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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 건으로 받은 벌금 30만원이 밀려 통장이 압류되고 지명수배자가 되어서 노역장에 다녀왔다(관련기사 : 박근혜 풍자 그라피티 그린 나, 법정에 서다). 작년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올해는 그라피티 건으로 교도소에서 수용생활을 했다. '생활'이라고 하기엔 짧은 이틀, 삼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반 죄수들과 방을 쓰기도 했고, 독방을 쓰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드러나지 않으면 신비화되고, 대상화되고, 배제되기 쉽다. 교도소와 재소자가 그런 공간 중 하나다. 가려진 것,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한다.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교도소에서 목격한 것들을 세세히 기록할 거지만, 어떤 지역의 교도소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작년 11월에 다녀온 여자교도소, 이번 4월에 다녀온 여자교도소와 관련된 기록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기자 말

두꺼운 독방 문 위에는 교도관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다.
▲ 독방 안에서 두꺼운 독방 문 위에는 교도관이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다.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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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교도소 르포 ①] 죄수번호 49번,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열두시쯤 지났을까, 잠을 자려고 누워도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운동이라도 하기엔, 앞방의 다른 재소자와 눈이 마주칠까 봐 그냥 앉는다. 앉아도 교도관의 눈은 피할 수 없다. 교도관은 종종 나를 포함한 재소자들의 방을 들여다보면서 복도를 걸어 다녔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잠들 수도, 일어설 수도,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좁은 방 안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나는 멀뚱하게 앉아서 방구석에 있는 박스를 본다.

'누군가 날 속속들이 보고 있는데, 난 날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누군가 날 본다는 생각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고통'이라는 푸코의 말이 생각난다. 더워도 옷을 벗을 순 없다. 겹겹이 입은 옷은 단지 보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신체와 신체적 개성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작은 노출도 규칙 위반이다. 벽에 붙은 생활규칙에는 '교도관의 허락 없이 교도복을 벗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감시하는 권력

독방에는 박스 위에 판자를 올려놓은 책상 겸 식탁이 하나 있었다. 식탁 위에는 성폭력 방지 대책을 인쇄한 A4용지가 투명테이프로 붙어있다. '저희 여성 교도소에서는 성폭력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몇개의 조항이 나와있다. '불쾌한 접촉이 있을 땐 싫다고 말해야'하며, '교도관에게 바로 말하라'는 내용의 조항이다. 여느 성폭력 대책이 그렇듯, 이곳에서도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게 예방대책의 전부다.

여자들끼리도 성폭력? 가능하다. 성폭력은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다. 권력이 폭력적으로 작동될 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권력의 원리로 작동하는 이 교도소 안은 어떻겠는가. 언젠가 여자교도소에 대한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만화책에서는 힘 있는 여자재소자가 신입 재소자에게 강압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자교도소의 폭력적인 일상을 선정적으로 그린 만화책을 보면서, 나는 여자교도소가 정말 그런 곳일까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그런 공간에 내가 들어와 있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와 눈이 마주친 재소자들은 거리와 학교, 시장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물론 만화책 속에 나오던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을 만큼 억압적인 원리로 작동되는 곳이 교도소다. 원래 험상궂은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그렇지 않다. 이 사회는 그런 곳들 투성이고, 억압적인 시스템은 개개인의 억압된 에너지를 폭력적으로 해소하도록 돕는다. 학교폭력은 학교라는 억압적인 시스템에서 재소자(학생)들끼리 아웅다웅 하루 8시간 동안 부대끼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다. 교도소 안에서의 폭력과 재소자들끼리의 권력다툼도 마찬가지다. 폭력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역할극의 완성

"49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다음날 출소할 때 데리러 올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언니의 번호를 알려주고 돌아온다. 언니와 통화가 되지 않는지, 교도관은 다시 돌아와서 말한다.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으니 날이 밝고 5시 반쯤 출소한다."

출소할 때 신원이 확인된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남자 재소자들이 모두 출소 후에 나가도록 해준다. 교도관이 가고, 갑자기 환하던 형광등이 흐릿해졌다. 이제 자라는 뜻이다. 불을 완전히 끄면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내게 좋은 일이지만, 밝은 조명과 무거운 적막은 잠들기 어려운 느낌이다. 불편한 죄수복을 그대로 입고 자는 것도 불편하지만, 벗는 것도 불편하다.

갑자기 위잉-하는 사이렌 경보음이 울린다. 영화에서나 들었던 그 사이렌 소리다. 교도소 전체에 울리는 소리다. 무슨 소리일까, 무거운 사이렌 소리에도 교도소는 미동이 없다. 화장실 위로 뚫린 작은 창문을 쳐다봤다. 아직 짙은 밤이다. 굵은 사이렌 소리가 지나고,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이 참기 힘들어 눈을 감고 명상을 청했다. 그러다 보면 잠이 들겠지.

누군가 감옥과 수도원은 명상하고 기도하기 좋은 공간이라고 했다. 그날의 새벽이 딱 그랬다. 차가운 밤공기가 화장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따뜻한 바닥에 달라붙어 눈을 감았다. 이런 억압을 뒤로하고 잠이 드는 건 좋은 일이다. 일단 잠에 들면, 그곳이 어디든 꿈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얼마나 잤는지 시간은 알 수 없다. 시계가 없기 때문이다. 꿈을 꾸다가 깨었는데, 무슨 꿈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배어있다. 낯선 공간, 낯선 시간에 갇혀있는 느낌이다. 목이 마르다. 방 안에는 물이 없다. 문 바로 옆에는 교도관을 호출할 수 있는 동그란 버튼이 설치되어있다. 회색 버튼은 '꼭 필요할 때만 눌러라'고 내게 경고를 주는 것 같이 생겼다. 이 새벽에 교도관을 불러서 물을 가져달라고 하면 얼마나 비아냥거릴까. 혼날지도 모른다.

마침 두꺼운 독방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틱". 교도관이 나를 부른다. "49번, 짐챙겨서 나와." 독방을 정리하고, 리빙박스를 두 손으로 들고 복도로 나왔다. 리빙박스를 두손으로 든 채 복도 신발장에 넣어둔 나의 흰색 고무신을 신고 교도관을 따라 뒤뚱뒤뚱 사무실로 들어갔다. 출소할 때 있던 교도관 두 명 중 관리인 같아 보이던 한 명은 퇴근을 했는지 사라지고 없고, 한 명만 사무실에 남아있다. 아직 해가 뜨지 않고 어두웠다.

교도관은 주머니를 뒤졌다. 소지품 검사를 한 후, 이제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한다. 옷과 신발을 담아둔 곤색 자루를 들고 옷을 갈아입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탈의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다. 역시, 이제 나갈 때가 되었으니 다르게 행동하는구나. 교도관의 달라진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옷을 다 입자, 교도관은 액세서리를 주고, 보관한 핸드폰과 카드를 주면서 "수고했어요"라고 말한다. 수고했어"요"라니. 내내 반말이던 교도관이 나갈 때가 되자 존댓말을 한다. 아아, 나는 존비법을 쓰는 사회가 싫다. 정확하게는 반말을 할 수 있는 권력이 싫다. 존비법은 역할에 따라 위계를 만들고 공고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자, 빗도 가져다준다. 빗으로 머리를 빗고, 입소하기 전 입은 옷을 든든히 입고 인도에서 가져왔던 팔찌를 두르니 갑옷이 생긴 것 같다. '일반인' 혹은 '정상인'이라는 갑옷. 교도관은 교통비가 없지 않냐며, 교통비로 주는 것이라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입소할 때 옆에서 "왜 귀찮게 지금 입소하냐, 그냥 돈 좀 내지"하며 짜증을 부렸던 그 과장이 전해주라고 한 것이라 한다. 봉투 겉면에는 "홍승희님, 기운 잃지 말고 앞으로도 좋은 일 해주세요"라고 써있다. 교도관이 안내하는 대로 건물을 나와 분홍색 교도소 대문 앞에 섰다. 교도관이 나가는 내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아아, 그 교도관에게서 그렇게 친절한 목소리와 인사를 듣게 되다니.

그들은 나 같은 재소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내게 짜증을 부리고 반말로 이것저것을 명령하고, 다리를 꼬지 말라며 허벅지를 툭툭 쳤을 것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허벅지를 툭툭 치던 교도관은 이제 내게 존대를 하고, 빗을 가져다준다.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사회에 나가 사회인 대접을 받으면서 살라고 역할극의 마무리 의례를 치르는 것이다. 역할극의 완성. 그 태도가 어찌나 차이나던지,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극 안에서 놀아난 느낌이 든다.

출소절차도 입소절차처럼 복잡했다. 보관해둔 귀중품을 찾고 노역을 완료했다는 확인증도 주었다. 교도소 사무실에서는 "인권 침해 사례는 없었나요?"라고 물어보았다. "없어요"라고 말한 후 나머지 짐을 챙겼다. 2초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교도관이 반말을 쓰고 알몸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다리도 꼬지 못하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들은 분명 "교도소는 원래 그렇게 하는 곳이에요"라고 말할 것 같다. 그보다 어서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대문과 중간문을 지키는 남자 교도관의 안내로 문을 지나 문을 지나 문을 지나 문... 그렇게 몇 개의 문을 통과해 교도소 입구로 돌아왔다. 몇 시간 정도 있었던, 그러나 며칠은 있었던 것 같은 넓고 낮은 교도소를 돌아봤다. 입구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여성수용소. 이곳에 작은 역할극이 있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극 안에 있다. 그리고 이 사회보다 더 빽빽한 새벽의 공기가 나를 감싸고 있다. 아침이 밝아오기 두 시간 전이다. 아직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모욕에 동의하는 것은 폭력에 동참하는 일이다.
▲ 모욕 앞에서 모욕에 동의하는 것은 폭력에 동참하는 일이다.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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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에 동의하지 않기

교도소에서 나온 후 집으로 돌아가 정오가 될 때까지 내내 일기를 썼다. 남자 교도관이 "인권 침해 사례는 없었냐"고 물었던 말이 내내 걸렸다. 나는 왜 없다고 말했을까. 여자 교도관의 달라진 태도가 마음에 걸려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원래 교도소는 그런 곳이야'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종종 고민이 올라왔다. 나는 교도소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며칠 후 지인의 추천으로 책 <사람, 장소, 환대>를 읽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의 인격을 어떻게 부정하는지에 대해 언급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수용소와 교도소도 그렇다. 입소의 형식적 절차들-사진 찍기, 지문 채취, 번호 부여, 옷 벗기 등등-은 그 자체가 굴욕과 박탈을 초래하며 입소자를 동질화, 평준화시켜 하나의 대상으로 변형시킨다."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이 보편적인 것이란 걸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반말, 비아냥, 사소한 말투와 억양까지 그것들은 공식적인 매뉴얼로 공유되진 않아도 재소자의 인격을 제거하기 위한 인류 공통의 오랜 비법이었다.

그들은 나를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들이 내게 행했던 모욕적인 말과 행위에 저항하지 못했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이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나를 힘들게 한 건 그들이 내게 가한 모욕이 아니라, 그 모욕 앞에서 찍소리조차 내지 않았던 나에 대한 굴욕감이었다. 내가 그들의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욕에 동참하게 된다.

오랜 고민이 올라왔다. 모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를 존엄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상대와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집안, 학교, 사회 전체에서 존재하던 권력의 작동과 은근한 때론 강력한 폭력 앞에서 나는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많은  시간 고민해왔다. 그런 폭력은 거대한 것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폭격이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에 앉은 몸집 큰 짝꿍이 내 지우개를 문구칼로 잘라버렸을 때.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화내지도, 그만하라고 정중하게 말하지도 못했다.

억눌린 모욕감은 나를 괴물로 만들었다. 나는 뒤처지는 아이들을 경멸하는 학교와 선생님, 아버지와 친구들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먼저 가해자가 되는 거였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내가 공격을 선점해버라는 것. 타인은 모두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처럼 보였으니까.

열여섯 살 때까지 나는 세상과 모든 관계가 그런 권력과 양육강식의 원리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바로 이런 생각으로 망가져 왔다. '어쩔 수 없는 폭력이야. 어쩔 수 없는 부조리야.' 그러나 나의 비겁을 성찰한 후에도, 나는 용기있게 '그만하라', '아니라'고 정말 말해왔던가.

모욕에 동의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모욕의 방식으로 타자를 대한다. 나약한 사람은 모욕에 싸우기보다 모욕에 동참해서 그들과 같은 징병이 된다. 상대를 쉽게 모욕하는 것은 힘의 증거가 아니라 비굴함의 증거다. 모욕과 차별과 편견에 편승하는건 안전하고 아늑하다. 우월감도 준다. 생각해보면 이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욕에 동의하도록 잡아당기고 있는가? 학교와 군대, 군대문화의 직장, 가부장문화의 가족공동체, 거의 모든 곳에서 모욕의 언어가 작동한다. 그곳에서 훌륭하게 적응하고 성공한 사람은 '철 든'사람이 되는 아이러니다.

물론 나는 나를 모욕하는 상대와 마주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니까. 그리고 존중의 관계가 확대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니까.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벽이 우리의 요새를 둘러싸고 찌르기도 한다. 내가 마주한 이런 벽,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나라 대통령의 권위나 문화와 관습의 권위 같은 기존의 벽. 그 벽 앞에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나약한 괴물이 되지 않고서.

인권침해 사실이 있었냐고 물었던 교도관의 질문에 '없어요'라고 대답한 것, 교도관이 나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거릴 때에도 찍소리 내지 않은 것이 내내 후회되었다. 그게 부질없는 짓이라 해도, 적어도 할 말은 했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성학자 현경 교수가 말했듯 우리에게는 '기와 끼와 깡'이 필요하다. 기는 생명 에너지, 끼는 전복과 상상의 에너지, 깡은 이 에너지를 받쳐주는 맷집과 뿌리의 힘이다. 모욕에 동의하지 않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있을 때나 '이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4개월 후 나는 교도소에 다시 가게 되었다. 다신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엔 무기를 장전하고 들어갔다. 나는 이제 그들을 안다.


태그:#여자교도소, #교도소, #르포, #모욕, #사람장소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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