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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성탄절이 다가오는데도 교회 꾸미기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교회 공사 중이라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이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으름이 첫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교회 절기는 찾아옵니다. 올 성탄절은 저희들에게 적막한 절기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포기하는 마음 이면에는 걱정도 없지 않았습니다.

참 묘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희들을 잡아 두지 않으십니다. 움직이게 만드십니다. 전혀 예상 밖의 손길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서울에서 축산업을 하시는 김정숙 권사님을 통해서 고기(돼지갈비)를 보내주셨구요, 중동기독신우회 양승관 집사님은 성탄절 선물용 무릎담요를 보내 오셨습니다.

이 건빵은 서울 광염교회(담임 조현삼 목사)에서 후원해 준 것이다.
▲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건빵 이 건빵은 서울 광염교회(담임 조현삼 목사)에서 후원해 준 것이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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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성 집사님은 출석 교회에 이야기해 전도용 보리건빵을, 그리고 영민이 엄마는 행사에 쓰시라며 귤과 빵을 한 상자씩 싣고 왔습니다. 도산마을 정문화 이장님은 성탄절 행사에 보태시라며 찬조금을 갖고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여러 분들을 통해 의외로 풍성한 잔치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12월 23일(토요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오전 10시에 교회를 나섰습니다. 성탄절 현수막을 만들기 위해 자주 가는 문구점을 들렸습니다. 문구점 주인 왈 "직접 만드는 것이 주문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듭니다." 그러면서 현수막 제작 업소를 소개해 줬습니다. 그러나 즉석 제작은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정오 가까이 되었을 거예요. 가끔 교회 행사가 있을 때 제작을 의뢰한 적이 있는 현수막 제작 회사에 아내가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습니다. 그 사무실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토) 오후 1시까지 접수, 택배 발송은 26일 가능하니 물량이 몰리지 않는다면 27일 도착 가능"

성탄절이 지나고 부산을 떠는 것은 원래의 의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러나 아내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직접 찾으러 갈 테니 오후 3시까지 현수막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매달렸습니다. 직접 찾으러 간다? 생각하니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교회 청년 윤경이가 볼일이 있어 그날 서울에 올라가 있었거든요.

촌음을 다투며 아슬아슬하게 현수막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색상이 마르기 전이어서 혹 번져 묻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괜찮더군요. 밤 9시 오세용 권찰이 와서 현수막 두 개를 단단하게 달았습니다. 실내에 하나 그리고 예배당 밖 외벽에 하나.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담겨 있는 글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주문하고 어렵게 찾아 온 성탄절 현수막을 늦은 밤 작업을 통해 깔끔하게 부착했다.
▲ 어렵게 제작해서 예배당 외벽에 건 "예수 Jesus" 현수막 아슬아슬하게 주문하고 어렵게 찾아 온 성탄절 현수막을 늦은 밤 작업을 통해 깔끔하게 부착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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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기쁜 성탄 복된 새해, 기쁜 성탄 보내시고 복된 새해 맞이하여 형통의 삶 누리시기 바랍니다, 덕천성결교회"(실내용)

"MERRY CHRISTMAS! 세상을 향한 사랑과 축복, 예수 Jesus,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덕천성결교회"(실외용)

대강절 네 번째 주일이자 성탄절 하루 전날입니다. 연말까지 겹쳐 마음이 더 설렙니다. 기도로 주일을 준비했습니다. 주보를 출력했습니다. 햇살요양원 것까지 두 종류를 뽑아야 합니다. 박 사모는 예배당 정리정돈에 정성을 쏟습니다. 시내에 사는 강 권찰은 스스로 버스를 타고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을 모시고 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낯선 자동차 한 대가 보였습니다. 영민이 고모 부부였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형제들이 갖는 모임이 있어서 고향 집에 온 길에 저희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수집사와 권사의 직분을 갖고 있는 분들로서의 귀한 믿음을 읽게 됩니다.

성탄절 하루 전 주일 낮예배 때 눅 1:16-35을 본문으로 "지혜로운 여성 마리아"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 실내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강단에서 설교하는 필자 성탄절 하루 전 주일 낮예배 때 눅 1:16-35을 본문으로 "지혜로운 여성 마리아"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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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6-35을 본문으로 "지혜로운 여성 마리아"란 제목 아래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 가지 만남을 가진 마리아입니다. 요셉과는 정혼(定婚)함으로 만났고, 하나님과는 영적으로 만나 예수 잉태의 복을 입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수태(受胎)를 고지(告知) 받게 되었고 그것을 고마워하는 마리아는 지혜로운 여성입니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기독교가 급성장한 우리나라입니다. 신자 수와 예배당의 크기로 따질 때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교회에 우리나라 것이 여러 개 든다고 합니다. 사회의 구조에 뒤지지 않게 우리 교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작은 농촌 교회를 섬기는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성탄의 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어디를 먼저 찾으실까. 수만 명의 신자를 자랑하는 도회지 매머드 교회일까 아니면 몇 명의 연로한 노인 분들이 지키고 있는 작은 농촌 교회일까? 물론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군데 모두 찾아 가시는 예수님이시겠지요. 그런데 순서를 정한다면 작은 농촌교회를 먼저 찾지 않으실까요?

오늘 공동식사는 떡국입니다. 오순도순 식탁 교제에서 또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예수님도 이런 식사를 즐기셨습니다. 서울에서 다니러 왔다가 오늘 예배에 함께 하신 손태정 집사님과 조순옥 권사님은 형제들과의 점심 식사를 위해 예배당 문을 나섰습니다. 나서기 전 기념으로 사진 한 컷에 얼굴을 담았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김성현 시인도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일찍 자리를 떴습니다.

고향을 방문한 손태정 안수집사 조옥순 권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 고향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조옥자 권사 부부 고향을 방문한 손태정 안수집사 조옥순 권사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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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예배를 마치고 선물 묶음을 하나씩 손에 들고 귀가했습니다. 무릎담요와 다과묶음입니다. 예수님의 생일 날 받는 선물은 그 의미가 색다릅니다. 모두들 환한 얼굴로 교회 문을 나섰습니다. 강 권찰은 시내까지 태워주어야 합니다. 시내 다녀오는 길에 한 군데 들릴 데가 있습니다. 중간 지점 딸네 집에서 가료 중인 김종말 집사님(89세)을 뵈어야 합니다.

성탄절 예배까지는 꼭 나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오늘 못 오셨습니다. 질부(姪婦) 되는 박철희 권사님을 통해 대신 헌금만 보내오셨습니다. 선물을 챙겨서 할머니가 기거하시는 집을 들어섰습니다. 며칠 사이인데 얼굴이 표 나게 야위어 있었습니다. 죽을 드셨는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잘 못 드신다고 합니다. 집사님을 위해 먼저 기도를 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까지만이라도 예배당에 갈라캤는데 통 기운이 없으니 어떻게 된 기라요? 요새는 거실 나가는 것도 힘들어 방에서 누워만 있어요. 고생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갔으먼 좋겠구마. 목사님요, 그렇게 되두록 기도 좀 해 주이소."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리 하나 더 채우면 목사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예배당에 나오신 분입니다. 아들을 보지 못해 시댁으로부터 적지 않게 구박도 받았습니다. 당신 돌아가시면 아들 같은 목사님에게 모든 장례 일정을 맡기라는 유언까지 해 두신 분입니다.

일어서려는데 고쟁이 안에서 어렵게 주머니를 열더니 딸에게 피봉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내일 성탄절 예배 못 가는 대신 목사님이 헌금을 좀 드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문을 벗어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김 집사님을 뵐 수 있는 날도 오래지 않을 것 같은 예감 때문입니다.

노환으로 누워계시는 김종말 집사님을 방문 선물을 전달하고 대화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 노환을 앓고 있는 김종말 집사님을 위문하고 노환으로 누워계시는 김종말 집사님을 방문 선물을 전달하고 대화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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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햇살요양원 주일 예배가 있습니다. 강운자 집사님과 박성숙 사모와 함께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김명옥 집사님은 몸이 안 좋아서 오늘 빠졌습니다. 10여 분의 할머니들이 가지런히 예배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때는 우리가 도착하면 부랴부랴 준비를 했는데 지금은 많이 발전했습니다.

성탄절에 대한 젊을 적 추억들은 다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관련 찬송을 몇 곡 불렀습니다. 너무나 귀에 익은 곡들입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 어린 주 예수', '기쁘다 구주 오셨네'  등을 찬양할 때 향수를 부추기는 것 같아 송구했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날에 저 세상을 가까이 생각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요양원이 생의 마지막에 거처야 할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는 장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것에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거(居)할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질 것을 권유합니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이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사랑할 것을 가르칩니다.

요양원 할머니들께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빵을  전달했습니다. 노인 분들은 받는 것 자체로 즐거워합니다. 직원들과 봉사자들 몫도 남겨 두었습니다. 서울 광염교회에서 보내온 전도 선물을 이렇게 유용하게 잘 쓰고 있네요.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특별 제작한 과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포장지에 크게 인쇄되어 있는 글자입니다. 요즘의 성탄절엔 예수님은 사라지고 요란한 상술만 만연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생일 날 주인공은 없고 고급 장식에 음식물만 가득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성탄절 시기에 산타클로스가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건빵 봉지에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안은 뜻하는 바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요양원 주일예배. 이곳 할머니들에게는 성탄절의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 요양원 예배 요양원 주일예배. 이곳 할머니들에게는 성탄절의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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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걸음에 값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김천역 찬양전도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김천역 광장에서 찬양하며 전도지와 함께 전도 선물을 나누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주님의 일은 전천후가 되어야 하지만 여름비와도 같은 기상 상태가 찬양전도를 하루 미루게 했습니다. 내일 성탄 예배 마친 뒤 공동식사하고 바로 김천역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성탄절 하루 전날 우리 교회에 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통해서 도움을 주셨구요, 연약한 저희 교회에 예기치 않게 성도들을 보내 주셔서 빈자리를 채우셨습니다.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할머니를 방문할 때 눈물을 비치게 하시고, 노인요양원 주일 예배에서는 예수님 태어나신 날에 묘하게 죽음을 떠 올리게도 하셨습니다.

오늘 성탄 전 날 하루의 일정을 통해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귀한 말씀이고 깨달음입니다. '겸손하고 사랑하라. 한없이!'


태그:#성탄절, #덕천성결교회, #예수님이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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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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