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포스터. 우리는 서로 금이 그어져 있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포스터. 우리는 서로 금이 그어져 있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 CGV 아트하우스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연극을 보겠다고 대학로를 찾았던 날, 공연시간을 기다리다 마로니에 공원까지 발길이 닿았다. 나는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젊고 건장한 사내들이 벌이는 내기 농구시합을 봤다. 빠르고 활기에 찬 경쟁, 그러다 누군가의 손에서 공이 튕겨 나갔던가. 통, 통, 통. 공이 공원 저편으로 굴러갔고 사내 가운데 하나가 그 공을 향해 달려갔다.

보이지 않는 금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짝꿍 녀석이 책상 위에 칼로 죽 그어 놓은 금이나, 군 복무 중 매일 같이 마주했던 철조망처럼 공원을 두 쪽으로 가른 그 금도 한쪽의 것이 다른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는 모두에겐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만 허락되는 듯이 보였는데, 이날 이후 나는 이 공원을 찾을 때마다 이 금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원 이쪽에선 누구보다 활기찼던 사내에게도 그 금은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황급히 공을 챙겨 들고 제 구역으로 달아난 사내는 다시는 공원 저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는 완전히 생경한 모습이 돼버렸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마로니에 공원엔 소일하러 나온 노인들이 제법 많았다. 한쪽엔 노인들이 볕을 쬐고 있고, 다른 쪽에선 젊은이들이 운동이며 공연이며 이것저것 바쁘게도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많던 노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농구시합을 보았던 때로부터 몇 년을 더 지내고서야 나는 에이지즘(ageism)이란 단어를 알게 됐다. 나이로 인한 차별을 뜻하는 이 단어는 당시로선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외모와 성별, 재산과 인종에 기인한 차별은 익숙했지만 나이 차별이라니, 이전까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 개념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난 비로소 그날 공원에서 보았던 금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되었다.

금 너머에 사는 사람들, 당신은 그들을 얼마나 아나요?

 소영(윤여정 분)과 다큐감독(정재웅 분)의 첫 만남. 벌건 대낮 종로 뒷골목에서 소영이 30대 남성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이 장면 만큼이나, 두 사람이 속한 세계의 만남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소영(윤여정 분)과 다큐감독(정재웅 분)의 첫 만남. 벌건 대낮 종로 뒷골목에서 소영이 30대 남성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이 장면 만큼이나, 두 사람이 속한 세계의 만남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 CGV 아트하우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금 너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신체장애인과 트랜스젠더, 성매매 여성, 코피노, 외국인 노동자, 재일교포 조폭까지 이 사회 소수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죄다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분명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주류와 분리된 사람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스크린을 통해 펼쳐질 때 '내 저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알고 있었노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자는 무엇일까. 뜻 그대로 해석하면 적은 수의 사람이 되겠지만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소수자는 단지 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적이나 외적으로 타고난 모습이, 사회적으로 획득된 상태가 그 사회의 다수나 주류와 다르고 그로 인해 무시·배척·소외될 때 이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른다.

소수자란 상대적 개념이라 때로는 여성이 남성에 대해 소수자의 위치에 서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라 불리는 이들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 대해 훨씬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재정적 궁핍함으로 성매매에 나선 여성이 있다면 일반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에 대해 소수자이겠으나, 박카스 할머니와 같은 이들에 비한다면 오히려 주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하나같이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에 속한 이들이다. 어린 시절 북에서 넘어온 실향민이고 양공주 생활도 했으며 나이를 먹어서까지 박카스 할머니로 살아가는 소영이 그중 주인공이다. 영화는 그녀가 과거 연을 맺었던 노인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을 한 명씩 죽여주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 사회 소수자의 삶의 민낯을 밀도 있게 그렸다. 그녀의 곁엔 장애로 사회와 격리된 채 하루 대부분을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도훈과 트랜스젠더 티나, 그리고 코피노 아이가 있는데 이들 모두 대부분 시간을 그들끼리 모여 지내는 인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격리 아닌 격리가 돼 있는 상태다. 극 중 소영이 일터를 옮겨보고자 근린공원에 가서 겪는 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과의 대화, 시민단체 활동가와의 만남 등에서 이 같은 상황은 두드러져 보인다. 코피노 아이의 일 때문에 시민단체를 찾아야 했던 소영이 "젊은 남자랑 같이 가야 무시를 안 당해", "겉으로 보면 멀쩡하잖아" 같은 말을 하며 도훈에게 함께 시민단체를 찾아가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선 그녀가 자신의 세계 밖에서 겪어왔을 무시를 읽을 수 있다. 또 그녀가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는 낯선 어휘와 주문시스템에서 받는 거리감, 근린공원에서 만난 남자의 멸시하는 태도, 하루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는 도훈의 모습 등도 주목할 만하다.

주류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내가 오해한 걸까

 소영(윤여정 분)과 옛 단골 재우(전무송 분). 영화 속 재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조차 소영에게 떠넘길 만큼 무력하고 비겁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를 본 누가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영(윤여정 분)과 옛 단골 재우(전무송 분). 영화 속 재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조차 소영에게 떠넘길 만큼 무력하고 비겁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를 본 누가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소수자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만큼 상대적으로 주류에 속한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은연중 내보이는 것 같다. 영화에서 소영에 '비해' 주류로 읽히는 캐릭터들, 그러니까 소영이 KFC 매장에 들어갔을 때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중풍에 걸린 옛 손님의 며느리와 손주들, 근린공원에서 운동하고 있던 할아버지, 소영이 찾는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심지어는 시민단체 운동가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냉정하고 배려심 없으며 때로는 염치없고 몰상식한 이들로 그려진다. 이들에 대한 작가의 불편한 인식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의 소영에게 굳이 영어로 된 어휘들을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묻는 아르바이트생은 오히려 실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와 같이 배려 없고 매뉴얼에만, 그런 매뉴얼이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충실한 아르바이트생이 있기야 하겠지만 유독 그 아르바이트생이 영화에 등장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심지어 영화엔 그처럼 공감 능력도 배려심도 없는 인물이 매우 많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소영과 그 주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류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 그에게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 뒤에서 벽에 기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10대 남매의 모습.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냄새난다"고 하는 아이들. 할아버지의 친구 자격으로 병실을 찾은 소영에게 대놓고 재산 운운하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며느리까지. 어째서 영화엔 이런 인물들만 한가득한지. 과연 의도가 없는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을까? 의도가 있다면 과연 어떤 의도였을까?

한때는 주류였을, 그래서 돈을 주고 소영의 성을 샀을 남성들이 이제는 늙고 병들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주류에 대한 작가의 적개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는 이들이 자기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그들보다 형편이 못한 소영의 손을 빌리려는 무력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중풍으로 쓰러진 노인을 제외하고 다른 남성들은 충분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소영에게 짐을 떠넘기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게 읽혔다.

이처럼 영화는 등장하는 캐릭터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서 바라보고 있고, 비주류에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젊거나, 번듯한 직업이 있거나, 비교적 부유한 이들에 대해 다소 왜곡된 시선을 내보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돌을 씹는 불편함이 느껴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영화엔 소영의 성을 사 온 것으로 보이는 '단골손님' 노인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주요 등장인물과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단골손님들은 적어도 한때 소영의 성을 구매할 수 있는 위치였으나 이제 나이가 들어 그마저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린 노년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남자이고 소영에 비해 형편이 나아 보인다는 점에서 앞에 언급한 인물들처럼 단순한 소수자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이들을 자기 죽음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소영의 손을 빌리는 비겁한 사람들로 그려나간다. 그나마도 한 명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는 설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읽히지만 다른 두 명의 경우엔 관객을 쉽게 이해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함께 나눈 사람들 중에도 이런 설정이 과도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무리한 설정을 영화가 굳이 사용한 이유가 있었을까. 영화가 소영과 티나, 도훈 등에게 보이는 애정 어린 시선에 비해, 이들을 보는 냉정한 시선의 격차가 컸다.

영화가 심은 작은 희망, 소외된 자에게 내미는 손

 소영(윤여정 분)과 코피노 소년의 만남. 영화 속 누구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소영은 다른 누구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는 인물로 그려진다.

소영(윤여정 분)과 코피노 소년의 만남. 영화 속 누구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소영은 다른 누구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는 인물로 그려진다. ⓒ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특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당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던 이들을 잡아내고, 영화 말미엔 누가 봐도 CG로 삽입한 게 분명할 만큼 무리하게 고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뉴스를 보여주는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문제의식보다 구체적인 고민이나 메시지가 얕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류와 비주류를 분리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이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운지, 이들의 곁에 공동체라 할 만한 게 없는 이유는 무언지 등의 물음에 명쾌하게 답하기 위해 감독이 더욱 치열한 고민을 해야 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소영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영화 전체에서 오직 그만이 더 나은 위치에서 더 못한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소영에게 던지는 그의 질문들에서 느껴지듯 그 역시 특별한 고민 없이 박카스 할머니란 소재를 택한 듯 보이지만 그의 질문이 있어 소영은 누구도 듣지 않는 자신의 사연을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마치 퉁겨진 공을 가져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금을 넘은 사내와 같이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만이 우연히 금을 넘어 자기보다 못한 이들의 사회에 발을 들여놨다. 결국, 영화의 주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이 없어지려면, 그러니까 소외된 자들과 그들을 소외시키는 자들의 구분이 없어지기 위해선 형편이 나은 자가 먼저 자기보다 못한 자에 손을 내밀고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 본래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언론이겠으나 영화가 고 백남기 농민 보도를 통해, 또 "저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겠지" 하는 소영의 혼잣말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다큐멘터리 감독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싶다.

금을 넘어서 손을 내민 다큐멘터리감독이 소영의 삶을 얼마나 바꿨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이분법적 영화가 그의 캐릭터를 통해 작은 희망 하나를 심어두고자 했음은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죽여주는 여자 CGV 아트하우스 이재용 윤여정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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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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