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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에는 소위 '중앙'이라는 '서울발' 기사만 차고 넘칠 뿐 내가 사는 곳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시민기자를 만나러 가면서 해당 지역 뉴스를 다룹니다. 첫 행선지는 대구입니다. [편집자말]
본 기자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경험이 있는 청년입니다. 상대는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로도 나온 조원진 의원이었습니다(후보자는 총 3명이었습니다). 5.5평의 작은 자취방에 살면서 아르바이트와 사회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았던 저에게 국회의원 출마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이런 일은 제 인생 영역 밖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두고만 볼 수 없었고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뛰어든 선거였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박근혜대통령탄핵소추안 1호법안발의' 공약, '온전한 세월호참사특별법 재제정' 공약이 저의 주요공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허무맹랑하다는 소리를 꽤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있은 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탄핵촛불은 타올랐고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23.98%(15865표)를 득표율을 기록하며 2등으로 낙선을 했지만, 주요공약은 일부 지켜진 셈입니다.

촛불 속의 주권자는 정의가 넘쳐흘렀고,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기성 정치인들이 말로만 위대하고 존경스럽다는 그 국민들이 바로 내 곁에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국회의원 선거는 저에게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저는 정치가 엘리트주의와 황금수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인 주권자 스스로가 나서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탄핵촛불은 높이 솟은 정치 진입장벽을 허물고 주권자 국민이 정치를 실현하는 서막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른바 '국민주권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국민주권시대에 정치를 사용하는 주권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제 경험과 이야기가 작은 아이디어, 소소한 삶의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 기자 말

총선 당시 조석원 후보의 모습
 총선 당시 조석원 후보의 모습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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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에게 "취미가 뭐예요?" 물어본다면 저는 "정치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저는 탄핵촛불이 일어나기 전, 대구 달서병 지역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었습니다. 저의 주요공약은 '박근혜대통령탄핵소추안 1호 법안 발의', '온전한 세월호진실규명 특별법 재제정'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의 권력은 막강했고 절대 추락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사는 이곳은 '수구세력의 아성' 대구였으니 저의 공약이 과도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꽤나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벌어질 탄핵 촛불은 저조차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의 취미는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정치는 그저 좋은 스펙과 학벌을 가진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고 탄핵촛불을 겪으면서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취미로 정치를 할 수 있어야 주권자들의 이해와 요구가 제대로 정치에 반영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정치덕후'라 불러도 좋습니다. 하지만 전 의원이 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것 오직 그뿐입니다. 요즘 정치가 취미인 분들을 부쩍 많이 만나고 다닙니다. 지하철 퇴근길, 하굣길에 뉴스룸을 시청하는 청년들, 술자리에선 금기시 되었던 정치이야기가 드라마보다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오늘. 저에게 이제 정치는 취미입니다. '정치' 꽤 괜찮은 취미 아닌가요?  

깨어있는 주권자들 덕분에 '공약'이 이뤄졌다

조석원씨의 선거 포스터
 조석원씨의 선거 포스터
ⓒ 조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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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저의 출마는 한 정치덕후가 벌인 어쩌면 무모하고 돌발적인 이색출마 정도로 기억되었을 겁니다. 5.5평짜리 자취방 청년이 박근혜 탄핵이라는 공약을 들고 대구시민들을 만났을 때 주신 응원이 바로 촛불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이미 기정사실이며 확정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저는 낙선했지만 박근혜 탄핵과 구속으로 '손 안 대고 코를 푼' 몇 안 되는 성공한 정치덕후였기에 행복했습니다. 

빌딩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보다 더 아름다운 건 영롱하게 빛나는 주권자들의 촛불파도였습니다. 10월부터 시작된 탄핵촛불의 감동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대통령 탄핵과 함께 이 땅의 적폐를 청산하자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 진짜 정치무대였습니다. 촛불 이전의 정치가 일부 전문정치인이나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끌어가는 정치였다면 촛불 이후의 정치는 그야말로 주권자 국민들이 모든 정치를 끌어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시대에 맞게 정치덕후가 할 일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의 벽을 허물고 길을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2월 3일 당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옛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대구 시국대회'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당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옛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대구 시국대회'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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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직접정치', 의외로 쉽다

저는 정치가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탄핵촛불은 주권자의 정치영역을 한층 높은 단계로 진입시켰습니다. 저는 앞서 거듭 말씀드린 것처럼 평범한 생활인들이, 청년들이 주권자로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바로 취미로 정치를 하는 단계이지요. 높은 공동체 의식, 남의 아픔과 고통에 반응하는 정치, 쉽고 개방된 정치 말입니다.

사실 현실에서 정치덕후들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각종 SNS와 포털사이트 댓글, 1인 미디어 등 헤아릴 수 없는 참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청년들의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면 '고리타분한 꼰대'라는 소리를 듣곤 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술자리 안주로 정치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정치는 빠질 수 없는 안줏거리가 되었습니다.

지잡대(지방잡대학의 준말로 지방의 대학을 낮춰 부르는 말)에 돈 없고 스펙 없는 제가 총선에 나선 이유도 바로 이런 폭발적인 정치 관심이 직접적으로 발현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나름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이들이 직접 정치를 구현하는 방법은 기존 정치방식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조석원씨의 선거운동 당시 사진
 조석원씨의 선거운동 당시 사진
ⓒ 조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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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래의 청년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막상 정치에 관심도 생기고 팟캐스트도 청취하면서 의견을 내려고 하는데,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생각나도 섣불리 말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정책이라고 하면 매우 거창하고 전문적이며 정교하게 설계된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도표로 이뤄진 통계와 어려운 예산서, 법적효력을 가질 수 있는 정교함이 필수라 여깁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대안정책으로서 채택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왠지 간이 졸아들고 비웃음을 당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기존 정당과 산하연구기관, 시민사회의 전문집단 등이 만들어낸 치밀하게 계산해 만들어놓은 수많은 정책이 이미 우리 앞에 차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른바 '정책 주워 먹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좋은 정책들은 넘쳐나고 실제 일부 지역 현실에서 검증되어 나온 정책들까지 존재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누가 어떻게 실현하는가입니다.

우리가 이미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린다고 문제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그 밥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생활인들이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어도 정치에 반영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정책'을 너무 중심에 둔 나머지, 정치가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문제들, 나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정치가 있는 것이고 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해결과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정치는 사람들을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웃기자'라는 정책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내가 가진 좋은 아이디어가 이미 기존에 마련된 정책에 얹어져 환한 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최근 문재인 정부의 광화문1번가 개설은 매우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음껏 웃는 것도 정치이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정치이니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제안하면 분명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가 열릴 겁니다. 어차피 정치의 주인이며 사용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니까요.

대구에서 청년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지난 총선 당시, 대구공전 네거리에 걸려 있는 당시 조석원 후보의 현수막을 누군가가 칼로 훼손했다.
 지난 총선 당시, 대구공전 네거리에 걸려 있는 당시 조석원 후보의 현수막을 누군가가 칼로 훼손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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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대구'라는 별명도 있고 '수구보수의 고향'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대구는 예전부터 오래된 '야도'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막대기만 꽂아도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당선된다는 고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구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총선활동을 하면서 실제 그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공약으로 혹여 테러는 당하진 않을까 마음을 졸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박근혜 탄핵' 공약으로 욕을 먹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전해드릴까 합니다.

선거운동 초기. 저는 당시 최소비용과 '열린정치'를 위해 선거사무소를 이동식천막으로 만들어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한창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어르신이 사무실을 향해 걸어오셨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육두문자가 섞인 욕을 먹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그 어르신은 제게 왜 탄핵을 하려 하나 물어보시는 겁니다. 제가 박근혜 정권의 문제를 말씀드렸더니 대뜸 이러십니다. "나는 박근혜를 찍었지만 청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그 큰 권력을 어떻게 꺾을 수 있겠냐? 젊어서 그렇겠지만 하여튼 열심히 해보소" 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후 이런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말씀드리지만 대구에서도 이미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민낯에 대한 실망이 커져 가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구에서 '박근혜 탄핵', '박근혜 퇴진' 공약을 들고 쌍욕 한 번 안 들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실 수 있나요? 저는 단 한 번도 욕을 먹지 않았답니다.

세월호 리본을 단 이동천막선거사무소에 찾아와 박카스며 작은 응원 쪽지를 놓고 가며, 격려전화를 해주고, 시원한 공약이라며 박수를 쳐주던 시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바로 대구에서 탄핵촛불을 왕성하게 들고 새누리당 대구시당 간판을 '내시환관당'으로 바꾸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세월호진실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자유한국당을 해체 시키자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총선에 나설 때 박근혜가 곧 국민들의 힘으로 탄핵당하고 구속당하리라 생각한 분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조석원씨의 선거운동 당시 사진
 조석원씨의 선거운동 당시 사진
ⓒ 조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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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같은 조건과 환경이 아니니. 쉽게 평가를 내리는 것은 섣부른 혐오일 뿐입니다. 물론 대구에서 청년 정치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는 부담과 무거운 책임감이 억누르기도 합니다. 그래도 대구가 변하면 전국이 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취미로 정치하는 평범한 정치덕후 전성시대,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하는 주권정치의 실현이 진짜 '새 정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존 정치 아닌, '새 정치'

정치덕후가 되고 직접 정치를 실현하는 길은 의외로 쉽습니다. 정치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자체에 이미 정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다음 장으로 금방 넘어갑니다.

수천만 원짜리 방송유세차 대신 리어카를 끌고, 엄청난 임대비를 들이는 선거사무소를 이동식 천막으로 대체했던 저의 선거방식은 어찌보 면 그저 이색선거운동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한 선거운동 방식의 대부분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누구나 정치에 열린 공간을 만들고 쉽게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흥청망청 겉만 번지르르한 정치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 정치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존 정치의 방식과 생각을 따라간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 죽습니다.

적폐를 없애고, 새로운 가치를 쌓아야 합니다. 대구에서 최초로 '박근혜탄핵소추안' 선거벽보가 붙었던 날 저는 느꼈습니다. 조원진 후보에게 찾아가 막말을 사과하라며 옷소매를 끌어당겼을 때 저는 느꼈습니다. 선거출마가 그동안 내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말들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보호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저처럼 모두 출마를 하실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더 다양한 '새로운 것'들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랑 취미로 정치 함께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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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석원, #대구정치, #달서병, #조원진, #직접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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