

예상보다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주차 안내원의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12시 예식인데 사람들이 일찍 오네."

아마 나처럼 시간 계산을 잘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식 시작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어머니의 기념 촬영 시간이 되었다. 3층 로비에 전시된 100여 년 전 도자기들을 보다가 끝부분에 사모관대와 족두리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도 그것을 보자 결혼식이 생각나시는 모양이다. 족두리 앞에 선 어머니의 작은 키 높이가 족두리의 높이와 같았다. 그래서 마치 족두리를 쓰신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결혼하셨던 때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그럼."
"이거 보시니까 어때요?"
"예쁘네!"

역시 감탄사로 끝을 맺으신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미리 마련된 예식 장소에 들어가 앉았다. 어머니는 옆자리 아주머니와 쉽게 친해지셨다. 서로 귓속말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하시던가요?" 
"할머니가 신부 옷이 질질 끌린다면서 걱정하시네요. 호호호."

어머니는 결혼식 내내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바닥에 끌린다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식사 중에도 어머니는 옆자리 아주머니를 챙기신다. 어머니에게 먼저 식사가 나오자 아주머니에게 같이 먹자고 하시고, 웨이터가 지나가자 아주머니에게 밥을 주라고 하신다. 그 아주머니도 어머니에게 장단을 잘 맞춰주셨다. 그리고 두 분이서 여러 말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당신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 좋으신 모양이다. 나는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에식장에서 어머니만의 기념쵤영
 에식장에서 어머니만의 기념쵤영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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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아이처럼 대화하시다

식사를 마치고 로비로 나오는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아기 엄마를 보고 말을 거신다.

"몇 살이예요?"
"일곱 살, 네 살이에요."
"아이고, 예쁘다."

그러시더니 어머니가 나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게 누구야?"

내가 어머니에게 "내가 누구예요?", "어머니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의 모습이다. 아기 엄마가 웃는다. 내가 말했다.

"나는 이 할머니 아들이야. 너 이름이 뭐니?"
"민지예요."
"예쁘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귀여워하신다. 어머니 행동을 보니 기분이 좋으신 것이 분명했다. 주차장을 나오는데도 주차 요원에게 인사를 하신다. 집에 오는 내내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시며 즐거워하셨다.

재주도에서 휴식하시며 잠시 기념촬영
 재주도에서 휴식하시며 잠시 기념촬영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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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사내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아기 엄마가 같이 탔다. 11층 아주머니였다. 어머니가 호텔에서처럼 또 말을 거신다.

"너 얼굴에 그린 것이 뭐니?"
"형은 잠자리구요. 나는 도깨비예요."
"이게 누구야?"

또 나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11층 아주머니는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빨리 말했다.

"나는 16층에 사는 아저씨야. 너희 집에 할머니 계시니?"
"아뇨."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와 한참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는 사람이 그립고, 말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반복된 말이나 행동을 분명히 기억하신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접촉점은 치매 인들에게 좋은 치유방법이다. 어머니 같은 노인들에게 '말 상대'와 '반복 학습'은 꼭 필요하다. '독수리 멤버들'(치매 노인을 둔 가족)에게 작은 조언을 드리는 바이다.

"독수리들, 날개를 펴라!"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좋은생각언어 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죠지뮬러영성연구소 대표소장으로 작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섬김이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태그:#치매어머니, #나관호, #제주도, #사람과의 접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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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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